글을 쓰지 않겠다고 했지만 사실은 본심이 아니었다. 그냥 투정 섞인 치기였다. 그냥 글을 쓰다 보니 그렇게 적어버렸다. 참... 어이없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으니 최소한 버틸 때까지는 글을 써봐야겠다. 어쨌든 난 글 쓰는 게 좋으니까.
은행 경비원 이야기를 다 쓰고 나니 이제 무슨 글을 써야 될지 막막했다. 그래서 일단은 뭐라도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50가지 마음에 대하여’를 쓰게 되었다. 이것은 지금도 쓰고 있다. 꼭 50가지를 다 채울 것이다. 그리고 난 후엔 또 뭘 쓰지 생각하니 또 막막했다. 막막함은 끝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오늘 아침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뛰다가 떠올랐다. 여행 에세이를 써야겠다고 말이다. 갑자기 뭔 여행?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의 글을 읽으신 분들은 아실 거라 생각된다. 난 꽤 여행을 많이 다녔다.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까지 꾸준히 여행을 다녔다. 사실 은행 경비원 이야기를 쓰기 전에 여행 에세이를 개인 블로그에 올렸었다. 그걸로 출판하고 싶어서 열심히 썼지만 중간에 포기했다. 이유는 뭐 여러 가지 있었지만 그냥 자신이 없어서였다. 난 포기의 아이콘이니까.
갑자기 여행 에세이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어쨌든 글이란 건 나의 경험과 생각으로 인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결국 내 안에 있는 것들을 꺼내는 작업인데 내 안에 뭐가 있을까 하고 뒤져봤더니 여행이 나왔다. 그래서 써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냥 여행만 다녀오면 그건 개인적인 경험으로 끝나버리지만 그것을 글로 쓴다면 하나의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총 8년간의 이야기다. 물론 8년 내내 여행을 다닌 건 아니다. 내가 처음 혼자 여행을 떠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다녔던 모든 여행을 기록할 것이다. 국내건 국외건 가리지 않고 일단 기억하고 생각나는 것들은 모조리 글로 쓸 생각이다. 어떤 식으로 풀어낼지 아직 감이 잡히지 않고, 은행 경비원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여행 이야기하는 게 좀 어색하고, 벨런스가 맞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것 말고는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많지 않다. 될 수 있는 대로 최대한 많이 쓰고 싶은 욕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뭐라도 쓰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8년간 총 미국, 호주, 일본, 말레이시아, 캄보디아, 두바이, 멕시코,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덴마크 14개국을 다녀왔고, 총 45개 도시를 여행했다. 나의 여행은 남들과는 조금 다르다. 여행이지만 1년간 살았던 미국과 호주는 여행이라기보다 외국에서 사는 삶을 다룰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남아메리카는 장기 여행으로 다룰 것이고, 나머지 아시아 국가들은 단기 여행으로 다룰 예정이다. 모든 나라는 오로지 혼자 여행했다. 혼자 여행했다는 것은 출발할 때 혼자였고, 도착할 때도 혼자란 말이다.
사실 나의 삶에 여행을 빼놓고 말하기 힘들다. 그만큼 여행은 나에게 많은 영감과 경험 그리고 실패들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 내가 여기 이 자리에서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여행 때문일지도 모른다.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여행 때문이었고, 은행 경비원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먹은 것도 여행 이야기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나의 브런치를 봐주시는 분들이 과연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잘 모르겠지만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 읽는다 생각하고 봐주시면 너무 감사할 것 같다. 그럼 조만간 8년간의 여행의 흔적을 좇아 부지런히 다시금 힘을 내어 글을 써보도록 해 볼 것이다. 부디 이번만큼은 중간에 포기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