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하늘이 다리를 놓았다

by 김희진

준하는 모스크바에서 스웨덴으로 떠났다.

그 뒤로 우리는 오랜 시간

사진으로만 서로를 바라보았다.


화면 속 아이는 점점 자라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을 손으로 만질 수 없다는 사실이

늘 아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몹시 보고 싶어 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우리는 스웨덴으로 향했다.


다시 만난 아이는 훌쩍 자라 있었지만

눈빛만은 그대로였다.


함께 지낸 스물하루.


아침을 함께 먹고

손을 잡고 마켙에 가고

놀이터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먹던 시간.


그 모든 순간들이

조용히 마음에 새겨졌다.


스웨덴에 도착해

준하를 처음 만난 날이었다.

우유를 사야 한다기에

손을 잡고 함께 마켙으로 가는 길 위에

무지개가 떠올랐다.


비와 햇살이 만난 자리,

그 사이로 걸린 무지개.


그날, 하늘이 다리를 놓았다.

우리의 시간 위에.


준하는 다시 만나고도

이삼 일쯤 지나야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입이 열리고 귀가 열린다.


세발자전거를 타던 아이에게

두 발 자전거를 가르치던 날,


아파트 지하의 긴 통로에서

넘어질까 가슴 졸이며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던 우리.


아이는 끝내

스스로 균형을 잡았다.

그날 이후

세상은 조금 더 넓어졌다.


함께 걸었던 마켙으로 가는 길,

자전거 바구니에 담긴 우유 한 팩,

그 작은 기쁨들.


그것들이

지금은 가장 크게 남아 있다.


만남이 깊어질수록

이별은 조용히 다가왔다.


공항으로 향하던 길,

손을 흔들던 순간,

말보다 먼저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우리는 알았다.

다시 만날 것을.


그리고 또 한 번의 만남.


칼스크로나의 바닷가.

잔잔한 물 위에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고

멀리 등대 하나 서 있던 곳.


그곳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다.


눈 덮인 길 위를

아이와 나란히 걸으며

나는 생각했다.


우리의 만남은

끊어진 적이 없었다는 것을.


하늘에서 시작된 길은

바다까지 이어져 있었고,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다시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준하는 스톡홀름에서 학교를 다니며

전기과를 공부하고

실습을 나간 작업 현장 사진까지 보내온다.


준하는 이제 열여덟이 되었다.


혼자서도

길을 건너올 수 있는 나이,

자기 힘으로

하늘길을 건너올 수 있는 나이.


다가올 여름

한국으로 오겠다는

그 한마디에

기다림은 더 이상 쓸쓸하지 않다.


이제는 우리가 가지 않아도 된다.

아이가 스스로

하늘을 건너

우리에게로 온다.


그날 하늘이 놓아주었던 다리는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우리 사이에

그대로 놓여 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다.


그 아이가

다시 우리에게로 오는

그 길 위에서.


---


작가 소개

김희진(구 김정희)

2006년 등단, 2016년 첫 시집 『초록치마 다홍저고리』 출간.

2022년 『오늘도 하늘은 오렌지 빛깔 있습니다』 발표.

한국문인협회, 강서문인협회 회원.

작가의 이전글보석상자를 닫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