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의 크고 작은 작품들을 돌아보는 동안, 강진의 하늘이 유난히 파랗다. 문득 깨닫는다.
저 아름다운 구름의 문양이 이미 천년의 청자 속에 스며 있었음을.
푸른 하늘과 바다, 그리고 시간을 견디며 서 있는 불교문화의 숨결. 국보 제13호 무위사 극락보전은 말없이 세월을 품고 있다. 강진만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백련사에 오르니 산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서늘한 바람이 이마를 스친다. 멀리 반짝이는 바다 물결은 한 폭의 수묵화처럼 고요하다.
능선 아래 자리한 사찰은 한때 귀족불교라 불릴 만큼 단아하고 깊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다산 유물전시관에 들러 정약용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거중기 모형과 빼곡한 문서들 앞에서 그의 숨결이 전해지는 듯하다. 다산초당으로 향하는 오솔길에는 동백 꽃씨와 상수리 열매가 떨어져 있고, 낙엽이 수북이 쌓인 길목엔 다람쥐가 스쳐 지나간다.
유배지에서 《목민심서》를 집필하던 선생은, 흑산도에 유배된 둘째 형 정약전을 그리워하며 이 언덕에서 강진만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저 바다 건너 가족을 떠올리던 그 마음은 얼마나 깊고 쓸쓸했을까. 천일각에 올라 서니, 그 애틋한 그리움이 바람결에 실려 오는 듯하다.
해배를 앞두고 바위에 새겼다는 ‘정석’ 두 글자는 세월 속에서도 또렷하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약천, 차를 달이던 다조대 앞에 서니 학문과 사색의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듯하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구강포를 지나 마량의 작은 횟집에서 점심을 마치고, 우리는 바닷길을 따라 연육교에 이르렀다. 그림처럼 펼쳐진 풍광 위로 바람이 분다. 육지와 바다를 잇는 다리 위에서 두 분 원장님은 따뜻한 마음을 나누듯 선물을 건네셨다. 두 마리의 학이 날아오르는 도자기 목걸이였다. 그 순간, 해송의 향기가 물결 위로 더욱 짙어졌다.
문학과 문화는 삶을 단단히 붙들어 주는 힘이 된다. 그것은 시대를 앞서가는 생명의 숨결이자, 상처 입은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지는 손길이다. 강진에서의 하루는 단순한 기행이 아니라 마음을 비우고 다시 채우는 시간이었다.
문학기행은 늘 우리에게 길을 묻는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그 길을 함께 걸어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남긴다.
#강진 #다산정약용
#남도여행 #문학기행 #수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