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Sadness'로부터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이라면, 세상을 넘나드는 정보의 홍수 속에 숨을 들이쉬기 버겁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전 세계의 기상천외한 사건 사고들과 스스로를 다그치게 만드는 무한의 경쟁, 속을 알 수 없는 다양한 인간관계까지. 세상은 모든 것이 하나의 홍수처럼 차고 넘치다 못해, 자리를 범람해 우리의 가장 아늑한 공간까지 침범하기도 한다. 그렇게 우울은 시작된다.
안개가 자욱한 숲 속에서 길을 잃는 건 쉽지만, 그곳에서 바른길을 찾기란 어렵다. 문득 세상에 혼자만 남겨진 것 같다가도, 주위 모두가 호통을 치는 듯 시끄럽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우울을 벗어나기 위해선 본인부터 시작해야 한다 말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안갯속에서 내가 향하는 길이 맞는 길인지, 아니면 세상으로부터 멀어지는 길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세상은 그리 자상하지 않으며, 느린 걸음의 모두를 기다려주지 않으니.
픽사의 영화 '인사이드 아웃' 속 슬픔이는 손에 닿는 모든 것을 자신의 감정과 동화시켜 버린다. 이처럼 슬픔이라는 감정은 전염성이 높아 막을 새도 없이 주위로 옮겨지곤 한다. 그렇기에 홀로 끝없는 물속을 발버둥 치는 사람들이 존재하게 된다. 변하지 않는 추위를 견디기 위해선, 길을 안내해 줄 누군가의 작은 정성이 필요하다. 다만 각박한 세상은 서로 손을 내밀기보다, 각자 저마다의 손길을 필요로 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세상은 무작정 단순하지도 않다. 세상은 수많은 자아와 감정, 각기 다른 성격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누군가는 우리의 느린 걸음을, 때로는 뒤로 걷기도 하는 삶의 주행을 기다려준다. 또 다른 누군가는 손을 내밀어 함께 걷기도 하며, 함께 앉아 쉬어가기도 한다. 느림은 잘못이 아니다. 많은 시간이 소요될지라도, 훗날 본인의 가치를 알아낸 과정이었다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세상은 혼자가 아니다. 많고 많은 무심함 중 크고 작은 정성은 어딘가 존재하고, 이로 인해 극복이란 단어는 탄생하게 된다. 우리의 작은 선의가 누군가에게는 강하게 내리쬐는 태양처럼 마음 깊은 곳을 뜨겁게 만들 것이며, 자욱한 안갯속 수많은 빛을 비춰줄 것이다. 매 해 겨울이 가고 저마다 계절들을 맞이하듯, 삶에 각기 다른 감정들을 맞이하기를 바란다. 쉽지 않은 여정이겠지만, 누군가에게 오랜 기간 찾아올 아침을 선물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우리의 작은 정성이 누군가의 극복을 탄생시키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