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포옹

안아주고 싶은 마음.

by 봄여름가을동화

이 책엔 이런 단어가 들어 있다.

검은 고양이, 선잠, 개방성, 적요, 물소리, 복화술, 쑥부쟁이, 된장, 소설, 짐승, 기회, 부끄러움, 발톱, 통제, 예배당, 모나리자, 거부감, 시냇물, 뜬구름, 우울, 꽁무니, 열네 살, 아름다움, 이듬해, 키스, 팽이


각 단어의 독립성과 개성을 보는 게 기쁘고, 문장에 휩쓸려 희미해질 단어 각각의 숙명을 생각하면 슬프고, 내가 이 단어들을 '무심히' 사용하고 다른 곳으로 건너가려는 게 아닌지 두렵다.


책을 마무리하는 일은 꽃밭에 물을 주듯 기르던 단어 곁을, 그 장소를 떠나는 일이다.


무해하게 돋아나 아름답게 존재하는 것, 부드럽고 보송하고 고소한 향내를 풍기는 것. 아첨하지 않고도 상대에게 원하는 걸 받아내는 것. 오면 가고 가면 오는 것. 마음을 몰라 끝내 마음을 다 주게 되는 것!

<고요한 포옹> 중


떠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자기 자신의 현실 속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것이다. 끝과 시작처럼 떠난다는 것과 돌아온다는 것은 하나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최승자,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59쪽>


저는 사물들의 형태를 감상하는 걸 좋아해요.

제 자신의 형태도 포함해서요. 주름, 힘줄, 정맥, 아름다운 모습들이죠. 나무를 바라보는 것과 같아요ㅡ. 오래된 나무를 보면 그 모양새가, 형태가 대단하잖아요. 그리고 나무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하죠. "정말 근사한 올리브나무네." 그럼 이렇게 말할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정말 근사한 손이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아녜스 바르다의 말, 348쪽>


"엄마! 오늘 모비딕책 다 읽는 하지 않았어? 왜 고새 다른 책이야?"

책이 나를 부르는 건지, 아님 내가 책을 찾는 건지 아리송한 마음으로 그 책과 마주할 때가 있다. 그때 꺼낸 책들은 내 마음을 읽어주려 나타난 천사 같단 생각이 든다. 가끔 글자를 읽는 것과 마음을 읽는 것이 혼란스러울 때 나타나서는 검은 눈동자로 또렷하게 보이는 것을 찾아내라 알려주는 것 같기도 하다.


아이들과 책을 마주하는 때에 글자를 해석하는 것은 무척이나 쉽다. 하지만 기쁨과 슬픔의 교차점에 감정을 가져다 놓는 일은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작업들을 하다 보면 어느새 조금씩 자라났구나 하고 감탄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책이건 사람이건 사물이건 모두 명사에서 동사로 변해 마음속에 들어오면 그게 뭐든 꼬옥 안아주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영어랑 국어 공부는 정말 어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