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산으로 가게 되는 이유는 정말로 다양하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한글 2014를 이용하여 신규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어렵지 않아서, 오히려 짜증이 났다.) 예상했지만, 이 과정(공공기관과의 협업)에서 우리 회사는 정말 많은 부분을 포기하게 되었다. 근데 어쩌겠나, 그 당시에는 우리 상황이 그랬다. 특별한 대안이 없었고, 제일 중요한 것은 일단 시작하는 것이었다. 대표의 말처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기를 그때나 지금이나 간절히 바라고 노력하고 있지만, 개인적인 경험상 그런 일을 같이 할 파트너를 공공기관에서 만나는 것은 정말 힘들다. (공무원들은 이래서 안돼! 가 아니라,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그 조직의 생태가 그렇다.)
아래 내용 중 어떤 것은 해결되었고, 어떤 것은 해결하지 못했으며, 어떤 것은 조율 중이다. 오늘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적어도 공유주방을 시작하려 하거나 혹은 운영하고 있는 기업들(SBA 같은 공공기관 포함)이 우리가 겪은 일들을 반복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이다.
하나, 계획에 비해 공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애초에 하기로 했던 주방은 서울창업허브라는 코워킹스페이스의 3층 공간 약 300평 전체를 다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담당자 입에서 자꾸 '뭐가 들어오기로 했다', '다른 사업을 해야 된다', '예산이 없다', '더 줄일 수 없냐' 등의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마 그도 그 위의 팀장, 본부장, 대표까지 뭔가 안 풀리는 게 있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우리 회사 입장에서는 도대체가 이 사업을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힘이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고, 결국 계획은 창대하였으나 시작은 미약하게 되어버렸다. (끝은 다시 창대해질 것이다 분명히.) 더군다나 서울창업허브의 경우 앞서 말한 미국의 사례처럼 식품제조를 위한 공유주방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곳에 상주하는 입주기업의 식사를 위한 '푸드코트'형태의 5개 개별주방도 운영을 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120평의 전체 면적을 공유주방 30평, 개별주방 40평, 홀 50평으로 나누어 써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작은 규모의 제한된 형태로 운영하게 되었다.
둘, 사업 런칭 일자가 지연되었다.
3월에 한다더니. 어째 계속 기다리란다. 공사가 지연되고, 어떤 결재가 나지 않고 있고, 그러면서 결국 공유주방은 8월에 오픈했다. SBA는 공공기관이라 사업이 지연돼도 월급 걱정하는 사람이 없었겠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았다. 정말 몇 개월 속절없이 현금이 고갈되어 갔다. 또, 인건비뿐만 아니라, 그동안 우리와 좋은 관계에 있던 예비 멤버들을 잃기도 했다. 3월에 오픈할 예정으로 미리 멤버 풀을 구축해 두었는데, 3월에 할 거예요, 5월에 할 거예요, 8월에 할 거예요... 이 말을 하기가 정말 미안했다. 알다시피 공유주방의 멤버가 될 F&B 사업자들, 굳이 통계를 들이대지 않아도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생계형 사업자가 대부분이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안 하면 그동안 다른 것을 하고 있으면 되는, 살짝 미뤄도 되는 그런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럴 때는 차라리 여유 있게, 희망고문하지 않도록 계획을 하고 공고를 하는 게 맞지 않았을까 싶다.
삼, 이름을 뺏겼다.
공식적으로 이 사업은 서울창업허브 키친인큐베이팅이라는 이름으로 운영을 시작하게 되었다. 예상은 했지만, 해도 해도 너무 짜증 나는 일이다. 파트너로서 시작을 하게 되었지만 발주처-대행사 관계로 변하게 되었고, SBA가 심사를 해서 우리 회사를 뽑았다.(당시 입찰에 뛰어든 회사도 없었다.) 더군다나 오픈 후 지난 1년 간 전국 각지의 공공기관에서 공유주방을 보고 갔는데, 아주 좋은 사업이라면서 운영방식까지 똑같이 베껴 운영하기 시작했다. 혜자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해봐도, 다른 무엇보다 공공기관이 '제대로 된' 공유주방 비즈니스를 이해하지 못한 채 운영하는 것은 아직도 안타깝고, 혹여 그 영향이 이제 커나가는 이 생태계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우려가 되는 부분이다. (가서 알려주고 싶다. 이게 최선이 아니라고.)
넷, 자체적으로 규제를 만들었다. (사스가 대한민국 정부)
정말 너무나 안 되는 것이 많지만 가장 어이없는 것만 꼽아보자면, 술을 팔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알겠지만 위워크나 패스트파이브 같은 코워킹 스페이스에 가보면 커피와 맥주를 공짜로 준다.) 얻는 것보다 잃을게 너무 많지 않냐는 SBA 관계자의 주장이 있었는데, 아직도 그 잃을 것이라는 것을, 혹시라도 생길 음주 관련 사고에 대한 본인들의 행정적 책임 외에는 전혀 모르겠다. 그러니 나가서 펍이나, 케쥬얼 다이닝류의, 술과 곁들여진 음식점 창업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여기는 정말 힘든 공간이 되어버렸다. 또,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들은 되도록이면 멤버들이 여기서 수익을 내지 않으며 운영을 하기를 바라고 있다. 흔히 똔똔 치기를 바란다. 마치 특혜를 주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라는 입장인데, 해당 사업에 이해도가 얼마나 없으면 이런 말을 하는 것인지. 코워킹 스페이스에 입주한 회사들이 이익을 창출하지 말라는 얘기와 뭐가 다른지 묻고 싶다. 그러니까 이들은 공유주방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관리 아래 사고 없는 안정적인 운영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최우선 과제였던 것이다.
다섯, 상권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
공유주방이 서울창업허브 지점처럼 음식점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될 경우, 상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고객군을 보자면 서울창업허브 지점에서 주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은 (우리 회사와 마찬가지로) 점심 값이 7천 원이 넘어가면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운 스타트업 입주사 직원들이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굳이 스타트업이 아니더라도 자기 돈 내고 사 먹는 점심은 큰 부담이다. 냉정하게 말한다면, 이 공간에서 고객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구내식당'의 역할이다. 그렇다면 우리는이 고객들을 위해 가성비 좋은 점심 장사를 예정하고 있는 멤버들을 모아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것이 정말 맞을까? 단 3개월의 영업기간을 줘 놓고 이곳 고객들을 위한 점심 장사를 하라는 게 그들이 창업을 하는데 어떤 도움이 될까? 예상되는 문제점 등을 고려한 디테일이 있는 계획이 기획단계에서 나와야만 한다. 아니면 적어도, 상황에 맞춰 운영을 변경할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
여섯, 결정적으로 아재들과 일한다는 것.
내가 봤을 때 공공기관을 인간상에 비유하자면, 아재이며 거의 꼰대에 가깝다. 자신의 과거 경험과 지식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근거로, 새로운 것에 대한 받아들임 없이,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이 말하는 알량한 '권력'을 가진 늙은 남자들이 양적으로 많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조직 내에 젊은 여성 관리자나 임원들이 많아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저 맛있고-싸고-양 많은 점심식사를 만들어 내기를 원하는 이 사람. 주말에 서촌은 가봤을까? 이태원은? 문래동은? 서울숲은? 망원동은? 성수동은? 을지로 뒷골목은? 샤로수길은? 서울창업허브라는 공간이 '회사가 끝나고 친구들이랑, 혹은 주말에 연인이나 가족과 함께 찾아가는 공간'이 될 수가 없는데도, 맛만 있으면 무조건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겠냐는 SBA 관계자의 말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하는 그 이유는 아재가 아닌 사람들은 다 안다.
그렇다면 우리의 공유주방은 실패했을까? 객관적으로 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지난 1년 동안 우리 회사는 '버텼고, ' 직원은 12명에서 40명으로 늘어났으며, 50억 원의 신규 투자금을 유치했다. 그러면 반대로 저 위의 문제들을 다 이겨내고 잘하고 있을까? 사실 딱히 그렇지도 않다. 솔직한 마음으로 지금 준비하고 있는 신규 지점만 운영하고, 서울창업허브 지점은 올해 계약이 끝나면 그만두고 싶다. 그만큼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많고 하루하루가 어려움, 고민의 연속이다. 모든 게 잘 안 풀리는 것 같고 답답할 때, 우리 회사는 회식을 한다.
대표 : 희종아, 술이나 한 잔 하자.
나 : 네.
(홀짝홀짝)
나 : 대표님, 잘 하고 있는 거 맞아요? 진짜 이렇게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대표 : 근데 희종아, 우리가 그때 만약 그 선택을 했었으면, 지금보다 더 잘 했을까?
나 : 모르죠 그거야.
대표 : 내 생각에는 아마 비슷했을 것 같아. 그리고 이왕이면 이렇게 짧은 시간에 빨리 실패를 해보는 게 오히려 더 중요한 것 같아. 나중에 큰 실수하는 것보다는 낫잖아.
대표의 장점이다. 낙관. 거창하게 말할 것 까지는 아니지만, 스타트업에게, 특히 스타트업 대표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미래에 대한 낙관이라고 생각한다. 이 낙관이 없다면, 끊임없는 의심과 불안 속에서 긴 호흡을 갖고 일을 해나가기 굉장히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대표의 말처럼 우리 회사는 자그만 실패를 빨리 계속하고 있다. 다음 글에는 - 징징대는 소리 그만하고 - 지난 1년간 우리가 했던 다양한 일들과 그 속에서 얻은 나름의 깨달음을 끄적여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