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말랭이

꼿꼿해서 좋아

by 여슬

회사에서 J는 독사였다. 건조한 얼굴로 독설을 내뱉으며, 기획팀을 지키는 일이 잘 사는 것으로 믿었다.

어느 날 집근처 편의점옆 오래 비워진 점포 한 칸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 가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평범했던 자리여서 별 관심이 없었는데 평온에 대한 막연한 열망 때문이었을까. ‘임대문의’ 네 글자 위로 번지는 정적이 귓속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앉았다. 식판 한 칸을 파고드는 듯 꼿꼿한 무말랭이를 씹으면서도 빈 가게가 떠올랐다. J는 연차가 쌓일수록 방광의 용량이 늘어나는 선명한 느낌과 갈수록 머릿속은 후줄근해진다는 생각을 떠올리며 된장국을 삼킨다.

'넌 꼿꼿해서 좋았는데, 이젠 아니라서.'

그녀가 J를 좋아했던 이유와 헤어짐의 이유를 듣게 된 그 날은 마치 귓구멍 안쪽을 전부다 헤집는 면봉처럼 개운함이 느껴져서 이상했다.


퇴직금의 일부를 당겨 받아 열 평 남짓한 공간을 계약하고, 퇴근 후 작업실로 사용하는 것이 어떨까. 입을 대충 헹구고 한 손에 커피를 든 채 급히 자리로 돌아와 엑셀을 열고 빠듯한 예산으로 할 수 있는 숫자를 적고 더해본다.


J의 작업실에는 영어로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좋은 글이란 끝까지 읽게 하는 동력을 가진 글이란 것만 납득이 된다면, 유려한 영어 실력이 될 때까지 글쓰기를 미뤄왔던 사람들이 올 것이다.


이름을 적은 양주를 킵해주듯이, J는 각자의 이름이 적힌 공책을 개인 열쇠로 잠가놓을 나무 사물함을 제작할 것이다. 오며 가며 들러 영어로 글을 쓰고 가는 스튜디오가 있고, 다양한 목적으로 영어 글쓰기가 필요한 사람 누구나 영어 문법에서 벗어나 오직 음악과 종이, 그리고 펜이 있는 이곳을 들른다면 좋겠다.


Feel in English Studio — where clarity begins in language.

조용히 생각이 문장이 되는 시간.
영어의 서툼보다 마음의 방향을 더듬는 글쓰기.
당신의 진심이 언어가 되는 순간을 함께합니다.


이 작은 광고가 느릿하게 입소문을 낼 동안,
J는 커피 한 잔을 내리며 소리 없는 저녁을 음미하고 이메일과 톡방의 소음이 사라지자, 낯선 평온이 밀려온다. 그 적막은 오래 비워둔 마음의 방에 스며들 듯 천천히 자리 잡을 것이다. 낯설지만, 그 달콤함이야말로 진짜 평온이라는 것을 J는 곧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