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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슬 Jan 16. 2024

축구

축구 규칙을 거의 모르는 내가 경기에 열광하는 이유는 예배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다.

선수도, 감독도, 관중들 누구 하나 뜨겁지 않은 이가 없는데, 과연 신은 누구의 편을 들어줄지 궁금다. 드넓은 경기장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90분은 마치 신의 옆자리에 앉은 우월감도 느끼게 된다.


어릴 적 나에게 신은 우연히 만난 행운처럼 따스했고, 유독 나에게만 친절해 보였다. 작은 보답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마음의 빚을 덜어내듯이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했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날 예배당을 울리는 기도 소리와 울부짖는 어른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궁금증이 생겼다. 이 많은 성실한 신도들 중 신은 누구의 기도를 듣고 있는가.


연상호 연출의 2021년 드라마 <지옥>에서 "믿음과  두려움은 함께 온다"는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나는 과연 신을 믿었을까 두려워했을까.

어리바리한 나에게 한번 더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기에 이 드라마는 선물 같았다.

그러던 중 환속한 수녀 '카렌 암스트롱'을 만나게 된다.  


그녀의 자서전 <마음의 진보>의 원제는 The Spiral Staircase다.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 마냥 제자리인 것처럼 보여도 분명 빛을 향한 진보는 있다는 것을 저자는 말하고 있었다.

저자인 '암스트롱'은 종교의 핵은 '나를 잘 써먹어야 한다는 책임 의식'이라고 말하며, 우리의 임무는 망가진 세상을 고치는 것이라고 책에서 말하고 있다.


여전히 축구 경기를 볼 때마다 스무 살 어느 일요일 교회 입구에서 멈칫했던 기억이 난다. 축구 경기장을 마음껏 뛰어다니는 자유함은 얻지 못했지만 나는 여전히 나선형 계단을 통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은 든다.



2024년 1월 15일 대한민국과 바레인의 축구경기는 3대 1로 승리였다.

신은 누군가의 승리에 관심을 두는 것 같지 않다.

경기에 최선을 다했는가?

스스로에게 당당하도록 규칙을 지켰는가?

그리고 적에게도 다치게 한 곳은 없는지 살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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