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장 그 작은 세상이 주는 위안

유난히 아물지 못한 밤, 메모장을 열고 글을 씁니다.

by 단단hee

소싯적 글 좀 쓴다는 사람들도 피해 가지 못하는 공포증이 있다. 바로 흰 배경 속 커서 공포증.


무슨 글이라도 쓸 것 같았던 비장함이 무색하게, 흰 배경 속 커서가 깜박거리면 내 머리도 똑같이 새하얘지는 공포증.


아ㅏㅏㅏㅏㅏㅏㅏ 뭘 쓰려고 했지?

의미 없는 글자를 끄적이고 그 글자마저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비장한 마음은 짜게 식고, 부질없이 피곤함만 쌓이다 결국 창을 닫아버린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유난히 글이 잘 붙는 매체도 있다.

나한테는 싸이월드 속 다이어리가 그랬고, 블로그가 그랬고, 지금은 아이폰 기본 메모장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데스크톱에서 노트북 그리고 핸드폰으로 옮겨질수록 창은 점점 작아졌지만 그 작은 세상이 주는 위안은 컸다.


엄지손가락을 꾹꾹 눌러가며 메모장에 글을 쓰고 있을 때마다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자기, 무슨 일 있어?”


그도 그럴 것이 소파 구석에 찌그러져 미간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뭔가를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 남편 딴에는 오해를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나는 단지 두 엄지손가락과 미간으로 글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쓴 글들이 소복이 쌓였을 때 난 이 글들을 같이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바로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했다.


브런치에 작가로 선정되고 친구에게 나의 글 컨셉에 대해 얘기하자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


“메모장에 쓴 글, 스낵 같은 일기일까?”


글쎄, 오히려 난 이 글들이 사골 같은 일기라고 생각했다. 오래 생각하고 오래 붙들고 오랫동안 우려낸,

그래서 탁한 감정의 불순물은 걷어지고 어느새 깨끗하고 뽀얗게 남은 정화의 글이란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된 후 나는 더 자주 더 오래 메모장을 붙들고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 연재하는 글들은 나를 위로하다 비로소 엄마가 된 이야기가 주를 이룰 것이다.


유난히 아물지 못했던 밤, 스스로를 어루만지고 싶어 쓴 글들을 용기 내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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