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의 관세협상을 지켜보며
트럼프의 관세정책으로 전 세계가 시끄럽다.
전 세계에 자유무역을 강요하던 미국이 보호무역의 선봉장이 되었다. 트럼프는 미국에 들어오는 모든 수입품에 10%의 보편관세를 적용할 뿐 아니라, 미국과의 무역에서 대규모 적자를 보고 있는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25%의 관세를 적용하겠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미국 수출은 전체의 18.7%를 차지하고, 그 규모도 1,278억 달러에 달한다. 25% 관세가 현실화되면 경제적 타격은 불가피할 것이다. 지난 8월 25일 미국을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관세 문제를 둘러싼 구체적인 합의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미국 측이 한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율 인하 조건으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투자를 요구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요구대로 서명했더라면 탄핵당했을 것"이라는 대통령의 타임지 인터뷰 내용에서 정부의 고심이 읽힌다.
청년시절 미선이·효순이 장갑차 사건이나 한미 FTA 체결 과정을 지켜봐 왔다. 집회에도 자주 참석했다. 나는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국 일방의 세계패권에 맹목적으로 추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 살게 된 이유를 미국과의 경제협력에서 찾는다. 강대국과의 관계에서 자존심만 생각할 수 없다고 여긴다. 반미를 외치던 진보진영이 정치적 역량을 축적하지 못한 이유도 이런 현실적 이유를 드는 국민들을 설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한미관계에서 국가적 자존심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들이 있었다. 미선이·효순이 추모촛불, 소고기 수입반대 시위 등이다. 당시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지킨 것은 국민이었다. 두 여중생의 죽음에 사과하지 않는 미국이 사과하게 만든 것도 국민의 촛불이었고, 한미 FTA 협상에서 소고기를 제외시킨 것도 국민이었다.
최근 관세 협상의 세부내용이 알려지면서 여론도 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기축통화국이자 경제 규모도 큰 일본과는 다르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 요구하는 3,500억 달러는 현재 우리나라 외환보유고 4,163억 달러의 85%에 달하는 막대한 금액인데, 투자결정과 이익배분도 미국 마음대로라면, 제2의 IMF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의 투자요구를 무작정 수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먹고사는 것만 걱정하던 시대는 지났다.
우리나라의 경제규모는 과거에 비할 바 없이 커졌고, 미국의 세계적 위상은 낮아졌다. 국제관계나 경제적 복잡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나는 국제관계에서도 경제적 이해를 뛰어넘는 정당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평화위기, 기후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 그 필요는 더욱 확인되고 있다.
미국의 부당함에 당당히 거부할 용기가 필요한 시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