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에 은행에서 쫓겨난 후 한 달 정도는 좋았던 것 같다. 아침에 늦게까지 늘어지게 잘 수도 있고, 평일 아침에 운동도 할 수 있고, 평일 오전 남들은 일할 때 아무도 없는 영화관에서 영화도 볼 수 있었다. 어차피 돈도 얼마 주지도 않았고, 그렇게 매력적인 직장도 아니었던 터라 아쉽지 않았다.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언제까지고 은행 경비원을 할 순 없었던 터라 그만둔다면 차라리 내 발로 나오기보단 실업급여받는 게 더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6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는 놀았던 것 같다.
7월엔 주로 제주도에 있었다. 퇴사하기 전부터 7월 초에 부모님과 함께 제주도를 가기로 돼있었다. 은행에 있을 때 나와 출납 계장은 서로 휴가를 겹쳐 쓸 수 없었다. 둘 중 한 명은 지점에 있어야 했다. 물론 내가 출납 일을 대신할 순 없지만 보조로 하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나도 없고 출납 계장도 없으면 대리로 출납 일을 하는 분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은행에서 출납업무는 보통 가장 낮은 직원이 담당했다. 그만큼 잡일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잡일은 주로 내가 도맡아서 했지만 말이다.
출납 계장과 여름휴가에 대해서 조율을 했다. 내가 7월 초에 가고 계장이 7월 중순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6월 중순에 내가 잘리면서 그런 이야기들은 졸지에 아무런 소용이 없어지게 되었다.
올해 아버지는 환갑이시다. 지금까지 생일에도 어버이날에도 제대로 뭐 하나 챙겨드린 게 없어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환갑 때는 뭐라도 해드리고 싶었다. 장남인 내가 나서야 할 거 같아서 동생과 엄마에게 제안했다. 제주도를 가자고. 원래는 일본을 가고 싶었다. 아버지가 젊으셨을 때 일본에 잠깐 근무하신 적이 있었다. 그래서 어릴 때 집으로 일본 사람이 전화가 온 것을 몇 번 받은 기억이 있다. 외국에서 생활해본 적이 있는 나는 그 당시 내가 살았던 곳을 몇 년이 지난 후에 다시 찾아가는 게 얼마나 감회가 새롭고 좋은지 알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께도 그 기분을 알려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결국 제주도로 가게 되었다. 언젠가 아버지를 모시고 일본에 가 보고 싶다.
2박 3일간 제주도에 머물렀고, 날씨는 좋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여행 내내 좋아하셨다. 사실 여행 가기 일주일 전부터 입고리는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엄마가 말해줬다. 돈은 좀 많이 썼지만 그래도 마음은 가벼웠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다시 제주로 갔다. 회사에서 잘리게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열이 받아서 그냥 7월은 제주도에 박혀서 글만 쓰려고 했다. 하지만 돈이 없어서 일주일로 줄였다. 일주일 내내 있으면서도 돈을 꽤 썼고, 글도 많이 썼다. 그나마 퇴직금이 있어서 조금 버틸 수 있었다.
8월은 지금까지 쓴 글을 총정리해서 출판사에 투고했다. 수많은 곳 중에 내 글을 알아 봐줄 곳이 있을 거라는 낙관적인 기대를 어리석게도 머금고 함께 브런치를 하는 동네 형이랑 준비했다. 기획서도 진짜 열심히 썼다. 태어나서 기획서를 써 본 적이 없어서 출판에 관련된 책을 읽고 유튜브를 보며 열심히 준비했다. 메일 보내는 법, 기획서 쓰는 법, 원고 정리하는 법, 그리고 출판사를 고르는 법 등 열심히 한 달 동안 준비해서 총 50군데에 이력서를 넣듯 넣었다. 더도 말고 딱 한 곳이면 충분하다 생각했다. 매일 아침 컴퓨터를 켜면 가장 먼저 열어 보는 게 이메일이 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그 후로 더 우울해진 것 같다. 9월이 되고 날이 추워지면서 이제 뭘 더 해야 할지 몰라 암울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10월을 또 보내고 11월이 되었다.
10월 한 달은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침에도 늦게 일어나고 집에서 게임만 했다. 밥도 제대로 챙겨 먹지 않고, 매일 배달음식만 시켜 먹었다.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자고 일어나면 게임하고 배고프면 배달음식 시켜 먹고 드라마 보고, 또 게임하고 배고프면 라면 먹고, 또 드라마 보고 또 게임하고, 그리고 잠들고, 일어나면 또 같은 일상을 반복했다. 그냥 현실을 벗어나고 싶었나 보다. 게임하고 드라마 보면 적어도 그 순간은 현실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짓을 며칠 동안 하다 카드값을 내는 날이 되었다. 그리고 통장 잔고를 봤다. 곧 있으면 통장이 진짜 텅텅 비어버릴 것 같았다. 위기의식을 느꼈다. 그리고 내 모습을 봤다. 정말 형편없었다. 왜 사는지 몰랐다. 이대로 죽어버릴까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 생각이 났다. 무서웠다. 그래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글을 썼다.
정신을 차리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했다. 독립 출판은 그때 생각했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고, 마지막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로 글을 꾸준히 하루에 하나씩 쓰려고 노력했다. 규칙적으로 잠들고 꺼뒀던 알람을 다시 맞춰 아침에 제시간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제시간에 밥을 먹고, 배달음식은 더 이상 시켜 먹지 않게 되었다. 아침에 다시 운동을 다니기 시작했고, 게임은 하루에 딱 30분만 하자고 타협했다. 지우려고 했는데 30분만 나에게 허락하기로 했다. 최근에 생일이었는데 나를 잘 아는 친구들은 커피를 선물해줬다. 카페를 매일 가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돈을 하루에 천 원도 쓰지 않고 살고 있다.
독립 출판 수업을 듣기 위해 결제를 했다. 고민이 많았다. 혼자 할 수 있지 않을까? 굳이 몇 십만 원을 내고 들을 만한 가치가 있을까? 며칠을 고민한 끝에 제대로 하려면 그래도 배우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혼자 하려고 하니 뭐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몰랐기 때문이다. 나에게 하는 마지막 투자라고 생각했다. 내일부터 수업을 듣는다. 조금 기대가 된다. 앞으로 수업을 듣는 것도 기록해서 남기려고 한다. 기록은 아무래도 중요한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12월이 되고, 1월이 되면 받던 실업급여도 끝나게 된다. 요즘은 알바천국도 들어가 보고, 워크넷도 자주 들어가 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는지 보는데 아무래도 편의점 알바 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노가다라도 나가볼까 생각 중이다. 아직은 젊으니까 몸 쓰는 일은 할 수 있을 거 같기 때문이다. 더 버티다가 안 되면 어쩔 수 없이 도망쳐야 한다. 엄마가 그냥 부산으로 내려오라고 해서 마음이 흔들렸는데 내년 초까지 버텨봐야겠다. 요즘엔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훅 내려갔다가 조금 오르고 또 훅 내려간다. 만약 내가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사람이었다면 이미 잘못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오늘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 집에서 글을 쓰고, 엄마가 보내준 나물과 고추장에 햇반을 데워 비벼 먹었다. 엄마의 맛이 났다. 집을 나와 은행에 들려 신용카드를 없애고, 체크카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친구가 선물해준 커피 기프티콘으로 커피와 케이크를 먹으며, 글을 쓰는 중이다. 그래도 요즘은 사람답게 살려고 노력 중이다. 나는 사람답게 살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요즘은 이렇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