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하늘은 잿빛이었다.
그러나 그 아래 서 있는 우리는
밝은 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빅벤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나는 그저 여행자였다.
템스강 위로 바람이 흐르고
런던아이는 천천히 시간을 돌리고 있었다.
그날의 런던은
움직이는 도시였다.
사람들이 오가고
버스가 지나가고
강 위에는 배가 떠 있었다.
나는 그 풍경 속에서
한 장의 사진처럼 서 있었다.
그러나
대영박물관의 문을 들어서는 순간
시간이 달라졌다.
유리 천장 아래 쏟아지던 빛 속에서
수천 년의 시간이 숨 쉬고 있었고
나는 그 앞에서
말을 잃었다.
누군가의 손끝에서 태어나
오랜 세월을 건너온 것들—
그 앞에 선 나는
지금을 살고 있으면서도
이미 과거 속에 들어가 있는 듯했다.
발걸음은 조심스러워지고
마음은 저절로 고요해졌다.
내셔널 갤러리에서는
또 다른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림 앞에 서면
그림은 단순한 색이 아니라
사람의 숨결이 되고
삶이 되었다.
한 획 한 획이
그 시대의 이야기였고
그 사람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이렇게 많은 시간이
이 한곳에 모여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밖으로 나오니
다시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트라팔가 광장—
그곳에는
지금 이 순간이 살아 있었다.
누군가는 음악을 연주하고
누군가는 몸짓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어
그 시간을 함께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 속에 서 있었다.
방금 전까지
수천 년의 시간을 지나왔던 내가
이제는
지금의 시간 한가운데 서 있었다.
광장의 공연을 뒤로하고
골목으로 발길을 옮기자
어디선가 구워지는 냄새가
바람을 타고 흘러왔다.
작은 상점 앞에서
고소하게 익어가는 육포를 맛보며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짭짤하고 깊은 맛이
입안에 퍼지며
여행의 피로마저 녹여주었다.
그날의 런던은
눈으로만 보는 도시가 아니라
혀로,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는 도시였다.
나는 다시 걸었다.
그리고 알 것 같았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겹쳐 있는 것이라는 것을.
과거는 박물관 안에 있고
현재는 광장 위에 있으며
나는 그 사이를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다시 그곳을 걷고 있었다.
사진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그날의 바람과 사람들 사이를 지나
다시 런던의 길 위에 서 있었다.
빅벤은 여전히 시간을 알리고
광장에서는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여행은 끝났지만
기억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한 장의 사진 속으로
다시 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