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네스의 나라 더블린

기네스의 맛보다 따뜻한 사람들이 더 인상 깊었던 더블린이었고

by 조희진

광고 메일은 모두 차단하는 편이지만 유럽 저가 항공사의 메일은 차단하지 않았다. 덕분에 자주는 2주에 한 번꼴로 '초특가 항공권'을 외치는 메일을 받는다. 환경운동에 진심인 사람들이 유독 많은 것 같은 베를린에서 저가 항공권을 자주 타는 것은 그리 자랑스러운 일이 못되는데 그렇다고 아예 외면하기도 쉽지 않다. 가끔은 너무 저렴한 가격이라 죄책감이 들면서도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다. 여기서 죄책감이란, 마치 저렴한 옷이나 식재료를 사기 전에 누가 이 제품을 위해 노동을 했는지 살펴보면 그 뒤에 숨겨진 착취에 가까운 노동조건을 알게 되는데에서 생긴다. 저렴한 비행기는 어마어마한 이산화탄소를 비용 없이 공기 중에 뿌려대는 값이지 않을까.


그 유혹에 또 한 번 넘어가 더블린행 항공권을 샀다. 첫 번째 이유는 저렴하다는 것, 두 번째 이유는 한 번도 안 가본 도시라는 것. 긴 겨울의 베를린을 잠깐이나마 벗어나고 싶은 마음으로 아무 정보도 없이 덜컥 결제를 했다. 그 덕에 생각보다 저렴하지 않은 호텔과 비가 계속 내리는 날씨는 나중에 고민해야 했다. 예약된 비행기 티켓을 가진 체 호텔과 날씨를 살펴보며 여행에 대한 기대는 점점 낮아졌다. 주말이 껴있는 짧은 일정동안 숙박은 왜인지 턱없이 비쌌고 날씨는 내내 비가 올 예정이었다. 심지어 잠깐은 비행기티켓을 날려버릴까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기대감 없는 여행을 준비했다.


기네스 말고는 아는 것이 없는 더블린이었다. 그리고 실제 며칠 둘러보며 느낀 것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더블린 자체가 기네스였다. 펍문화가 크게 발달한 도시에서 그 펍을 장악하고 있는 흑맥주. 아일랜드의 수도인만큼 여러 분야로 나누어진 국립 박물관과 역사박물관이 많았는데 모두 무료입장이었다. 그렇지만 기네스 공장투어 입장료는 30유로이고 대부분의 관광객이 아일랜드 역사박물관은 지나쳐도 기네스 공장은 지나치지 않는다. 나와 발터는 2인 60유로를 내고 맥주공장을 관람하느니 그만큼의 기네스를 마시자는 공통된 의견이었고 무료입장인 국립역사박물관에서 4시간을 보냈다.


너무 기대가 없었던 탓일까. 도착하자마자 더블린이 좋았다. 비가 오는 둥 마는 둥 영국식 흐린 날씨가 이어졌지만 베를린에 비하면 봄이었다. 베를린 겨울을 겪으며 지레 겁먹고 너무 두껍게 껴입고 온 나머지 하루 종일 밖을 걸어 다녀도 전혀 춥지 않았다. 오히려 몸에 슬슬 열이 올라오면서 펍에 들어가면 갓 뽑은 기네스를 벌컥벌컥 들이마실 수 있었다. 맛있는 기네스도 감동이었지만 더블린의 사람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놀라울 정도로 친절하고 밝았다. 이렇게 내내 흐리고 비가 오는 날씨에서도 사람들은 흥이 넘쳤고 따뜻했다. 해가 많이 나는 나라 사람들이 흥이 많다는 나만의 날씨와 성격의 연관 공식이 무너지는 경험이었다.


멋모르고 우선 올라탄 버스에서 기사에게 티켓 어떻게 사는지 물어봐도 짜증 한번 없이 너털웃음 지으며 자세한 정보를 알려준다. '동전만 가능해. 카드만 있으면 내려서 슈퍼에서 사 와야 해. 나는 태워주고 싶어도 검사원이 오면 어쩔 수 없거든'. 여러 펍을 돌아다니며 기네스를 시키는데 왜 펍마다 조금씩 다른 맛이 나는지 물어보면 시끄럽고 바쁜와중에도 펍 직원은 공감하며 얘기해 준다. '맥주 온도나 파이프 기압 등 여러 조건으로 맛이 다를 수 있어. 나도 같은 기네스여도 매번 맛이 조금씩 다른 것을 느껴'.


펍에서 라이브 음악을 연주하는 아이리쉬문화는 '공연'이라기보다 정말 '연주'였다. 따로 무대가 있는 것이 아닌 펍 한편의 소파에서 연주자들이 연습처럼 맞춰가며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뮤지션들이 모여 연습하는 공간이 펍이었고 그 음악을 조용히 경청하기보다는 맥주를 손에 들고 연주를 배경음악 삼아 수다삼매경에 빠진 동네 사람들이 아이리쉬 펍 문화를 완성하고 있었다. 다른 맥주와 달리 시간차를 두고 두 번에 나누어 따라야 하는 기네스 맥주를 한 번에 8잔씩 순식간에 뽑아주는 경력 있는 직원들이 경이로워 보이는 기네스의 나라였다. 기네스의 맛보다 따뜻한 사람들이 더 인상 깊었던 더블린이었고.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