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만 한 스콘처럼 투박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
더블린에서 벨파스트까지는 기차나 버스로 2시간이면 넘어갈 수 있다. 가깝지만 EU회원국 가입여부가 다르고 화폐도 다른 엄연히 다른 나라이다. 영어 엑센트도 자세히 들어보면 다른데 잘 못 알아듣겠는 것은 비슷했다. 약 100년 전까지만 해도 한 나라였으니 문화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더블린에 비해 벨파스트는 더욱 거친 느낌이었다. 많은 관광객들은 한여름에 하이킹을 목적으로 많이 방문하는 지역으로 겨울에는 내내 비가 온다. 현지사람들도 이 우중충한 날씨를 피해 따뜻한 나라로 휴가를 가는 이곳에 나는 한겨울에 왔고 말 그대로 매일 비가 왔다.
벨파스트는 나름 UK 소속 국가가 맞음을 슈퍼마켓에서 느꼈다. 아침에 요구르트를 사러 간 슈퍼마켓에서 잊고 있던 영국 유학시절이 생각났다. 내가 다닌 학교는 런던 남서쪽에, 부촌과는 거리가 먼 '워킹 클래스 working class'라 불리는 노동자들과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 있었다. 영국은 슈퍼마켓에 따라 확연히 품질과 가격 차이가 있어 지역마다 어떤 슈퍼마켓이 있는지 살펴보면 대략 경제적인 수준을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벨파스트의 시내에 있는 슈퍼마켓들은 마치 옛 런던 학교 근처의 슈퍼마켓과 꽤나 흡사했다. 신선한 채소, 과일보다는 쉽게 조리가능한 반 조리제품이 많았고 무엇보다 달디단 설탕이 가득 들어간 간식류들이 고작 1파운드라는 세일표시를 거대하게 붙이고 있었다. 서유럽에서 영국만큼 달고 싼 음식 파는 곳이 또 있을까.
더블린에서 가깝다는 이유 말고는 벨파스트에 방문한 이유가 딱히 없었다. 한때 조선사업이 활발했던 도시로 타이타닉이 여기서 만들어져 타이타닉 박물관도 있었지만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 대신, 가이드를 따라다니면서 듣는 워킹투어 Walking Tour를 찾았고 수많은 투어 중 '피스 라인'을 중심으로 다니는 '정치+역사 투어'를 선택했다. '피스 라인' 중심으로 다닌다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투어검색 중에 알았고 이 작은 도시에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분쟁이 있었다는데 구미가 당겼다.
'피스 라인 Peace Line'은 말 그대로 평화를 유지하게 만들어놓은 경계선으로 높이 세워진 담벼락이다. 단, 베를린처럼 도시 전체를 하나의 벽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도시 곳곳에 몇십 미터의 벽이 세워져 있다. 1969년 가톨릭지역과 개신교지역이 충돌하는 '벨파스트 폭동'이후 종교가 다른 거주자들끼리 마주치지 말고 싸우지 말라는 뜻으로 곳곳에 담을 세웠다. 단순 종교적 충돌이라기보다는 1920년대 아일랜드가 남과 북으로 분단되고 영국지배 아래 있던 북 아일랜드가 영국으로 넘어가느냐 마느냐 논쟁이 종교를 바탕으로 갈라졌다.
독실한 카톨릭계 민족주의자들은 아일랜드로 남아야 한다를 주장했고 개신교의 친영국주의자들은 영국으로 포함되기를 주장했다. 벨파스트는 개신교 친영국주의자가 다수였고 결국 영국의 한 주가 되었다. 그 후, 소수인 카톨릭계 민족주의자들은 일자리나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데에 차별을 당하며 불리함을 겪었고 그에 반하는 폭동이 벨파스트 폭동이다. 두 개의 이념이 다른 집단이 테러와 총격을 범하고 이를 관리하겠다는 목적으로 영국에서 군대를 보내 벨파스트를 장악한 역사가 고작 몇십 년 전이다 보니 작은 도시는 여전히 매서움이 남아있었다. 다녀본 도시중 이렇게 철조망이 많은 곳은 처음이었다. 거대한 톱니가 사방팔방 달려있는 철조망은 유치원과 놀이터를 포함한 모든 시설에 경계를 긋고 있었다.
1990년대 후반 어느 정도 충돌이 잦아들며 삭막한 도시를 재생해 보겠다는 시도로 벽화를 그렸다고 한다. 가이드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시민들이 벽화를 대하는 태도도 설명했다. "벨파스트 사람들 벽화에 진심이라 여기 그라피티 하면 어느 정도 불이익의 책임을 감수해야 해요. 또한, 정치적인 상징의 그림도 많아서 벽화를 그린 화가를 공개하지 않는 것도 일반적이에요. 누군가에게 저격을 당할 수도 있어서요." 다양한 신념이 자유롭게 토론되기보다는 흑과 백으로 나뉜 두 집단이 맹목적으로 자신의 소속집단만을 주장하는 분위기가 남아서 그런 것일까. 낙서 하나 없이 깨끗하게 유지된 선명한 벽화들이 내 눈에는 인터넷에서 보던 북한의 선전물과 흡사하게 보였다.
80년대, 90년대만 해도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였다는데 그조차 모르고 방문한 나는 세 시간 내내 비 맞고 걸어 다닌 역사 투어 덕분에 벨파스트를 조금이나마 알았다. 내내 비가 오다 집에 가는 공항버스를 타는데 어렴풋이 햇살이 비췄다. 양 떼들이 가득한 햇살 받은 풍경을 보고 있자니 살벌한 벨파스트의 역사는 마치 이곳과는 상관없는 듯했다. 더블린과 벨파스트에서 마셨던 커피는 모두 맛있었고 어디에서나 파는 주먹만 한 스콘처럼 투박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