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읗 Nov 12. 2020

그냥 일상

나는 가끔 굴속으로 들어간다. 컴컴하고 조용한 그곳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나에게만 존재하는 곳이다. 굴속으로 들어간 난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만 잔다. 밥은 배달음식으로 대체하고 온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글도 쓰지 않고 책도 읽지 않는다. 며칠째 굴속에서 지냈지만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다. 물론 내가 먼저 연락하면 되지만 그냥 성격상 누구한테 먼저 연락을 잘하지 않는 편이다. 이대로 그냥 죽어버리면 내 시체는 언제쯤 굴속에서 발견될까 생각하니 아마도 한 일주일은 넘게 걸리지 않을까 싶었다.


굴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일단은 상당히 괴로워야 한다. 사람이 괴로워하는 것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게는 풀리지 않는 고민이나 상대로부터 받은 상처가 가장 크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상처는 내가 나에게 주는 상처가 더 클 것이다. 난 스스로 나에게 상처를 줬다. 그래서 괴로웠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 그냥 혼자서 웅크리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 겉으로 괜찮은 척하는 사람들도 사실 속으론 말하지 못할 비밀과 걱정이 있을 수 있다. 걱정 없이 사는 거 같아 보이지만 말을 하지 않았을 뿐 사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삶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 또한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일 뿐이다.


여행을 오래 다녀와서 그런지 사람들은 나를 보고 용기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도전정신이 있다고 말했고, 결단력이 있어 보이고, 진취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난 뭔가를 실행하기까지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여행을 가야겠다고 판단을 내리기까지 6개월을 고민했고, 일주일 동안 굴속에 있었다. 그리고  겁도 많은 편이다. 그래서 뭘 하기까지 오래 걸리는지도 모르겠다. 하긴 사람들은 사실 과정은 잘 모를 수밖에 없다. 겉으로 보이는 건 결과밖에 없으니까.


이번에 굴로 들어간 이유는 맨날 하는 고민 때문이다. 앞으로 뭐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고, 나는 뭘 할 수 있는 인간인지 잘 모르겠어서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나마 그냥 해볼 수 있는 게 글 쓰는 거라 꾸준히 열심히 썼지만 글이 돈이 되기엔 내 글은 그다지 상업성이 없나 보다. 어차피 요즘은 다 돈 되는 거 아니면 아무도 안 하려고 하니 글도 돈 되는 글을 써야 하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돈 되는 글은 어떻게 쓰는 걸까. 그것도 잘 모르겠더라. 그냥 이제 더 뭘 할 수 있을까 싶어 그냥 굴속에 있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열심히는 얼마나 해야지 열심히인지 잘 모르겠다. 열심히 하면 잘 된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된 거 보면 난 열심히 하지 않았던 모양인가 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지치고 힘들까. 열심히 안 했다면 지치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러닝머신을 뛰면 기계 위 계기판엔 시간, 거리, 칼로리가 숫자로 표시된다. 열심히 뛰면 거리는 점점 늘어나고 칼로리도 점점 올라간다. 삶도 이렇게 표시가 되면 좋겠다. 내가 뛴 거리가 얼마인지 그리고 얼마의 칼로리가 빠졌는지. 지도에 나타난 GPS처럼 내가 지금 어디까지 왔는지 알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어디로 얼마만큼만 가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지 알면 이렇게 고민하고, 힘들어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삶은 마치 눈을 가리고 뛰는 마라톤 같다. 그래서 앞을 보지도 못하고,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라 그저 옆인지 뒤인지도 모른 채 앞인 줄만 알고 뛰어간다. 정작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른 채 그냥 열심히 뛰기만 하는 삶이다.


3일 만에 굴에서 나왔다. 3일 내도록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더니 냄새가 났다. 남자 혼자 사는 집엔 쾌쾌한 머스마 냄새가 난다. 엄마는 자주 내 방에 들어오면 머스마 냄새난다고 창문을 획 열어젖혔다. 그래서 창문을 열고 청소를 했다. 쓰레기 봉지가 세 개나 나왔다. 그리고 밖을 나갔다. 그사이 날이 추워졌다. 집으로 다시 들어가 겉옷을 챙겼다. 그리고 카페를 갔다. 글을 썼다.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몰라 그냥 아무 글이나 썼다. 그러다 인스타를 봤다. 인스타에서 유명한 작가가 라이브를 하는 걸 봤다. 이번에 신간이 나왔다며 소식을 알렸다. 그의 인스타 팔로우 수는 10만에 가까웠다. 10만이란 숫자를 얻기까지 그는 어떤 노력을 했을까? 그냥 운으로 얻은 게 아닐 텐데 말이다. 그가 쓴 글을 봤다. 요즘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 글 같았다. 그런 글은 누구나 다 쓸 수 있는 글 같아 보였다. 그런데 비슷한 글인데도 그 사람 글에는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다들 공감한다고 댓글을 달았고, 좋아요도 많았다. 역시 같은 말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개소리가 되고 명언이 되는 것 같다.


나도 인스타에 글을 올리면 유명해 질까? 그러면 나도 막 멋진 척하고, 막 엄마한테 자랑하고 그럴 수 있을까?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약간 인스타 맛나는 그런 위로와 공감을 억지로 하게끔 만드는 그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런 글은 아무나 다 쓸 수 있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3-4시간을 앉아 있어도 글이 나오지 않았다.(오늘도 3시간 앉아 있었지만 하나도 못 썼다. 젠장) 그렇게 힘들게 글을 써도 사실 별로 반응은 없었다. 어떤 사람은 초반에 팔로우 수를 늘리기 위해선 돈을 좀 써서 자동으로 댓글이랑 좋아요 다는? 그런 걸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돈이 어딧냐. 내 주머니 사정을 알면 아마 그런 말 못 할 거다.


일단은 목표를 잡았으니 글을 쓰고 있다. 사실 이글의 목적은 그냥 뭐라도 써야 할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글을 쓰면 쓸수록 오히려 내가 위로되었다. 모든 말들이 내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 더 힘을 낼 수 있었고, 더 용기를 가져 볼 수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주는 말이 사실은 나에게 가장 필요한 말들이었다. 50가지 마음에 대하여는 나에게 하는 말들이었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간만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 엄마가 만들어서 택배로 보내 준 미역국을 녹여서 햇반과 엄마가 만든 김치랑 같이 먹었다. 이것은 온전히 엄마를 위한 것이었다. 33년 전 오늘은 엄마가 가장 고생했을 테니까. 나는 미역국을 먹은 게 아니라 엄마의 사랑을 먹은 것이다. 그 사랑은 미역만큼 부드럽고, 고소했다.

오늘만큼은 조금 열심히 살아 보려고 밥을 먹고 운동을 갔다.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는데 엄마한테서 연락이 왔다.


“아침밥 먹었나? 30만 원 보냈다 생일 선물 하나 사라~”


문자를 보자마자 러닝머신을 뛰러 갔다. 생각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미친 듯이 뛰고 나서 엄마한테 말했다.     

“돈은 뭐하러 보내는데 엄마 선물 사 갈게.”


난 서른셋인데 생일에 아직 엄마한테 용돈을 받고 있다. 줘도 모자란데 말이다. 나란 인간은 이런 인간이다.     

친구가 나에게 오늘 뭐하냐고 물었다. 생일이니까 뭐 특별한 게 있을까 싶어서 물은 거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늘은 어제랑 비슷하다. 운동하고 글 쓰고 책 읽고 밥 먹고 끝. 그게 요즘 내 일상이다. 누군가 댓글로 내 일상 이야기를 올려 달라고 해서 오늘 글을 쓰는 중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는 다음 주부터 독립출판 제작 수업을 들으러 간다. 올해 딱 한 가지 목표는 출간이었는데 아무도 해주지 않는다고 하니 나라도 할 수밖에 없다.(출판사에 따라 반기획출판 즉, 비용을 출판사 반 작가 반으로 계약하자는 제의가 왔는데 거절했다. 돈이 없다.) 이게 마지막이 될지 아니면 시작이 될지 잘 모르지만 왠지 끝에 다다랐다는 느낌이 든다. 이젠 더 버틸 힘이 많이 남지 않은 거 같다. 그냥 왠지 그렇다. 그냥 오늘은 오늘만큼은 좀 괜찮은 하루이길 바랄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숨은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쉬어지니까. 쉬고 있다. 그래서 살고 있는 거 같다. 감사할 따름이다.

작가의 이전글 네 번만에 합격, 브런치 도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