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었다고 했다

목련은 그렇게 차가운 겨울기운이 남아있는 봄밤에 만개한다.

by 조희진

동트기 직전 새벽쯤 빗소리가 들렸다. 잠이 들었음에도 어렴풋이 생각했다. '비가 내리나 보다, 그러면 길 위의 얼음이 다 녹겠지. 아침이 되면 새하얀 세상은 이제 없어지는 것일까.' 일어나 커튼이 제쳐진 창문밖을 빼꼼히 내다보는데 시선이 멀리 닿기도 전 보이는 바로 앞 발코니가 새하얗다. '왜지? 왜 눈이 안 녹았지? 어젯밤 들은 것은 꿈이었던 걸까?' 제법 잠귀가 밝다고 생각했는데 오지도 않은 빗소리를 들은 것은 환상이었나 싶을 때쯤 알았다. 지난밤 무엇이 내리긴 내렸는데 비가 아니고 굵은소금 같은 얼음 우박이었다는 것을.


발코니문을 열고 오른발이 문밖의 차가운 바닥에 닿자마자 미끄러졌다. 다행히 한 손으로 문을 잡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몸은 실내에 있고 오른발 한쪽만 밖에 두고 자빠지는 꼴이 될뻔했다. 늘 비가 오는 영상의 어정쩡한 겨울을 겪으면서 차라리 영하로 기온이 떨어지더라도 비 좀 그만 왔으면 바랬던 겨울이 있었다. 딱 올해가 바라오던 그 겨울인데 왜인지 춥고 고달픈 것은 똑같다. 아무래도 한국의 코 끝이 떨어져 나갈 듯 차갑지만 쾌청한 겨울 느낌을 베를린에서 바라는 것은 무리였던 게지.


추운 날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자니 고립된 느낌이다. 온 세상 하얗게 아름다운 뷰와 함께 적막함만 가득하다. 커피를 내리는 아침에도 점심을 먹고 난 후 오후에도 주방 창밖의 풍경은 여지없이 예쁘고 길 위에는 아무도 없다. 하교시간이면 늘 시끌벅적하던 놀이터도 텅 빈 채 새들만 간간히 날아다닌다. 유독 노인이 많이 사는 우리 동네는 비가 오고 추운 것보다 길이 미끄러운 것이 주민들의 외출을 막는 더 큰 장애물이 될 것이다. 반사신경 좋은 젊은 사람도 겨우 거북이처럼 기어가는 이 얼음판 길은 80이 넘은 노인들에게는 엄두도 못 내는 것이다. 키가 큰 마른 나뭇가지만 바람에 휘날린다. 창을 닫아도 들려오는 요란한 바람소리가 맹렬하다.


환경오염의 이슈로 베를린은 염화칼슘을 개인이 마음대로 뿌릴 수 없다. 정해진 기관에서만 일정량 뿌려주는데 그 양이 올해 오는 눈에 비해 현저히 부족하다. 눈이 내린 후 영하의 날씨가 유지되는 날이 반복되다 보니 눈은 얼음이 되고 그 얼음 위에 또 눈이 내려 얼어붙는다. 해가 나지 않아 구름 가득한 얼음 도시는 24시간 내내 비슷한 온도로 냉동고처럼 꽁꽁 푸르스름하다. 어제가 입춘이었다고 하는데 봄은 사람들의 마음속으로만 오는 것일까. 여전히 바깥은 겨울이어도 입춘이 오면 기운이 바뀐다는데, 그 기운은 누가 느끼는 것일까.


한국에서는 이른 봄에 피는 꽃이 목련이었다. 마치 대학 새내기처럼 차디찬 겨울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봄옷을 입고 나다니는 것 마냥. 목련은 그렇게 차가운 겨울기운이 남아있는 봄밤에 만개한다. 매서운 겨울바람 사이에서 봄냄새가 나는 날 주위를 둘러보면 목련나무가 만개해 있었다. 유럽에도 목련이 있지만 한국의 것과 달랐다. 꽃나무의 품종이 동일할지라도 초 봄밤공기의 촉촉함이 다르고 땅 위를 감싸는 대지의 기운이 달라 같은 꽃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대신, 유럽에는 미모사가 있다. 작은 별송이들이 달린 것 마냥 샛노랑을 뿜어내는 미모사가 봄을 가득 이끌고 온다. 겨울 끝무렵에 제일 많이 볼 수 있는 수선화나 튤립은 너무 흔해서 감동이 덜 한 것일까. 유독 미모사가 봄의 정령처럼 추위를 뚫고 입춘에도 못 느꼈던 봄의 기운을 쏟아주는 것 같다. 어제 놀러 간 친구의 아뜰리에에 미모사 한 다발이 탐스럽게 꽃병에 꽂혀있었다. 창밖으로는 눈이 가득 쌓여있는 배경으로 미모사를 바라보자니 겨울 안의 움트는 봄이었다. '벌써 미모사를 구했어?'라는 내 질문에 '이 미모사는 이탈리아에서 비행기 타고 온 거야'라고 설명해 줬다. 그 친구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베를린에 산다. 고향에서 지인이 베를린을 방문하며 고향의 봄을 가져다준 것이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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