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시절 우리 집엔 트리가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첫 집은 화장실도 없는 단칸방,
겨울에 목욕을 하려면 주전자에 물을 여러 번 데워야 겨우 했을 정도로 열악한 곳이었다.
결혼하고 맞이하는 첫 크리스마스에
작은 트리라도 사서 기념하고 싶다고 말한 남편이
다른 세계 사람처럼 느껴졌다.
트리는 <나 홀로 집에> 캐빈 집에나 있던 장식이 아니었나?
정말로 트리를 꾸미는 집이 있다는 것에 놀란 한편
트리를 단 한 번도 꾸며본 적이 없었던 유년시절의 내가 어쩐지 가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이와 맞이하는 세 번째 크리스마스에 비로소
트리를 사자고 큰 결심을 했을 때
나는 유년시절 크리스마스를
다시 한번 상기해 봤다.
겨울이 짙어지는 밤
엄마는 없는 살림에도 불구하고
싸구려 가랜드와 전구로 한쪽 벽면을 장식하고
문에는 빨간 양말을 달아 놓으며 어린 시절 내게 산타할아버지 얘기를 들려줬다.
크리스마스 아침에는 어김없이
양말 아래 선물이 놓여져 있었고
왠지 엄마 글씨체와 비슷한 산타할아버지의 편지가 붙여 있었다.
지금의 나보다 앳됐던 엄마가
크리스마스라곤 추억해본 적도 없던 엄마가
그 부재 속에서도 동심을 심어주고 싶었던 최선이
이제서야 보였다.
서른이 넘어서야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그 시절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나를 이만큼 키워줘서 고맙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아이와 보내는 일상에서
나는 문득 유년시절의 나를 치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