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주 어렸을 때, 아직 한글조차 깨치기 전이었지만 아버지는 내게 천자문을 가르쳐 주셨다. 하늘 천(天), 땅 지(地), 거칠 현(玄), 누를 황(黃), 지 부(夫), 집 주(宙), 붉을 홍(紅)… 어린 나는 그 뜻도 모른 채 아버지의 발음을 따라 하며 그 음을 외웠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지금도 그 소리를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는 천자문만 가르치신 게 아니었다. 그는 내게 몸도 마음도 단단해지기를 바라셨는지, 매일 아침 문지방 앞에 나를 세우셨다. 한쪽 발로만 서고 양팔을 학처럼 벌리게 하시며, 나머지 다리는 곧게 펴라고 하셨다. 그 자세로 오래 버티면 “잘했다”는 한마디와 함께 꼭 안아주시곤 했다.
아버지는 내게 말씀하셨다.
“학처럼 오래 서 있는 사람은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땐 몰랐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간들이 나를 버티게 한 뿌리였는지도 모른다. 삶이 흔들릴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학처럼 팔을 벌린다. 그리고 마음속에 떠오르는 천자문의 첫 구절을 조용히 읊조린다.
하늘 천, 땅 지, 거칠 현, 누를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