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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Sep 11. 2020

손님이 왕이라는 개소리

은행에서 일하지만 은행원은 아니에요

은행에서 일하며 내가 가장 많이 느낀 것은 난 서비스업과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경비원이 왜 서비스를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서비스업이 아닌 업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서비스업이 업을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일단은 뭔가를 파는 사람은 거의 다 서비스업이라고 보면 된다. 보험을 팔던지, 생선을 팔던지, 꽃을 팔던지 뭔가를 팔아서 이윤을 남기려면 어쨌든 사는 사람을 유혹해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일련의 일들은 전적으로 사는 사람이 유리할 때가 많고 파는 사람이 불리할 때가 많다. 이를 두고 갑을 관계라고 하는데, 유독 대한민국에선 이 갑을 관계가 마치 주인과 하인처럼 여겨지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마치 자신은 영원히 갑으로만 남을 거라는 착각을 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도 뭔가를 파는 사람이라면 어디선가에선 분명 을이 될 것이 분명한데도 말이다.     


군대에서 한 선임이 있었다. 나를 지독하게 괴롭히던 선임은 나를 싫어하는 이유를 몇 가지 대면서 나를 괴롭힐 명문이 자신에게는 충분히 있다고 합리화했다. 물론 그 싫어하는 이유는 ‘후임이라고 들어왔는데 나보다 나이 많은 게 진짜 좆같다.’였다. 나이 많은 게 좆같은 일이 되었다.(1살 많았다..) 그렇게 난 군 생활을 하며 그 선임에게 많은 구타와 갈굼을 당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참아야만 했다. 그게 군대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이것만은 진실했다. 시간이 흘러 나도 어느새 짬밥을 먹을 만큼 먹게 되었고, 드디어 나를 괴롭히던 선임은 제대를 앞두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복도에서 그가 나에게 말했다.     


“희재 형님 진짜 내가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까 형님한테 너무 잘못한 거 같다. 미안하다.”

“00 병장님 아니 이러지 마십시오. 왜 그러십니까.”

“아니다 형님 진짜 미안하다.”

“죄송한데 저는 당신 같은 동생 둔 적 없으니까 자꾸 형님 형님 하지 마십시오.”     


언제까지나 자신이 병장으로 선임으로 남아 있을 줄 알았나 보다. 누구든 그렇다. 내가 지금 갑이라도 언제까지 자신이 갑의 위치에 있진 않을 것이다. 우물 안에서나 그렇지 세상은 내가 살고 있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물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모르는 게 바로 인간관계다. 그러니 웬만하면 적을 만들지 말자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처음으로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설레는 마음과 걱정되는 마음 두 가지가 공존된 상태에서 난 미국이란 곳에서 일어날 일들을 상상하며 환상에 젖어 있었다. 내가 탔던 비행기는 미국 국적기였다. 승객들도 승무원들도 대부분 미국인들이었다. 미국에 도착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미국 같았다. 미국까지 적어도 10시간 이상 비행을 해야 했기 때문에 식사는 물론이고 음료나 담요 등 여러 가지 물품들을 제공해 주었다. 난 가장 창가 쪽에 앉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보는 비행기라 창밖으로 펼쳐진 구름과 하늘을 마음껏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창가 쪽에 앉아있으면 승무원과의 거리가 멀어 주는 물건을 받기가 힘들다. 그래서 팔을 쭉 뻗어서 받거나 옆에 승객이 전해 주기도 한다. 그런데 충격적이었던 건 승무원이 나를 부르더니 가지고 있던 물건을 던질 테니 받으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그리곤 나를 향해 뭔가를 살며시 던졌다. 다행히 그녀가 던진 물건을 잘 잡아냈다. 그랬더니 그녀가 작은 소리로 “Nice catch”라고 했다. 사실 그 물건이 뭔지는 기억이 나진 않는다. 하지만 ‘손님이 왕이다.’는 모토로 살아왔던 내 인생에서 손님에게 물건을 던지며 웃음을 띄고 “Nice catch”를 말할 수 있는 건 마치 “손님과 종업원 우리는 모두 하나예요.”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갑과 을이 모두 같은 계급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다. 이 경험이 단지 내가 동양인이라서 그랬던 걸까?라는 생각은 당시에 들지 않았다. 물론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약 1년간 살았던 미국이란 나라에서 겪은 서비스 문화는 한국의 ‘손님이 왕이다.’라는 것과는 상이하게 달랐음을 느끼게 되었다.      


반면에 한국에선 서비스업은 감정 노동의 장이다. 어떻게든 대접을 받으려고 드는 손님들을 보면 손님이 아니라 손놈으로 보일 때가 많다. 은행에선 이런 손님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특히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면 손님에게 손놈으로 변한다. 이것은 글자만큼이나 한 끗 차이다. 




나는 ‘하면 된다,’ 혹은 ‘안 되는 걸 되게 하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해서 안 되면 그냥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해서 안 되는 건 없다는 생각에 동의하는 건지 꼭 안된다 해도 끝까지 해 달라고 생떼를 쓰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들은 아마도 어디서든 지금까지 그래 왔을 것이다. 안 되면 일단 소리부터 지르고 본다. 한국에선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했던가. 꼭 그럴 때면 목소리부터 키우고 보는 사람들이 바로 손놈들의 특징이다.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손님이 ATM기기에서 20만 원을 뽑았다고 했는데 기계에선 15만 원이 나왔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럴 일이 없는데 생각해서 계좌를 확인해 보니 15만 원이 찍혀 있었다. 아마도 손님이 잘 못 누른 것 같았다. 거의 뭐 99%로 확인하지 않고 누른 게 분명하다. 그렇다고 한들 어차피 나온 돈도 15만 원이고, 빠진 돈도 15만 원이라 손해 본 게 없다. 그래서 그냥 20만 원이 필요하면 5만 원을 다시 뽑으면 될 일인데 웬걸 기계가 자기 돈 5만 원을 먹었다며 5만 원을 내놔 라고 말하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건 뭔 신종 생떼인가 싶었다. 너무 완강하게 소리를 질러대서 지점장님이 직접 나오셨다.(당시 지점장님은 남자분이셨다.) 결국 지점장님은 손님을 말리다 못해 그냥 나더러 경찰에 신고하라고 했다. 근데 웃긴 건 막상 경찰에 신고를 하고 나니 손님은 어느새 조용해지더니 경찰이 도착할 때쯤 되니 어느새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때를 쓰면 5만 원을 줄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무슨 5살 먹은 애도 아니고 때 쓴다고 다 들어주면 버릇 나빠지는 건 애나 어른이나 다 똑같은 거 같다.     


보통 비정규직은 서비스직이 많다. 카페 알바나 편의점이나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식당 같은 곳에는 보통 거의 다가 서비스직이고 그들은 보통 비정규직이다. 특히 편의점은 카페만큼 많고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이다. 한 번은 뉴스에 그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손님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게 반말을 했더니, 아르바이트생도 반말로 대답해 손님이 화가 나 그 일을 커뮤니티에 올렸더니 오히려 손님이 사람들에게 욕을 먹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겉으로 볼 때 어려 보여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반말을 하는 건 지적 수준이 낮은 사람이나 하는 행동이다. 아니면 진짜 무슨 할아버지 정도 되는 나이 차이면 몰라도 말이다. 웃긴 건 그 손님도 나이가 30대였다는 것이다. 자신들도 어리면서 무슨 난 또 한 50-60은 되는 줄 알았다. 무례하고 생각 없는 건 나이와는 상관없는 것 같다. 만약 그 사람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라 변호사였다면 그들은 과연 그렇게 무례하게 대했을까? 만약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비정규직이 아니라 정규직이었다면 그래도 그렇게 무례하게 했을까? 모르긴 몰라도 그분들은 아마 약자에겐 한없이 강하고 강자에겐 한없이 약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하이에나 같은 사람들이 분명할 것이다. 

     

출처 : mbn


서비스업이 다른 일보다 하찮게 여겨져서 그런 걸까? 왜 사람들은 꼭 서비스를 받는 것을 꼭 갑질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려고 드는 걸까? 아마도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서비스’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를 잘못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보통 뭔가를 덤으로 주거나 공짜로 주면 사람들은 꼭 이 말을 덧붙인다.     


“이거 서비스로 드리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걸까. 서비스는 값이 없는 것, 저렴한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서비스업에 일하는 사람조차 값이 떨어지는, 저렴한 사람으로 우리도 모르게 무의식 중에 생각해 버리는 건 아닐까?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한 번은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슈퍼에 장을 보러 함께 갔는데 친구가 자주 가는 곳이라 사장님과 친했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려고 뒤적거리다 내가 원하는 게 없어서 사장님께 여쭤봤더니 없다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고 손님 그 아이스크림은 저희가 원래 들여놓지 않아요. 그런데 손님이 원하시면 내일부터라도 들여놓을게요. 손님이 원하면 해야죠. 손님은 왕이잖아요~”

“사장님 괜찮아요. 그런데 저 왕 아니에요. 그리고 손님도 왕 아니에요. 손님은 그냥 손님이에요.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물론 농담으로 하신 말씀에 진지충처럼 반응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난 대한민국의 서비스 문화가 제발 개선되었으면 좋겠다. 농담으로라도 그런 농담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손님이 손님이 아니라 손놈처럼 굴면 ‘왕’처럼 대하는 게 아니라 ‘놈’처럼 대했으면 좋겠다. 나에게 무례하게 굴면 나도 무례하게 굴어도 그게 정상이라는 것이 상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돈이 많다고 자신이 손님이라고 우월함을 드러내는 사람들에게 고개 숙이지 않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난 늘 손님들에게 일부러 약간의 불친절을 몸에 달고 대한다.(친절하게 해도 경상도 사투리 때문에 약간 불친절하게 느끼기도 한다.) 처음부터 그러면 나중에는 익숙해져 원래 그렇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괜찮다. 모든 서비스를 파는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까지 팔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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