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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Nov 15. 2020

마지막 도전

올해도 이제 한 달 남짓 남았다. 일 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른다고 말하면 너무 상투적인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사실이 그렇다. 정말 일 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올해는 작년에 비해 더 불행했나 덜 불행했나를 생각하면 비슷한 것 같다. 작년이 불행 –100이라면 올해는 한 –90 정도 되는 것 같다. 아마 내년도 비슷하게 불행할 것 같다.


이제는 쓸데없는 기대는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딱 한 번만 마지막으로 기대해 보고 싶다. 지금까지 나의 모든 기대와 희망은 산산이 부서졌다.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몰라 찾고 싶었지만 찾지 못해 방황했고, 늘 돈 없음에 시달려 카드 대출을 받을까 말까 고민하고, 불안정한 일을 하며 항상 불안에 시달렸다. 그렇게 지난 4년간 서울에서 살면서 나에게 행복보단 불행이 더 어울리는 시간들이었다. 왜 이렇게 살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사실 잘 모르겠다. 그냥 그렇게 돼버렸다.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지라고 한다면 맞다. 모든 건 나의 탓이고, 잘못이다. 그래서 누굴 탓할 수 없어 나를 탓하고 나를 원망하며 지냈다.


스스로 하고 싶었다. 내 삶은 내가 책임지고 살고 싶었다. 적어도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 더 이상 부모님께 의지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이젠 그것도 한계인 것 같다. 이대로 놔두다간 정말 큰일 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모든 걸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포기는 내 특기다. 지금까지 줄곧 포기를 밥먹듯이 했기 때문에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 할 포기는 진짜 전부 다 포기할 것이기 때문에 조금 더 많이 엄청 무겁다. 다 내려놨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내려놓지 못한 게 있었던 것이다.


지난 4년간의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본가 부산으로 내려갈 생각이다. 사실 7-8월 두 달간 그동안 써왔던 “은행에서 일하지만 은행원은 아니에요.” 글을 정리해서 출판사에 투고를 넣었다. 에세이 형식의 책을 내는 곳을 선점해 50개의 출판사를 열심히 추려냈다. 조금 더 확률을 높이기 위해 무작정 투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출판사가 어떤 책을 출판했는지 꼼꼼히 따져보고 기획서도 여러 도서들을 참고해 썼다. 그리고 다음 티스토리도 만들어 나만의 홈페이지도 만들고, 정말 별별 노력을 다 했다. 하지만 역시 결과는 실패.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정말 훌륭하다. 모든 출판사들이 전부 자신들과 뜻이, 길이, 방향이 맞지 않다고 정중히 거절했다. 그래 그럼 그렇지 내 인생에 무슨 드라마 같은 일이 펼쳐질까. 또 기대한 내가 병신이지. 애초에 기대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난 아직 멀었다.


올해 초 브런치에 글을 쓰기 전부터 난 은행 이야기를 써왔다. 자주 나가던 독서 모임에서 만난 한 출판사 편집자는 나의 은행 이야기를 듣곤 나와 좀 더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고 했고, 실제로 만나 책을 어떻게 쓸지도 같이 고민했다. 그렇게 이메일을 몇 차례 주고받으면서 난 속으로 신기했다. 내 글이 정말 좋은가? 출판사 편집자가 관심을 가질 정도인가? 기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연락을 준다던 편집자는 연락이 두 달 동안 없었다. 같이 못할 것 같다면 솔직하게 말해줬다면 좋았을 텐데 그냥 연락을 준다고 말만 하고 연락이 없었다. 거기서 다시 좌절했다.


다행히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난 후에 조금 더 열심히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브런치가 그나마 올해 내가 가장 좋았던 유일한 기억이다. 얼마 전 독서 모임에서 어떤 분이 이런 질문을 했다. “최근 삶에서 가장 기쁘고 행복했던 때가 언제인가요?” 난 한참을 고민한 후 내가 쓴 글에 누군가가 댓글을 달아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너무 소박한가? 나에겐 정말 큰 일이다.


분명 이번에도 실패할 것이다. 늘 그래 왔듯이 난 실패에 이제 민감하지 않게 되었다. 감각이 무뎌졌다. 그럼에도 마지막으로 해 볼 것이다. 이것은 성공과 실패를 떠나 그저 지난 나의 과오와 지난 나의 후회들을 앞으론 하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으로 하는 것이다. 실패한 4년간의 서울 생활을 마침표 찍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무것도 없이 부산으로 내려가면 너무 부끄럽고, 죄송스러워서 부모님을 뵐 면목이 없을 거 같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너는 돌아갈 집이라도 있잖아. 부산 가서 엄마가 하는 돈가스집 같이하면 되잖아.” 하지만 나에게 이것은 사형선고와 같다. 만약 내가 부산으로 돌아가 부모님과 함께 산다면 그것은 난 완전히 실패했다는 선고를 내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난 혼자서 해 보고 싶었다. 나 혼자서 해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무리다.


어제저녁 9시부터 오늘 오후 6시까지 잠자고 밥 먹는 시간 빼고 약 13시간 동안 퇴고했다. 독립출판은 처음 해 보는 거라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마지막인 만큼 최선을 다 해 볼 것이다. 후회가 남지 않게. 그리고 다시는 서울로 오지 않을 것이다. 부산에 짱 박혀서 열심히 엄마, 동생 도와서 가게를 잘 이끌어 나갈 것이다.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일이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열심히 돈 벌어서 남은 카드빚도 갚고, 엄마 아버지 맛있는 소고기도 사드리고, 예쁜 아가씨도 만나서 나도 남들처럼 연애도 하고 잘 먹고 잘살고 싶다. 이제 더 이상 이렇게 지질하게 살긴 싫다. 그러니 남은 힘을 다해 책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답게 앞으론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부디, 성공하지 않고 실패해서 부산으로 내려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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