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인가, 옆자리 동료가 나에게 "철쭉이네, 철쭉"이라고 했다. 핑크색 바람막이를 입고 출근했기 때문이다. 원래는 핫핑크였는데, 오래 입다 보니 물이 빠져 색 바랜 핑크가 되어 버렸다. 뭐, 철쭉도 색이 다양하니까. 사실 이 바람막이는 나이키 플래시 세일 때 샀다. 할인율 60% 이상 필터를 걸었을 때 내 사이즈에 맞고 기능도 필요한 옷이 이거 하나였다.
어느 날은 나보다 열 살은 더 어린 직원이 물었다. "후드티가 핑크네요?" 내가 "음.. 이상해요?"라고 되묻자 그는 말을 흐렸다. 그 후드티는 패션 인플루언서였던 전 직장 동료가 준 옷이다. 옷이 너무 많았던 그는 가끔 회사에 안 입는 옷을 가져와 나눔이나 벼룩 판매를 했는데, 그 와중에 마지막 남은 한 장이 이거였다. 내가 입어도 되냐고 물었고, 그냥 받았다. 컨버스 브랜드인데 오래 입어도 품질 변화가 적고 가볍고 좋다.
러닝을 하러 나갔다가 동네 친구를 만났다. 옛 회사 동료인 그녀가 말했다. "바지가 화려하시네요." 내가 입은 러닝 바지가 핫핑크였기 때문이다. 룰루레몬 제품인데 품질이 최고다. 가볍고 통기성 좋고 촉감이 좋아 이것만 입고 싶을 정도다. 운동할 때도, 집에서 잘 때도, 속옷 대신 입기도 한다. 이것도 '너무 많이 만들었어요(We Made Too Much)' 탭에서 50% 이상 세일하는 걸 샀다.
"또 핑크 입었네요? 가만 보면 핑크 진짜 좋아하는 것 같아." 나는 그저 세일을 많이 해서, 누가 줘서 입었을 뿐이고 사실 가진 옷도 몇 개 없는데 어느새 핑크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었다. 근데 그게 또 반은 맞다. 싫어했으면 세일을 해도 안 샀을 거고, 줘도 안 입었을 테니까. 속으로는 어느 정도 예쁘다고 생각했겠지.
핑크는 억울한 부분이 있다. 남자들한테는 거북해서 외면당하고, 여자한테는 여성성을 주입하는 색이라며 거부당한다. 다 큰 어른이 핑크를 입으면 좀 그렇다. 여자가 입으면 아직 자기가 공주인 줄 아는 사람 같고, 남자가 입으면 오타쿠나 게이인 줄 안다. 시선과 선입견, 혐오가 눈치로 둘러싸인 컬러라고 해야 되나. 남 신경 전혀 안 써도 되는 할머니가 되어서야 핑크가 화려하게 부활한다.
억울한 핑크에게 한 표 던져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