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그릇

낙수와 만수

by 여슬

서울 자가에 대기업에 다니던 낙수 아저씨와, '어쩔 수 없다'를 되뇌던 제지 회사의 만수 아저씨는 25년의 직장생활 끝에 나란히 실직한다. 그들이 가장다움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본래의 자신을 찾는 것이 어찌 그리도 어려웠을까.


가장이라는 역할이 두려운 J는 두 작품을 보며 묵직하게 자리 잡는 무게를 덜기위해 다 마신 맥주 캔을 세게 구기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퇴직 후의 삶이 저렇게도 잔인하다면 J는 지금 무엇을 덜 해야 할지 생각해 본다.


J의 아버지도 김낙수 부장과 '바나나'에 대한 태도가 닮아있다. 아버지에게 귀했던 바나나를 자식한테 실컷 사주며 부족함 없이 키웠다고 자부하지만 아들 입장에서 오늘의 바나나는 예전에 비해 덜 귀해진 것이 사실이다. 바나나의 귀함이 달리지는 동안에 가장의 역할은 축소되고, 가족들과의 유대도 가늘어지고 있었을까.


J는 생각 그릇에 담아둘 기록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글쓰기 수준은 미천해도 기록은 선명하게 저장되어 있을 테니 언제라도 다시 오늘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기억은 기록하지 않으면 소멸한다는 것을 알기에, 지금 당장에 귀한 바나나들을 꿰어 공책에 기록하고 나중에 다시 열어보리라. 오십 대의 낙수와 만수가 맞닥뜨린 전쟁터에서 조금이라도 덜 외롭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