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가 없다>의 동호 엄마

배우 우정원. 내게는 이병헌 손예진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그녀에요.

by 조희진

베를린에 살면서 내 나라, 한국에 대한 애정이 딱히 강하다고 생각한 적 있을까? 딱히 없는 것 같다. 주변에 아주 어렸을 때 해외로 나온 지인들을 보면 유독 한국 적인 것과 고유한 전통의 아름다움에 더욱 매력을 느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 내 나라 문화를 충분히 경험하고 즐길 기회가 없었던 결핍 탓인 듯하다. 서른이 다돼서 공부를 시작으로 유럽에 살기 시작한 나는 그들과 달랐다. 사대주의까지는 아니지만 새로운 것, 서양의 이국적인 것이 더욱 눈에 들어오고 인상 깊게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를린에서 한국의 것을 경험할 기회가 생기는 것은 소중하고 즐거운 일이다.


1년 겨울을 끝무렵 10일 동안 진행되는 베를린 영화제는 얼어붙은 베를린에 활기를 더해주는 불씨 같은 행사이다. 예술에 큰 애정과 관심이 많은 사람이 대부분인 베를린에서 종합예술인 영화를 주제로 하는 행사이기에 의미가 깊다. 오프닝 티켓은 물론 전체 기간 동안 상영하는 영화는 대부분 만석이다. 또한, 독립극장이 많고 잘 발달되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곳으로 영화제 기간에는 그들만의 또 다른 프로그램도 선보인다. 수많은 영화 중 내가 아는 이름의 감독과 친근한 배우가 등장하는 한국 영화가 주목을 받는 것은 나랑 아무 상관없음에도 불구하고 신이 난다. 올해는 <어쩔 수가 없다>가 나를 신나게 하는 영화다.


지난 10월 한국에 갔을 때 마침 이 영화가 개봉한 지 얼마 안 되었었다. 몇 년 만에 한국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것도 좋았지만 내 오랜 친구가 영화에 참여했어서 더 뜻깊었다. 스무 살 때부터 붙어 다니며 우리를 웃겨주던 그녀가 배우로 '동호 엄마'역할로 등장했다. 이제는 애기엄마들이 된 친구들은 우리, 이 영화는 같이 봐야 한다며 내 한국 방문 날짜에 맞추어 영화 관람일을 정했다. 워킹맘들이라 일하랴 애보라 바쁜 와중에 굳이 시간을 내어 나의 스케줄에 맞춰준 것에 감사했다.


한국에 도착한 다음날 본 영화였다. 시차적응이 전혀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잠이 오지 않았다. 왜인지 떨렸다. 그녀는 스무 살을 갓 넘긴 대학시절 뜬금없이 연기를 하겠다며 극단에 들어갔다. 동양화를 전공하던 미대생이 대학로의 작은 연극무대에 올랐고 우리는 그녀의 첫 연극부터 관람했다. 그다음에는 경기도립 극단에 들어가 꽤나 굵직한 역할을 맡았다. 더 나중에는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주인공으로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관객을 꽉 채운 공연을 수없이 했었다. 10년이 넘는 시간이었다. 그녀는 꾸준히 연기했고, 운동하며 몸을 가꾸고 나중에는 종종 드라마에 작은 역할로 얼굴을 비추었다. 그리고 단역으로 영화 <어쩔 수가 없다>에 '동호 엄마'역을 맡았다. 배우 우정원.


이병헌과 손예진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대표 배우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동호 엄마'는 같은 단역인 '동호 아빠'보다도 임팩트가 더 작았다. 그렇지만 우리 눈에는 이병헌 손예진보다 배경으로 등장한 그녀가 더 크게 들어왔고 한마디 대사라도 칠 때면 가슴이 울컥울컥 했다. 한 번이라도 더 크게 잡히길 바라는 마음으로 2시간 영화를 몰입하며 보았다. 영화가 끝났다. 온몸에 긴장이 그제야 풀린 듯했다. 나란히 앉은 우리 6명은 극장 안의 조명이 커지고 한참 후 사람들이 거의 다 빠져나가고 천천히 일어났다. 아니, 우리가 부모도 아닌데 뭐 이렇게 뿌듯하고 기특한 마음이 드는 걸까. 그저 서로가 참 비슷비슷하게 이십 대, 삼십 대의 세상의 낯을 몰라서 어쩔 줄 몰라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희뿌옇던 불투명했던 시간을 함께 보냈을 뿐인데 말이다.


영화를 본 사람들에게 내 친구가 나왔다고 얘기해도 '동호 엄마'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여기저기 끊임없이 자랑하고 다니고 있다. 이제는 베를린에 상영을 시작했으니 독일 친구들에게도 실컷 알릴 것이다. 거기 '동호 엄마'가 내 친구라고. 나한테는 그 어떤 주인공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라. 참, 심지어 베를린에 상영되는 독일어 번역도 독일에 있는 내 친구가 했다지. 나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영화이지만 여러모로 내 마음이 가득 쓰이는 영화다. 독일에서도 큰 성과 거두기를!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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