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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미래특급_안은미 컴퍼니

Post-Orientalist Express

by 조희진

인스타가 마냥 유해하다고만 생각하면서도 종종 이런 꿀 같은 경우가 있어 안 할 수가 없다. 인스타에서 본 우연한 공연 홍보영상으로 좋은 공연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베를린에 살면서 되도록 흥미 있는 예술 이벤트는 최대한 참여하고자 하는 편인데 모든 정보를 얻기엔 쉽지 않다. 워낙에 많은 행사가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장점이자 단점이랄까.


베를리너 페스트슈필(Berliner Festspiel)에서 안은미 컴퍼니의 '포스트-오리엔탈 익스프레스(Post-Orientalist Express 동방미래특급)' 1차 공연이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며 마지막인 2차를 놓치지 말라는 짧은 영상이 내 알고리즘에 등장했다. 때마침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춥고 어두운 주말에 한 발자국도 나가기 싫은 마음과 동시에 주말인데 이렇게 무료하게 집에만 있으면 뭔가 재미있는 것을 놓치는 것 같은 초조한 마음이 공존할 때라 망설임 없이 티켓 2장을 예매했다. 이미 90% 이상 비싼 좌석은 모두 매진이었고 2층 맨 뒤에 저렴한 몇 개 좌석만 남아있었다. 역시, 재밌는 거 나 빼고 다 부지런히 알고 있었어.


올해 3월 히토 슈타이얼 전시를 보기 위해 방문했었던 베를리너 페스트슈필은 8개월 만이었다. 그때도 이번에도 여전히 깜깜하고 추운 밤이었고 건물 밖의 커다란 전구조명은 심플하면서도 충분히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2층 좌석이 아쉬울 것 같았는데 무대와 멀다는 단점이 있지만 오히려 무대를 한눈에 크게 담을 수 있어 전체 분위기를 관조할 수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관객이 자리를 찾아가고 공연장 조명이 여전히 환하게 켜져 있는 동안에 이미 무대 위에는 한 명의 무용수가 등을 보인체 의자에 앉아있었고 점점 한쪽으로 기울어져갔다. 배경으로는 아라비아 로렌스의 장면이 등장했다. 인스타그램에서 본 홍보영상은 조금 키치 할 수도 있겠다 싶었고, 너무 키치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공연의 시작을 기다렸다.


테크노 클럽의 레이저쇼 급의 다양한 색의 화려한 조명이 무대의 분위기를 빠르게 전환시켰고 무엇보다 등장하는 무용수들의 의상과 소품은 관객을 빠르게 집중시켰다. 처음에는 너무 화려한 부속품들이 무용수들의 안무를 가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몸의 표현이 잘 드러난 미니멀한 무용극을 선호하기에 화려한 공연을 많이 접하지 못했다. 그런데, 역시나 기우였고 나의 넓지 못한 경험에서 오는 부족함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음악과 무용수들의 몸의 쓰임,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한 의상과 소품은 모두 한데 잘 어우러져 마치 하나의 커다란 불꽃이 굴러가는 느낌이었다. 그 불꽃에 관객이 모두 휩쓸려 함께 힘차게 굴러나갔다.


서커스를 연상케 하는 날아다니는 무용수들의 에너지가 공연장 전체를 감싸 안았고 그들이 점점 몰입하며 신나 하는 것이 보는 이에게 온전히 전달되었다. 중간쯤 큰 깃발을 든 무용수 둘이 힘차게 뛰어오르며 서로 눈을 마주치며 살짝 미소를 짓는 그 순간 살짝 전율이 느껴졌다. 깃발이 날개가 되어 한껏 날다온 순간이었다. 그들은 지금 어느 세상에 있을까. 이성이 무의미한 곳에서 온전히 본능적인 감각을 지닌 육체만이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부분은(역시나 취향 어디 안 간다) 중국식 무술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중간 부분이었다. 화려한 의상대신 빨간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무술을 연마하듯 7명의 무용수가 사방천지 구르고 달렸다. 간소한 의상과 심플한 조명으로 몸의 움직임이 더욱 명확하게 보였다. 무용수들은 서로 주고받는 듯이 기합을 넣는 소리를 질렀고 빠른 비트의 음악과 내지르는 목소리는 흥분을 더욱 고조시켰다.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서일까 더욱 가까이 나도 그들 사이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은.


점점 무르익는 공연의 흥분이 어디까지 올라갈까 싶은 지점에 검정 벨벳드레스에 황금색 용한마리카 크게 그려진 드레스를 입은 안은미 무용가가 단독으로 등장한다. 큰 몸짓 없이 활을 쏘는 듯한 몸짓으로 무대를 한 바퀴 훑었다. 관객들의 시선을 한껏 집중시키고 음악소리가 잦아들며 그다음으로는 무엇이 펼쳐질지 모두가 지켜본다. 나 역시 어떤 안무를 보여주실까? 하는 데에 갑자기 기합을 넣으시며 상대무용수가 들고 있는 나무판을 격파한다! 예상치 못한 진행에 관객 모두는 유쾌하게 놀라며 웃음을 터뜨린다. 그 뒤로 잠깐 나오는 우아한 그녀의 춤선.


아름답다. 무용수의 몸짓과 그들의 호흡과 마지막까지 선보이는 진심 어린 환희의 미소가. 그림을 보고 영화를 볼 때와는 또 다른 전율과 감동이다. 예술가와 관객이 주고받는 흥분의 기운이 가득한 생동감은 그 무엇보다 여운이 길다. 짧은 순간 서로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어디에서도 받지 못하는 감성적 활력을 받는다.


*Post-Orientalist Express 홍보기사나 자료에 항상 현대미술평론가 임근준(a.k.a 이정우)이 왜 함께 등장할까 궁금했는데, 이 공연에 '메타-드라마터그'로 참여했다고 한다. 덕분에 생소한 직업 하나 배웠다. 내가 이해한 것은, 창작자 가까이서 작업하며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될지 함께 고민하는 내부 비평가? 였다. 작업의 진행과정을 몸소 체험하며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비평적 시각을 갖추며 볼지에 대해 고민하며 리서치를 바탕으로 전체 극의 방향을 조절하는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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