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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주 Jan 05. 2023

매미가 운다

여름과 겨울 중 어떤 계절이 더 좋으냐, 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망설임 없이 즉각 대답한다. 여름이요! 라고. 추울 땐 옷을 껴입으면 되지만 더울 땐 다 벗어도 더우니 외부 온도에 대응하기엔 겨울이 낫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아 금세 손발이 차가워지는 몸뚱이를 가진 나에겐 겨울의 추위가 사뭇 못 견디게 버겁다. 차라리 찜질방 같은 방바닥에 젖은 수건처럼 누워 있는 게 좀 더 견딜 만하달까. 추우면 몸에 열을 내기 위해 손이라도 비벼야 하는데, 더우면 움직이는 게 다 뭐냐, 그저 아무것도 안 하고 선풍기 앞에 누워 아이스크림 먹는 게 최고다. 이러니 만사가 귀찮 고, 느긋하게 살고 싶어 하는 나에겐 여름이 더 선호하는 계절일 수밖에.


이런 나에게도 지난여름은 유독 힘이 들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하나는 집과 직장의 거리가 무척 멀어졌다는 것이다. 일산에서 홍대까지 50분이면 도착했던 회사가 저 멀리 강 너머 강남으로 이사를 가면서 출근 시간이 1시간 40분으로 대폭 늘어났다. 왕복 3시간 20분. 내가 강남에 있는 회사에 다니게 될 줄이야. 40년 가까이 고양시에 살면서 강을 넘어가는 건 여행이라고 생각해왔거늘. 그 여행을 이제 매일 다니게 생겼네. 그것도 지옥철을 타고서. 지옥으로 떠나는 여행인가. 

복병도 이런 복병이 없었다. 갑자기 튀어나와 내 몸에 원 투 원 투, 잽을 날리는 피로와, 피로와, 피로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제의 피로가 미처 다 풀리기 전에 오늘의 피로가 쌓이고, 오늘의 피로 위에 다시 내일의 피로가 쌓이면서 몸이 점점 무거워졌다.

또 다른 하나는 5년 넘게 유지해온 새벽 기상을 더는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4시에서 5시 사이에 일어나 본격적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며 사부작사부작 나만의 시간을 가졌었는데.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늦어지니 그만큼 잠드는 시간이 늦어지고, 늦게 잠들고 일찍 일어나려니 피곤이 쌓이는 속도를 피곤을 푸는 속도가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회사에 나가 그래도 밝은 정신으로 일을 하려면, 그래서 먹고 살려면 기상 시간을 늦춰야 했다.

첫 번째 이유가 신체를 무겁게 만들었다면 두 번째 이유는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꺼지지 않도록 소중히 관리해온 등대의 불빛을 잠시 꺼두는 기분이었다. 내 삶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비춰주던 그 불빛을 스스로의 손으로 달칵, 꺼버린 기분이었다. 한 번 끄면 다시는 켜고 싶어지지 않을까 봐, 등대 위에서 내려오면 다시는 올라가고 싶어지지 않을까 봐 고집스럽게 지켜온 그 무엇을 스스로 포기해버린 기분이었다. 그래서 우울했고, 그래서 불안했다.

실외는 너무 덥고, 실내는 너무 추운 여름이었다. 내 몸에 꼭 맞는 온도를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날들이었다. 젖은 수건 같은 몸과 마음을 끌어안고 이리저리 오가던, 한 계절이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삶의 복병이란 굴곡진 인생의 굽이굽이마다 교묘하게 몸을 숨기고 있다가 아무도 모르게 슬그머니 다가와 등을 확 밀어 넘어뜨리고는 또 어느 굽이굽이로 숨어드는 것들인가 보다. 힘든 계절을 건너가고 있는 나에게 예상치 못한 또 다른 복병이 찾아왔으니, 그것은 바로 매미. 한밤중에도 쉬지 않고 맴맴~ 매애애애애~ 우렁차게 울어대는 매미소리였다.


추운 걸 싫어하는 나는 에어컨의 찬바람도 싫어해서 한여름에도 창문 열기와 선풍기 바람만으로 열대야를 견디곤 한다. 지난여름에도 선풍기 타이머를 맞추고, 창문을 활짝 연 채 무거워진 몸과 마음을 이부자리 위에 뉘였다. 그런데,
맴맴~ 매애애애애~

우리 집 앞 베란다 창으로 가지를 쭉 뻗고 있는 살구나무 쪽에서 매미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내 베개 바로 옆에 머리를 맞대고 같이 누운 채 울고 있는 듯 생생하게. 이 매미가 잠시 울음을 멈추면 저 매미가 울기 시작하면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며 똑바로 누워도 옆으로 누워도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래, 매미 너네도 이 시간에 울고 싶지 않겠지. 우리 인간이 밤에도 대낮처럼 불을 환히 밝혀놓은 탓에 너네도 낮이라 착각해서 이렇게 울고 있는 거겠지. 그러니 너희를 탓해봐야 무엇하리. 너희는 그저 너희의 삶을 열심히 살고 있을 뿐인데. 하지만 나도 내 삶을 열심히 살려면 지금 잠을 자야 한단다. 나는 일산에서 강남까지 3시간 20분씩 출퇴근을 하는 사람이라고. 잠을 못 자면 피곤이 쌓이고 그럼 회사에서 졸음이 쏟아지고 머리는 멍해져서 책 제목도, 카피도 도무지 생각이 안 나고, 막 실수도 하고 그런다고. 매미를 향한 원망과 이해, 내일의 나를 향한 걱정과 응원, 숨 쉬며 살아가는 모든 생명을 향한 측은지심에 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잠은 점점 더 멀리 달아나버렸다. 그렇게 시간은 12시, 12시 반, 1시, 1시 반을 향해 가고...

이러다간 꼴딱 날밤을 샐 것 같다는 위기감에 결국 벌떡 일어나 창문을 닫아버렸는데, 역시나 5분도 지나지 않아 참을 수 없이 더워졌고, 열기를 식히고자 에어컨을 트니 춥고 바람이 신경 쓰여서 또 잠이 안 오고, 다시 창문을 열었더니 여전히 매미는 울고 있고, 겨우 지쳐 잠이 들었다가도 한 시간 뒤면 또다시 잠이 깨고, 아직도 울고 있는 매미를 따라 나도 같이 울고 싶고... 그렇게 잠을 설치는 날이 여름 내 지속되었다. 정작 자야 할 땐 잠이 안 오고, 깨어 있어야 할 땐 졸음이 쏟아지는, 무엇 하나 내 맘 같지 않았던 지독한 장난 같던 여름이었다.


그렇게 한 2주 정도를 살았나. 그날도 매미 소리를 듣다가 설풋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눈이 떠져서 시계를 보니 새벽 2시경. 매미들은 여전히 맴맴~ 매애애애애~ 울며 자신의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비척비척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볼일을 보고 나와 화장실 불을 끄자, 온 집 안이 다시 어둠에 잠겼다. 그날따라 나는 바로 방으로 돌아가 이불 위에 눕지 않고 천천히 거실로 나아갔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참 징그럽게도 울어대는 그 소리들을 향해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던가. 

거실은 밖에서 흘러들어온 가로등 빛으로 푸르른 어스름에 잠겨 있었다. 나는 점점 베란다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매미 소리가 일제히 커지며 희뿌연 집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 집 바로 앞에서, 오솔길에서, 도로변에서, 그 도로 너머에서, 저 멀리에서. 온 세상이, 온 우주가 매미 소리로 가득 차올랐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환상적인 기분. 소리로 이루어진 푸르른 바닷물 속에 깊이 잠겨서 넘실넘실 흘러다니는 기분. 3시간 20분씩 지옥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현실, 몸은 피로하고 평생 마음에 담아두었던 ‘꿈’ 같은 것을 잠시 묻어둔 채 내 책이 아닌 다른 사람의 책을 만들고 있는 현실 속이 아니라 신비롭고 몽환적인 환상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기분이었다. 채 3분도 되지 않았을 그 짧은 시간에 매미 소리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밀려갔다. 내 평생 이렇게 소리가 가득한 세상에, 소리만 가득한 세상에 서본 적이 있었던가. 단언하건대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현실과 환상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아무리 피곤하고 비루하고 지치고 고달픈 현실일지라도 그 사이사이에 우리를 숨 멎게 하고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환상이 숨어 있다는 것을. 우리 삶의 굽이굽이에는 복병도 숨어 있지만 신비롭고 반짝이는 비현실적인 순간도 존재한다는 것을.


‘예술가는 다른 직업을 가지면 안 된다’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섬세하고 예민한 예술가의 감각이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무뎌질 가능성이 높으니 그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의 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리로 가득 찬 세상의 중심에, 최선을 다해 지금을 살고 있는 생명들의 우렁찬 외침의 한가운데에 서서 나는 그 말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예술을 미화하고, 특권화하는 번드르르한 말일 뿐임을. 현실이 예술이고, 예술이 현실임을. 그 둘은 분리할 수 없으며 함께할 때에야 비로소 속이 꽉 찬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그 순간 이후부터였을 것이다. 한없이 무거워지기만 하던 발걸음이 조금씩 가벼워지기 시작한 것이. 나와 함께 지옥철에 몸을 싣고 어딘가로 향하는, 지금에 충실한 이 사람들의 우렁찬 삶의 목소리가 단지 창을 닫아버리고 싶은 짜증스러움이 아니라 나를 환상의 세계로 이끄는 신비한 힘임을 어렴풋이 짐작한 것이.


힘들기만 했던 여름도 이미 다 지나갔다. 또다시 계절은 돌고 돌아 올해의 여름이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매일 강을 건너 출퇴근을 하고, 휴일에 혹은 퇴근 후 잠들기 전에 짬을 내 틈틈이 글을 쓰고 있다. 치고 빠지듯, 일하는 시간과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짧지만, 짧으니 환상이고 꿈이지 않나, 생각하면서.

매미 소리는 그날 이후로도 계절을 가리지 않고 내 마음속에서 여전히 징그럽게도 울어대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그 소리가 나를 어딘가 다른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라 믿는다. 그럼 됐다, 지치지 않고 울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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