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움에 감춰진 부자연스러움에 대하여

[자연분만 출산 후기] 우리는 늘 그곳을 소중히 보호하라고만 배웠다.

by 단단hee


이 글은 극히 주관적인 견해이며,

출산과정을 겪은 다른 분들 생각이 전혀 다를 수 있음을 미리 고지합니다.


2019년 10월 3일 하늘이 열린다는 개천절에 내 자궁도 열려... 아 아니 이게 아니고 오전 8시 10분 약 16시간의 진통 끝에 자연분만으로 띵동이가 3.01kg 건강한 몸으로 태어났다.


보통 출산 후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몇 시간의 진통을 겪었고, 여차 저차 해서 자연분만으로 혹은 여차 저차 하지 못해서 자연분만을 시도하다 제왕절개로 혹은 아이와 산모의 상황을 고려하여 선택제왕으로 아이를 출산하였다.


띵동이를 낳기 전 수많은 출산 후기를 읽었음에도 별 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 당시에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단순히 내가 겪어보지 못한 일이기 때문에 공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출산 후 나는 정확히 알았다. 많은 출산 후기들이 여차 저차 한 상황에서 오는 감정들은 배제한 채 사실에 대한 상황 묘사만 하고 있었다. 그들이 몇 시간 진통을 했는지, 어떤 출산방법으로 아이를 낳았는지, 아이가 몇 키로인지 등의 정보는 오로지 그들의 정보일 뿐이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출산 과정에서 오는 감정들을 적확하게 파악하는 게 꽤나 어려웠다. 그래서 난 그때 느꼈던 감정들을 될 수 있으면 오래 묵혀두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때의 감정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부산스러웠던 분만실에서 정적이 감도는 회복실 침대에 눕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실로 나는 길게 울었다. 탄생의 감동, 생명의 경이로움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찾아온 감정은 다름 아닌 다 끝났다는 허탈감이었다.


자연분만의 ‘자연’의 의미를 ‘natural’ 즉 인위적인 행위를 최소화 한 본연의 과정이라 생각했던 나는 출산과정을 직접 겪고 난 뒤 이것이 절대로 ‘자연스럽지’ 않으며 오히려 거칠고 다루기 힘든 ‘wild’의 생존 과정이었음을 깨닫고 크게 분노했다. 출산과정에서의 나는 한 인간이 아니라 번식 행위를 하는 동물처럼 느껴졌다.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는 고통이 수치스러웠다.


대체 왜 사회는 한 인간이 견뎌내야 하는 고통의 무게를 경이로움과 감동으로 포장하는 걸까. 왜 절정의 고통은 편집되고 탄생의 순간만 주목받았던 걸까. 현실에서 고통은 끝을 예측할 수 없는 무한의 길이었고, 탄생의 순간에 감동적인 배경음악 따윈 없었다.


현대 의학이 발달하여 무통주사라는 것이 생겼고, 심지어 난 4번이나 주사의 도움을 받았지만 이는 16시간 중 고작 4시간 정도의 고통만 절감해 줄 뿐이었다.


오히려 무통 천국에 대한 얘기로 소위 나도 무통빨을 받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을 알려주기보다, 자궁이 얼마나 열렸는지 알아보기 위해 조산사가 손가락을 마구 휘저으며 내진을 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 행위는 진통이 최고 절정에 이를 때 한다는 사실을 알려줬어야 하지 않았나 싶었다.


출산 과정에 내진, 관장, 제모라는 3대 굴욕이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언제’ 하는지는 논외였다. 공포스럽게도 이 모든 행위들이 나의 경우 모두 진통 중에 이뤄졌다.


그렇다면 진통으로 몸부림치고 있을 때 오히려 고통을 가중시키는 행위가 행해질 수 있음을 최소한 고지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왜 이런 얘기는 아무도 해주지 않았을까. 나는 오랫동안 실체 없는 대상들을 두고두고 원망했다.


물론 모든 과정들이 순조롭고 자연스럽게 흘러가 우아하게 출산한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현실은 모든 게 뒤죽박죽이다. 진통은 오는데 아이는 내려올 생각이 없다. 진통이 오기 전에 양수가 터진다. 자궁 문도 다 열리고 아이도 많이 내려왔는데 아이의 호흡이 불규칙하다. 무통주사를 맞을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출산이 이뤄진다. 등등의 여차 저차 한 일들이 벌어진다.


나 역시도 이 여차저차 자연스럽지 못한 과정에 걸려들었고, 조산사는 아이가 빨리 내려올 수 있도록 진통이 극심할 때 변기에 앉아 있으라 지시했다. 그리고 난 그곳에서 가장 최악의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한동안 변기에 편히 앉을 수 없었다. 신체가 먼저 공포에 반응했다. 소변을 보려고 겨우 앉으면 온 몸이 달달 떨렸다. 몸을 진정시키려고 주먹을 꽉 쥐고 다리를 붙잡아도 머리가 흔들렸다. 출산이 끝나고 진통은 지나갔지만 후유증은 길게 남았다.


꽤나 오랜 기간 동안 두 손을 꽉 쥐고 잠을 청했다. 잠에서 깨면 손가락이 아려왔다. 고작 16시간 때문에 평생 건강했던 신체는 처참히 망가졌다. 진통이 올 때마다 허리를 꺾어 허리가 고장 났다. 아이 머리가 골반에 낀 채 오랫동안 내려오지 않아 골반이 다 뒤틀어졌다.


제발 이 고통이 끝날 수 있게 그냥 죽여달라고 몇 번이나 애원했다. 스스로 정신 차리라고 뺨을 수도 없이 때렸다. 링거가 꽂힌 손목은 힘을 잔뜩 쥐어서 피멍이 들었다.


출산 후 처치 과정도 당혹스러웠다. 남편이 탯줄을 자르고 의료진들이 아이의 건강을 살폈다. 그러더니 갑자기 빨기 반사를 봐야 한다며 내 상의를 들추고 아기를 가슴에 들이댔다. 그 사이 의사는 찢어진 상처를 봉합하는 수술에 들어갔다.


그들은 왜 내게 아이의 이목구비를 살펴볼 잠깐의 시간도 허하지 않았던 걸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아파요, 아 너무 아파요. 허공에 대고 외치는 것뿐이었다.


끝까지 내 몸에 대한 존중은 없었다. 그들에게 난 단지 빨리 처리하고 퇴근해야 할 ‘일’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몇 번이나 글을 쓰려고 했으나 그날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착잡해져 결국 글쓰기를 포기했다. 아이에겐 축복이었을 그날이 내겐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이었음을 부정하지 못하겠다.


일 년이 지난 지금, 딸에게 예쁜 편지를 써줘야 할 시간에 이 긴 글을 왜 쓰고 있는 건지 조차 의문이다. 그리고 어떻게 읽힐련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어쨌든 누군가는 들려줘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같은 경험에서도 누군가는 그냥 지나갈 수 있는 감정이었겠지만,


그래도 용기 내본다.



[TMI]

현재 아이는 두 돌이 지났습니다.

시간이 참 빠르게 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