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변했다. 그래도 변하면 안되는 것이 있다.
지금의 아이들은 화면을 손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 더 편안한 시대다.
핸드폰의 기능을 컴퓨터에서도 재현하는 모습을 보았을때, 아차! 했다. 알려주지 않아도 이것이 기계이고, 기계는 손가락으로 원하는 것을 꺼내는 것이라는 것을 이미 체득한 세대이다. 마우스로 커서를 가져다 되어야 하는 시대는 이제 한 물 갔다. 어쩌면 아이들이 더 자라면 눈동자가 대신해주는 것이 익숙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기본을 알지 못한 채 기능만을 사용한다면 소비자만 될 것이다. 우린 아이들에게 생산자가 되도록 이끌어어야 하는 의무를 가진 어른들이 되어야 한다.
내가 여렸을때는 핸드폰이라는 개념도 없었다. 전화기가 있었고, 윗 세대에서는 티비도 마을에 모여서 보던 시대다. 지금은 손에 핸드폰이 없다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고, 쳇 지피티의 등장으로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감정을 건들이는 공감까지 해주니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아이들에게 있어 그럼 처음 엄마를 알고, 선생님을 알고, 친구들을 알고, 대근육을 발달도 재미없고, 소근육의 복잡함도 어느정도 맛본 다음에 그다음에 알고자 하는 것이 수의 개념이다.
1,2,3,4,5 이런 숫자를 알게 하고, 문자의 기호를 보게 하는 것은 이미 개념을 알고 있는 아이들에게 적용되는 것인데 이를 모르는 어른들이 참 많다. 숫자 1,2,3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 숫자들의 어떻게 사용되고, 어떤 쓰임으로 인간들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의 기본이념을 인식시켜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숫자의 탄생의 역사를 보면 의사소통의 도구로 만들어졌다. 숫자 자체로의 의미는 별로 없다. 그래서 숫자를 읽어 나가는 아이들에게 기특하다고 말 할 필요가 전혀 없다.
내가 한개를 가졌고, 너는 두개를 가졌으니, 손가락으로 가능하지만 천개가 되고, 만개가 되는 것은 손가락 그 이상의 개념이다. 세상 끝까지 쫒아가도 그 끝을 알 수 없다고 말하는 숫자를 그럼 아이들에게 어떻게 알려주고, 인식시켜 주어야 할까?
나는 임신전 부터 수학으로 태교를 시작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수의 개념이 아닐까? 싶은 마음도 있고, 태아와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나가는 상황 속에서 수와 수학적 개념이 빠질 수 없다는 것을 그때 더 잘 알기도 했다. 태아를 뱃속에 둔 나에게 맛있는 된장찌개를 차려주고자 할 때 직육면체의 두부를 어떻게 자르는 것이 가장 맛있는 크기이고, 수제 요플레를 만들어 먹을때면 적덩한 온도의 수치와 시간적 차이가 다른 밀도를 만들어 내고, 보이지 않는 태아를 의사선생님께서 보여주는 화면에 비춰진 숫자는 무엇을 의미하며 등등 세상 속의 숫자는 현제 모든 경제를 움직이는 축이 되는 것을 뱃 속에서 부터 알려줘서 그런지, 아니면 유전자 속에 숫자의 중요성을 박아 놓아서 그런지 수학을 좋아하고, 잘 하는 딸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 미술을 시켜주지 않던 부모님과의 소통에서 공부를 놓아버리는 것을 선택한 나머지 학교 공부는 그닥 잘하지 못했지만 지금 나에게 어려운 수학의 문제를 내밀어도 거부 반응없이 덤덤하게 실타래를 풀어나갈 수 있다.
대학을 가기 위해 수학을 배워야 하는 현재 아이들이 영유아시기에 수학과 산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속에 들어 있는 보물을 찾고자 하는 열망을 0세 부터 7세까지 어떻게 키워나가야는지 조금 설명하고 싶다.
다음편에 아이들이 바라본 숫자로 시작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