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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준 Jan 23. 2019

이미지의 시대, 줄어드는 도시의 이미지

건축평단 2017 여름호

이미지의 시대오늘날의 도시
아이폰 5 출시 후 1년 동안 아이폰 5로 찍힌 사진의 수가 출시 전까지 인류가 찍은 모든 사진의 수보다 많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발터 벤야민
Walter Benjamin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The Work of Art in the Age of Mechanical Reproduction』에서 묘사한 20세기 초의 이미지의 생산과 재생산, 복제는 오늘날에 이르러 속도와 양의 측면 모두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과격해졌다. 일부 자본가의 영역이었던 복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되었고, 복제의 결과는 발견의 대상이 아닌 어디에나 산재한 것, 심지어 우리가 지니고 다니는 것이 되었다. 생산과 재생산, 복제는 여전히 작가의 심오한 작업이지만 동시에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이자 무의식의 행위이다. 이제는 식상한 모두는 생산자이자 소비자라는 어구는 오늘날 가장 유효하다.
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해 현대인이 이미지의 홍수 속을 살게 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이미지의 홍수 속에 살고 있었다. 현수막, 전단, 간판, 빌보드 등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이미지들이 그것이다. 우리나라보다 메트로폴리스의 모습을 일찍이 갖춘 도시들이 위치한 미국과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이미지가 도시에 미치는 영향, 주로 악영향에 대한 담론이 2차 대전 종전 후 도시의 성장이 본격적으로 가속화된 1950년대에 이미 시작되었다.
1 담론의 발생은 이미지의 과도한 증가에 대한 두려움에 기인한다. 우리의 도시 또한 이러한 두려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많은 건축가와 시민들은 도시를 덮은 이미지들에 대한 불만과 걱정을 토로하는 데 주저가 없다. 우리의 도시는 이대로 이미지의 자가 증폭에 폭발해버리고 마는가.
하지만 인류가 찍어온 사진의 수가 한 해 사이에 몇 배가 되어도 도시를 채우는 이미지의 수가 마찬가지로 몇 배가 되는 것을 목격한 이는 없다. 이미지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저장되었다가 우리가 필요로 할 때 볼 수 있는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영화 《사이드 바이 사이드
Side by Side》는 아날로그의 시대(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털의 시대(디지털카메라)로의 과도기를 거치며 영화감독들이 겪어왔고 여전히 겪고 있는 매체에 대한 논쟁을 그린다. 디지털카메라의 사용을 지향하는 감독들의 논거 중 하나는 필름 카메라가 매체의 특성상 가질 수밖에 없는 최단점인 복제 시의 품질 저하와 필름 보관의 문제가 디지털카메라의 등장으로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필름 보관의 문제에 있어서, 영화 한 편당 나오는 막대한 양의 필름의 보관 비용이나 유지 보수의 한계를 차치하더라도 그것이 차지하는 부피 자체만으로 불편이 있다. 영화계를 관통한 이 논쟁은 이미지로 가득 찬 우리의 도시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미지가 그것의 본질, 담고 있는 정보를 잃지 않으면서 물리적인 크기를 줄였고, 심지어 그것이 저장된 모습이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은 오늘날의 도시에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기존의 간판들이 수십 개의 이미지를 드러내기 위해 한 건물을 모두 덮어야 했다면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스마트폰, 그것으로 접속하는 인터넷은 무한한 수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디지털 기술이 영화를 편집하는 방식부터 그것의 저장 방식, 효율성까지 바꾸어놓았다면 그것은 마찬가지로 도시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혹은 이미 바꾸고 있지 않은가.


간판을 대체하는 SNS

도시의 모든 프로그램이 간판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주거 공간을 제외한 간판이 없는 공간은 사람들의 유입을 거르고자 하는 사교 클럽, 갤러리, 패션 부티크 등으로 대표되는 몇 프로그램에 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종류의 간판의 부재를 경험한다. 마포구 창전동의 한 골목, 서강로11길에는 적색 벽돌의 외벽에 은파피아노라는 간판을 단 카페(FELT)가 있다. 피아노 교습소로 사용되었던 공간을 카페로 개조한 것인데 이름을 바꾸었지만 간판은 그대로 둔 것이다. 은파피아노의 간판은 부정확한 정보를 전달한다. 간판의 주기능인 정보의 전달을 이행하고 있지 못하는 이 간판은 그저 카페가 피아노 교습소로 이용되었었다는 사실이나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향수, 이들이 이전의 간판을 떼지 않고 남겨둘 정도로 힙
hip한 감각을 지녔다는 것 정도의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간판이 제공하는 정보와 공간 기능의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카페로서 문제없이 작동한다는 사실은 간판이 담당했던 기존의 역할을 무엇인가가 대체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스마트폰이다.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주소, 전화번호, 웹사이트 주소는 물론 메뉴, 영업시간, 공간에 대한 다른 이들의 후기까지 손 위에 올릴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과거에는 그곳을 가지 않고는 얻을 수 없었던 공간 자체의 경험까지 스트리트뷰라는 이름으로 가능해졌다. 간판의 광고의 역할은 사진 기반의 SNS가 대신 수행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은파피아노의 간판을 가진 이 카페는 앞서 언급된 일부 프로그램에서만 적용되던 간판의 생략이 여느 프로그램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간판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작다. 주변 가게들과 벌였던 시각적 영역 다툼, 도시 이미지가 불러일으켰던 혼란은 SNS상으로 옮겨갔고 간판은 그저 스마트폰의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찾아온 공간 앞에서 정확히 찾아왔음을 재확인하는 용도만을 지닌다.


도시와 SNS 상호 참조변화하는 도시
SNS와 도시의 간판은 이미지를 드러내는 서로의 방식을 차용해가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어왔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도시의 모습은 바뀌어왔다.
최근 몇 달간 정치적 성명을 담은 현수막이나 종이 판들은 전국의 광장을 메웠다.
2 이를 찍은 사진들은 SNS에 올려져 재생산되었고 동시에 복제되었다. 이처럼 도시에서 일어나는 정치, 사회적 활동은 SNS를 통해 규모가 증폭된다. 과거에 특정 공간을 점유하거나 지나가던 이들에 한정되었던 이미지의 노출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이들로 범위가 확대되었다. 일례로 최근 한 가수가 본인 소유의 건물 외부에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현수막을 걸어 화제가 되었다. 통신 기술의 발달 이전의 도시에서는 이 현수막을 직접 보는 사람들만 이미지를 접할 수 있었다면, 오늘날에는 재생산, 복제로 인해 SNS를 통해 그것을 접하는 사람의 수가 실제 현수막을 보는 사람의 수보다 많다. 이렇게 증폭된 이미지는 원 이미지가 가졌던 정치적 성명의 힘을 배가시키며 더욱 많은 사람을 광장으로 불러 모은다. 이렇게 SNS와 도시는 이미지를 주고받으며 도시의 모습을 바꾼다.
사적인 이미지들이 도시에 나타나기도 한다. 주로 지하철역에서 생일을 축하한다는 문구와 사진으로 이루어진 광고판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대부분 한류 스타가 축하의 대상이다. 생일 광고 또한 도시 안의 간판이라는 이유에서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정치, 사회, 상업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지만 동시에 개인적인 욕구의 분출이 목적인 이미지이다. 이와 같은 특성의 이미지들은 그라피티, 낙서, 스티커 등의 모습으로 도시에서 드러난다. 과거 도시의 이미지들이 상업적 의도를 가진 이미지들로 점철되었다면 점차 도시에서 사적인 이미지들의 비율이 늘고 있다. 반면 개인적인 용도로 이용되던 SNS는 적극적인 광고의 매체로 활용된다. 도시와 SNS는 이렇게 서로의 특성을 빌려주고 빌려 오는 것이다.

존 버저
John Berger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Ways of Seeing』에서 이미지를 인지함에 있어 움직이는 것은 이미지가 아닌 우리 자신이지만 마치 이미지가 이동하는 것처럼 인지한다고 주장한다. 흥미롭게도 반세기 후 우리는 이미지가 버스나 택시의 표면을 빌려 도시 속을 이동하는 세상을 살게 되었다. 이처럼 오늘날 이미지가 우리에게 이동하는 것처럼 인지하는 것은 일부 이미지가 실제로 우리에게 이동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미지의 이동은 SNS의 주된 특징이다. TV 등 기존의 기술들이 제공했던 이미지의 이동, 전달은 SNS에서 더욱 능동적으로 나타난다. 도시를 이동하는 이미지나 TV 등에서 제공받던 이미지들은 우리와 무관한 것인 경우가 다수이지만 SNS에서는 이용자와 관련된 이미지들이 제공된다는 점에서 더욱 능동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SNS의 이미지 전달이 정교한 큐레이션curation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SNS는 개인의 SNS 이용 양상을 분석하여 사용자가 좋아할 것으로 예측되는 이미지를 큐레이팅
curating하여 보여준다. 구매를 고민하던 상품이 SNS상의 광고에 때맞추어 올라와 놀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미지는 성별, 직업군, 연령대 등의 정보 외에도 평소 보았던 사진이나 게시물, 검색 양상을 통해 큐레이팅 된다. 도시에서도 비슷한 방식의 큐레이션이 행해지고 있다. 특정 노선 이용객의 집단적 특성을 분석하여 그것에 맞는 광고를 지하철 혹은 버스의 노선이나 역에 노출하는 방식은 이미 흔하다. 신사역이나 강남역의 성형외과 광고가 그 예이다. 이러한 큐레이션은 사람들이 불필요한 이미지에 노출되는 빈도를 줄이며, 더 나아가 도시 전체의 이미지의 수를 줄인다.

SNS의 대표적인 특성인 실시간성은 디지털 정보를 출력할 수 있는 일부 대형 간판을 제외하면 비율로 보았을 때 도시에서 널리 발견되는 특성은 아니다. 반면 SNS의 실시간성은 도시를 이루는 이미지에 가장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특성이다. 이를테면 도시 내 간판 개수의 과잉이 불러온 논의에서 빠지지 않는 아이디어인 간판의 실질적 효용 시간에 대한 문제는 실시간성의 차용으로 해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영업하는 카페의 간판은 영업시간 외에는 효용성을 크게 상실하므로, 나머지 시간에는 카페의 근처에 있는 다른 공간을 위한 간판으로 사용되면 효용성을 높이며 도시 전체의 이미지의 수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거리에서는 도로명이나 주소가 적힌 판의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들과 교대로 보이는 등의 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 운행 정보뿐만 아니라 광고 영상을 보여주는 지하철역의 화면 등이 좋은 예이다. 디지털 기술이 적용되어야 가능하다는 한계점이 존재하지만 이상의 실시간성의 차용을 통해 도시의 모습을 바꾸고자 하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SNS와 간판은 서로의 이미지를 드러내는 방식을 빌려 가며 서로 영향을 주어왔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도시의 모습은 바뀌어 왔다. 이러한 변화는 도시 전체로 보았을 때 이미지가 줄어드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도시의 간판들이 담당하는 정보 전달의 역할을 스마트폰이 대체하며 동시에 여전히 도시에 존치되는 이미지는 새롭게 개발된 기술과 방식으로 개선된다.


줄어드는 도시의 이미지우리가 마주할 도시
리들리 스콧
Ridley Scott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는 디스토피아로서의 미래 도시라는 세계관의 미장센으로 건물을 가득 덮은 간판을 최초로 제시하였다. 이후 제작된 대부분의 공상 과학 영화들은 리들리 스콧이 제시한 미학을 그대로 차용하였다.3 우리는 기술의 발전이 촉발한 전환점의 시대를 살고 있다. 《블레이드 러너》의 시간적 배경은 2년 후인 2019년이지만 오늘날 도시의 모습은 그의 상상과는 사뭇 다르다. 스마트폰의 개발로 리들리 스콧, 그리고 다른 감독들이 그렸던 도시의 모습은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지의 수가 어느 때보다 폭발적으로 늘어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도시 안의 이미지의 수는 줄어드는 최초의 시대를 목격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SNS가 기존 도시가 드러냈던 이미지를 대신 보여주고, 이미 존재하던 이미지를 바꾸어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도시에서 이미지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4 하지만 적어도 데커드 형사(해리슨 포드Harrison Ford 분)가 걷던 로스앤젤레스의 거리는 우리 도시의 미래가 아니다.



1 로버트 벤투리Robert Venturi와 데니스 스캇 브라운Denise Scott Brown이 Learning From Las Vegas를 완성하기 19년 전 루이스 칸Louis Kahn 설계의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 미술관에서 Signs for Streets and Buildings라는 명칭의 학회가 열렸다. 그래픽 디자이너 앨빈 러스틱Alvin Lustig과 당시 뉴욕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의 건축, 디자인과 디렉터였던 필립 존슨Philip Johnson이 개최한 이 학회는 거리와 건물의 사인들의혼란스러운 모습을 비판하며 도시를 이루는 그래픽의 체계화와 규범화의 필요성을 논의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듬해인 1954년, 필립 존슨은 뉴욕현대미술관에서 동 미술관의 그래픽 디자인과 학예사였던 밀드러드 콘스탄틴Mildred Constantine과 함께 Signs in the Street라는 전시를 기획한다. 전시는 학회와 마찬가지로 동시대의 도시의 이미지들이 야기하는 혼란을 비판하였다. 같은 시기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에서 케빈 린치Kevin Lynch와 죄르지 케페스György Kepes는 1954년부터 1959년까지 The Perceptual Form of the City라는 리서치를 수행하였다. 이는 가독성 분야의 권위자였던 케페스가 그의 1944년 저서 Language of Vision에서 다루었던 동주제를 확장한 것이었다. 도시를 이루는 디자인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을 골자로 하였던 본 리서치는 이후 1960년 출간된 케빈 린치의 저서 The Image of the City의 근간이 된다. Felicity D. Scott, Disorientation: Bernard Rudofsky in the Empire of Signs, Berlin: Sternberg Press, 2016, pp.11-16.

2 정치적 문구를 담은 이미지가 아니더라도 모든 이미지는 정치, 사회, 경제적 이데올로기를 함축하며, 함축 여부는 이미지 생산자의 의도와는 무관하다. Alfredo Jaar: Images Are Not Innocent, 2013. http://channel.louisiana.dk/video/alfredo-jaar-images-are-not-innocent. 

3 뤼크 베송Luc Besson 감독의 《제5원소The Fifth Element》,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Spielberg 감독의 《A.I.》, 렌 와이즈먼Len Wiseman 감독의 《토탈 리콜Total Recall》, 더 워쇼스키스Lana Wachowski and Lilly Wachowski와 톰 티크베어Tom Tykwer 감독의 《클라우드 아틀라스Cloud Atlas》, 길예르모 델 토로Guillermo del Toro 감독의 《퍼시픽 림Pacific Rim》, 그리고 루퍼트 샌더스Rupert Sanders 감독의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Ghost in the Shell》에 이르기까지 리들리 스콧이 제시한 미술은 이후의 공상 과학 영화, 특히 사이버펑크cyberpunk 영화 미술의 근간이 되었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 감독의 《그녀Her》는 이러한 미장센을 이용하지 않은 몇 안 되는 공상 과학 영화 중 하나이다. 감독은 화려한 간판이 부재한 미래 도시를 제시한다. 《그녀》의 주제가 스마트폰과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개발이 불러올 도시에서의 삶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감독이 제시한 도시의 모습은 본문의 주제와 상통한다. 비슷한 시간적 배경과 로스앤젤레스라는 공간적 배경을 공유하는 두 영화 《블레이드 러너》와 《그녀》가 완전히 다른 도시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4 수전 손택Susan Sontag의 주장처럼 자본주의 사회는 이미지에 기반을 둔 문화를 필요로 한다.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도시에서 이미지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Susan Sontag, On Photography, Penguin Books,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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