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입점을 확정한 전략적 프로포즈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수습기간 3개월 만에 마주했던 그 '입점 확정 메일'을 떠올린다. 채용의 전제 조건은 명확했다. '올리브영 입점'. 만약 이 미션을 완수하지 못한다면 내 자리의 주인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냉혹한 압박감 속에서 나의 90일 카운트다운은 시작되었다.
퇴점한 브랜드라는 '주홍글씨', 그 너머의 심리
입사 후 직면한 현실은 예상보다 가혹했다. 우리 브랜드는 이미 올리브영에서 퇴점한 이력이 있었다. 보통 퇴점 브랜드의 재입점은 신규 입점보다 몇 배는 더 어렵다. 담당 MD 입장에서도 '한번 실패한 브랜드'를 다시 품는 것은 자신의 인사이트를 걸어야 하는 리스크이기 때문이다. 대형 벤더사조차 손을 놓고 시간만 보내던 이 막막한 상황을 어떻게 반전시킬 것인가.
데이터로 명분을 만들고, 전략으로 심리를 파고들다
단순히 "다시 입점시켜 달라"라고 읍소하지 않았다. 대신 철저하게 올리브영 MD의 관점에서 전략을 재설계했다.
• 카테고리의 해부: 진입할 카테고리의 MD 성향과 올리브영이 올해 집중하는 전략 방향을 동기화했다
• 숫자의 명분: 공식몰 매출의 상승세를 근거로, 올리브영에 입점했을 때 '매출이 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명분을 데이터로 증명했다
• 로드맵의 신뢰: 단순 입점을 넘어 상품 라인업과 마케팅 투자 계획을 구체화하여 MD의 불안 요소를 제거했다
구구절절함 대신 던진 '전략적 프로포즈'
준비가 끝난 후, 이전 직장에서 인연이 닿았던 MD님께 연락을 취했다. 구구절절한 사연 대신 핵심만 담은 '프로포즈'를 던졌다.
"전 직장에서 인사드렸던 000입니다. 현재 브랜드의 핵심 성과와 입점 제안서를 전달드립니다."
(여러 이야기가 담기긴 했지만, 핵심만 축약하자면..)
이미 관계가 형성되어 있었기에 불필요한 탐색전은 생략할 수 있었다. 여기서 말한 관계는 ‘올리브영을 해봤던 사람’이라는 서로 간의 인지 정도이다. 메일을 보낸 후 결과가 나오기까지, MD가 검토 과정에서 조금의 피로도 느끼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민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받은 '입점 확정' 메일.
그 순간의 짜릿함은 비즈니스 세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쾌감이었다.
결국, 관계가 설계를 완성한다
단순히 매출 수치가 좋아서 재입점이 가능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올리브영이라는 채널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가 오가는 고도의 심리전이다.
인사이동이 잦은 이 바닥에서 오늘 헤어진 MD를 내일 다른 채널에서 마주치는 일은 흔하다. 평소에 쌓아둔 '관계의 신뢰'위에 '데이터'라는 확실한 무기를 올렸기에 가능했던 결과였다.
결국 전략의 완성은 정교한 설계도 위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관계의 힘을 더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