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묘지 산책

뿌리까지 다른 문화가 공존하는 이 도시

by 조희진

공동묘지를 산책한다 그러면 한국사람들은 화들짝 놀라겠지. 유럽에서는 묘지가 산책의 공간이기도 하다. 전통적으로 기독교문화를 가진 대부분의 유럽나라들은 동네 성당이나 교회를 중심으로 묘지가 생성되어 있다. 한국의 대부분 공동묘지는 도심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지만 유럽은 예전부터 있었던 그대로 도심 한가운데에 공원처럼 묘지가 자리 잡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리운 이를 기리는 공간이 되는 묘지공원은 나에겐 멀리 가지 않아도 조용히 걸으며 대화할 수 있는 곳이라 계절에 한 번씩은 가게 된다.


가끔은 여행자들도 묘지공원을 찾는다. 종종 유명인들의 묘지가 있다고 알려진 유명한 곳들이다. 내 경험을 바탕으로 꼭 알아두었으면 하는 것은, 묘지공원은 개방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고 여름과 겨울의 시간이 조금씩 다르다. 겨울이 해가 짧으니 오픈시간도 조금 더 짧다. 대부분의 입구에는 조그만 간판에 개방시간이 쓰여있는데 어느 날은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 결국 문제가 되었다. 커다란 묘지는 입구가 여러 개인 경우가 많다. 나와 발터는 동쪽 문으로 들어가서 서쪽 문으로 나올 계획으로 산책길을 걸었는데 들어갈 땐 열려있던 문이 나올 때에는 닫혀있었다. 매우 큰 묘지공원이어서 가로질러 오는데 20분쯤 걸렸을까. 그 사이 개방시간이 끝났고 관리인이 문을 잠그고 퇴근을 해 버린 것이다.


3미터는 족히 넘는 고풍스러운 철제문이 굳게 잠겼다. 철제문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갇힌 우리를 보고 안타까워했지만 별다른 도움을 줄 수는 없었다. 둘러보니 매우 높은 담벼락은 체격 좋고 운동신경 좋은 남자들은 넘어갈 수 있을 듯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자전거도 가지고 있었으니 별수 없이 문이 열려야만 나갈 수 있었다. 잠깐 당황했지만 오픈시간 옆에 쓰인 전화번호를 발견하고 전화를 했다. 전화만 하면 담당자가 달려와 열어줄 줄 알았던 것은 너무나 순진한 나의 예상이었다. 이 전화번호는 어딘가 전체 중앙센터로 연결이 되었는지 어느 지역의 어느 묘지공원이냐고 물었다. "네? 여기 베를린인데요...?" 다행히 담당자는 친절했고 결론적으로는 경찰로 연결되어 한 30분쯤 후 경찰차가 와서 열어주는 해프닝이 있었다. 다행히 그때는 여름이었다. 약 한 시간 동안 발을 동동 구르며 여기저기 나갈 방법을 알아보는 통에 정신은 없었어도 해가 지지 않는 초록 가득한 여름저녁의 추억이 될 수 있었다. 겨울이었다면 너무 혹독 했겠지.


지난 주말엔 문이 닫힐 걱정 없는 대낮에 묘지공원을 걸었다. 하얗게 눈이 쌓인 돌비석은 유독 추워 보였고 가끔은 누군가가 와서 켜놓고 간 촛불이 아직도 일렁이고 있었다. 이렇게 묘지가 있는 교회에는 추모홀(독일어로는 트라우 어할 레 Trauerhalle)이 있다. 추모홀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그 뒤로 펼쳐진 묘지공원에 관을 묻는 것이다. 대부분의 추모홀은 교회의 역사만큼 오래 전이 지어진 것인데 이제는 더 이상 추모홀로 사용되지 않는 곳이 종종 있다. 그런 곳은 미술관이나 카페, 식당 등의 다양한 공간으로 변경되기도 한다. 베를린의 노이쾰른에도 그런 곳이 하나 있다. 카페 21그람은 근사한 벽돌건물로 지어진 천장이 높고 고풍스러운 모양새를 그대로 간직한 추모홀에 몇 년 전에 오픈했다. 그곳에서 커피 한잔하고 돌아오는 길 묘지공원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묘지의 이름과 날짜등을 살펴보면 그 동네의 역사가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멀리 살던 사람이 이곳에 묻힐 일은 드물다. 대부분이 이 근처에서 살았을 것이다. 교회 안의 묘지인 만큼 곳곳에 십자가가 세워있었지만 노이쾰른 지역의 무덤인지라 무슬림 묘지가 많았다. 한 구역은 규모가 꽤 큰 무슬림묘지로 비석의 사망일을 보니 아주 오래전부터 구성된 듯했다. 교회에서 지정해 놓은 묘지의 자리와 산책길을 어느 정도 지키기는 했지만 무슬림의 묘지는 머리가 모스크의 방향으로 향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일반 기독교 신자들의 묘지 방향과 반대되게 세워져 있어 누가 봐도 구분할 수 있었다. 기독교 공동묘지에 자리 잡은 무슬림 묘지는 참으로 노이쾰른스러웠고 베를린다웠다. 흔히들 더럽고 위험한 지역이라는 노이쾰른에 점점 애정이 간다. 뿌리까지 다른 문화가 공존하는 이 도시는 베를린의 관대함이라고 해야 할까 이슬람의 강인 함이라고 해야 할까.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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