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가 다 되어서야 깼다. 눈을 뜬 뒤 시계를 보고 가장 먼저 한 생각은 ‘게으르다’였다. 하지만 그 후로도 이불 속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역시 ‘게으르다’고 생각하며 눈 뜬 지 20분쯤 후 이불 밖으로 나왔다.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하고 거실을 어슬렁거리다 엄마가 만들어준 계란볶음밥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봤다. 참으로 느긋한 삶이다.
어젯밤 잠들기 전에 ‘잠이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깨어 있는 시간이 길면 책 읽고, 일하고, 글 쓰고, 중국어 공부하고, 운동하고, 친구들과 술 마시길 여유롭게 할 수 있을 텐데. 지금처럼 동동거리지 않고. 깨어 있는 시간에 딴짓 하지 말고 책 읽고, 일하고, 글 쓰고, 중국어 공부하고, 술 마시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사실 난 정말 딴짓을 잘한다. 텔레비전 보기, 낮잠 자기, 틈틈이 핸드폰 오락하기, 아빠한테 장난 걸기, 엄마한테 붙어 있기, 그냥 누워 있기, 핸드폰 만지작거리기, 인터넷 실검 찾아보기 등등. 이 시간을 줄여 해야 할 일에 쏟는다면 내 바람처럼 여유롭게 그 모든 일을 해낼 수 있으리라. 나도 안다. 잘 되지 않을 뿐. 한 달에 술 몇 번 안 마시면 노트북을 살 수 있지만 노트북도 사고 싶고, 술도 마셔야 하는 이치처럼. 게으름은 내 오랜 친구다.
텔레비전을 보다 엄마와 어제 뉴스에서 본 사건 이야기를 나눴다. 한 남자가 여자친구를 4시간 동안 감금한 채 폭행했다는 내용이었다. 폭행의 이유는 여자 친구가 전화를 싸가지 없게 받았다는 것. 여자는 잠결에 전화를 받았고, 남자는 그 태도가 몹시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뉴스에서 여자가 남자에게 맞으며 녹음한 소리를 들려주었다. 흐느끼는 여자의 목소리, 화가 나 여자를 추궁하는 남자의 목소리, 사이사이 들리는 끔찍한 폭행의 소리…. 그랬음에도 남자는 12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고, 여자는 학교에서 매일 피의자를 보며 공포에 떨어야 했다. 법원에서 남자에게 벌금형을 내린 이유는 ‘의대 대학원에 다니는 피의자의 앞날을 생각해서’였다. 저런 사람이 의사가 되도 괜찮은 걸까? 의사가 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돼야지. 우리나라 법은 참 인정이 많기도 하지. 피의자의 창창한 미래까지 보장해 주다니. 그럼 피해자의 현재와 미래는 누가 보장해 주지? 여자가 살았기에 망정이지 죽었으면 어쩔 뻔했어? 분개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더랬다.
엄마는 다시 어제의 그 뉴스 이야기를 꺼내며 남자가 여자를 때리던 소리가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고 말했다. 너무 끔찍하지 않느냐고, 그런 놈은 저렇게 그냥 두면 안 된다고 여전히 화를 냈다. 나는 사실 그 남자에게보다는 그런 판결을 내린 법원(아니 법관인가?)에 더 화가 났다. 나쁜 사람은 나쁘다. 나쁜 사람은 언제 어디에나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잘못된 행동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나쁜 사람에게, 잘못한 사람에게 벌을 주라고 법이 있는 것이다(물론 더 심오한 이유가 많겠지만 표면적으로 가장 잘 드러나는 이유는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쁜 사람, 잘못한 사람에게 제대로 된 벌을 주지 않고 풀어주었다. 그가 앞날이 창창한 의대생이라는 이유로. 의대생이 벼슬인가? 똑같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의대생이 아니었다면, 비정규직이라든가 백수라든가 일용직노동자였다면 앞날이 창창하지 않으므로 실형을 선고했을까? 이 나라의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불공정한 시선이 느껴져 나는 너무나 화가 났다. 이렇게 우리 두 모녀는 일요일 오전에 텔레비전을 보며 서로 다른 곳에 초점을 맞춘 채 함께 화를 냈다.
그러다 엄마가 은근슬쩍 화제를 바꾼다. 저런 남자 만나면 안 돼. 요즘은 저런 이상한 놈이 많아서 잘 보고 만나야 해. 어이쿠. 분노의 불꽃이 나에게로 튈 모양이다. 이럴 땐 줄행랑이 상책이다.
화제가 결혼으로 넘어가기 전에 무사히 탈출(?)에 성공해 드디어(!) 책상 앞에 앉았다. 컴퓨터를 켜고 교정 봐야 할 원고 파일을 연다. 그리고 다시 새 창을 연다. “10시가 다 되어서야 깼다. 눈을 뜬 뒤 시계를 보고 가장 먼저 한 생각은 ‘게으르다’였다”를 쓰기 시작한다. 일을 해야 하는데 새 창에 글을 끄적거리고 있다는 게 조금 양심에 찔린다. 마치 ‘책 읽지 말고 공부해’라고 말한다는 어른이 나에게도 ‘글 쓰지 말고 일해’라고 말할 것만 같다. ‘책 읽지 말고 공부해’라고 말하는 어른을 한심한 인간이라고 생각했으므로 나에게 ‘글 쓰지 말고 일해’라고 말할 것만 같은 어른도 한심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갑자기 ‘글 쓰는 게 뭐 어때, 나한테는 이게 더 중요한 일이야’라는 생각이 들어 욱 화가 치민다. 그래, 나도 안다. 공부해야 하는 것과 일해야 하는 것은 다르다는 걸. 화가 조금 가라앉는다.
다시 다음 문장을 쓰려 하는데 컴퓨터가 말썽을 부린다. 재시작을 하란다. 어쩔 수 없이(!) 컴퓨터를 끈다. 아, 이놈의 컴퓨터 때문에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네, 투덜거린다. (이히히히히. 마음속에서는 이런 웃음이 흘러나온다.) 컴퓨터가 재시작하는 동안 연습장을 꺼내 중국어 단어를 외운다. 세 개쯤 외우니 컴퓨터가 켜졌다. 이왕 시작한 거 다섯 개까지 외우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의대생 이야기까지 쓰고 나니 좀 쉬어도 될 것 같다(아직 일은 시작도 안 했는데). 인터넷에 들어가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을 볼까 싶다. 지난번에 진행한 책 안에 《라쇼몽》이 언급됐던 터라 어떤 영화인지 궁금하다. 광고는 왜 이리 많은지. 네다섯 편 정도 되는 광고가 끝나고 정말 막 영화가 시작되려는 찰나, 아빠가 방문을 두드린다. “우리 밖에 나가서 걸을 건데 너도 같이 갈래?” 요즘 날이 춥고 비가 자주 와 걷지 못했더니 안 그래도 몸이 찌뿌둥하다. “갈게요.” 노트북을 닫고 부모님과 함께 산책을 한다.
산책에서 돌아오니 4시. 그때부터 거실에 누워 주말에 방영되는 예능 프로를 섭렵한다. 아빠는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엄마는 거실에 앉아 쪽파를 까고 있다. 이번에는 김장을 담글 때 채 썬 무를 넣지 않고 양념만 만들어 배추에 발랐기 때문에 절인 배추에 속을 싸먹는 호사를 누리지 못했다. 자고로 김장 속은 똥꼬가 쓰릴 때까지 먹어줘야 제맛인데. 쩝. 아쉬운 마음을 엄마에게 털어놓았더니 무채를 넣은 속만 만들어주신단다. 나에게는 채 써는 임무가 주어졌다.
채칼에 무를 대고 아래위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손에 익지 않고, 채칼에 손이 베일까 두려워 엉성하게 하고 있었더니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며 엄마가 시범을 보인다. 엄마의 시범이 끝나자 아빠가 그냥 두라고, 내가 하겠다고 나선다(원래 무 채 써는 건 아빠 몫이었다). 나는 아쉬운 듯 채칼을 아빠에게 넘긴다. (이히히히히. 마음속에서는 이런 웃음이 흘러나온다.) 채 써는 아빠를 지켜보며 괜히 무채 썰기의 달인이라고 치켜세운다. 이런 비겁한 녀석, 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저녁을 먹고 쉬고 있는데(또 쉬고 있었다) 아는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묻기에 프리랜서 생활을 한다고 답했다. 아는 동생은 프리랜서라니 부럽다며 자기도 내일 사장님께 이야기해서 프리랜서 하겠다고 말한단다. 참고로 들어간 지 두 달밖에 안 된 회사다. 그냥 얌전히, 죽은 듯이, 그 회사에 뼈를 묻겠다는 자세로, 젖은 낙엽처럼 붙어 있으라고 충고했다. 프리랜서는 마감과의 싸움이야. 마감과의 싸움이란 게으른 나와의 싸움이자 게으른 나 때문에 아파하는 양심과의 싸움이지. 마감이 다가오면 잠을 못 잘 정도로 (사실 자면 안 돼) 스트레스를 받고, 마감을 넘기면 담당 편집자에게 따가운 눈총을 받는 건 물론 잔소리를 사발로 듣고, 더 심하면(친하면) 욕도 배불리 먹을 수 있어. 언제 일이 끊길지 알 수 없어 조마조마하고, 자유로운 대신 가난하지. 등등 프리랜서의 고충을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다시 책상 앞에 앉으니 밤 11시. 정말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두 문단, A4 반 장에 달하는 일을 하고는 이불 속으로 꾸물꾸물 들어갔다. 아, 정말. 프리랜서의 생활이란. 아, 정말. 나란 인간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