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흔적

관상(觀볼관相서로상)

by 여슬

J에게 관상이란 탈영병을 숨긴 엄마의 차분함처럼 거짓으로 보일 때가 많았다. 나름의 감으로는 사람을 잘 본다고 믿었지만, J는 그 믿음에 번번이 속았다. 그럴 때마다 ‘관(觀)·상(相)’이라는 한자어가 또박또박 떠오른다. 관상의 ‘상’이 모양(象)이 아니라 서로(相), 바탕(相)이라는 사실. 그렇다면 관상이란 결국, 처음 마주한 사람에게서 풍기는 전체의 결—표정과 습관, 말투, 조용한 틈새들이 함께 이루는 바탕을 보는 일인지도 모른다.

관상이 J에게 묵직하게 가라앉은 건 영화 <얼굴>을 보고 난 뒤였다. 영화가 던진 침묵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GV를 찾아보고, 인터뷰 영상을 뒤지며 감독을 오랫동안 쫓아다녔다. 그래도 생각이 여기저기를 널을 뛰어서 중고서점에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다시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치 몇 년째 미결로 남아 있던 사건을 홀로 파헤치듯 책장을 뒤적이며 매달렸다. 덜 씹고 삼킨 당근조각 하나가 명치에 걸린 듯한 불편함으로 J는 공책의 두 번째 장에 이렇게 적었다.

"추함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어린아이에게는 뭐든 받아주는 할머니가 최고의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어른에게 좋은 사람은 정확한 사람이다.

나에게 잘하는 사람만 좋은 사람이라 생각한다면 뒤통수도 내어주는 편이 낫다. 언제든 방망이로 맞을지도 모르니, 그동안 고마웠다 생각하고 뒤머리를 내어주자.


나이를 먹는다는 건, 겹겹이 쌓인 시간들이 살피지도 못한 사이 조금씩 형태를 가지는 일이다. 휴대폰을 켜다 무심코 눌린 사진촬영 덕분에 J는 화면 속 자신의 무표정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감출 수 없는 피로의 잔해가 입가에 거멓게 눌어붙어, 마치 J를 조용히 연민하는 듯했다.


오늘도 어른이 되어가는 J는 좋은 사람을 해보려고 한다.

오늘의 감정이 오늘의 얼굴을 만들고, 그 얼굴이 차곡차곡 쌓여 결국 관상이 된다면

J는 퇴근 후 찾아온 이 작은 스튜디오에서 하루의 얼굴을, 그 미세한 결을 다시 빚어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