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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칼 Apr 11. 2024

지지 않기 위해 산다

이기려고 살지 않아 다행이다

매주 화요일 오전 8시에 받는 뉴스레터가 있다. 김영하 작가의 '영하의 날씨'다. 매주 작가의 글을 한 편씩 받는 것이다. 독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도 있고, 기타 이벤트 등의 소식도 함께 한다. 


이번주에 받은 영하의 날씨 이야기, <영하의 인생사용법 Ep.5>의 주제는 '지기(知己)'이다. 해당 글에서 몇 문장 발췌하여 소개한다.

 

사십 대 중반에야 처음 읽은 고전 중에 『손자병법』이 있다. 작가 이탈로 칼비노는 “고전이란 우리가 처음 읽을 때조차 다시 읽는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라고 정의했는데, 그런 정의에 딱 맞는 책이 『손자병법』이었다. 익히 들어 알던 구절도 많았지만 잘못 알고 있던 부분도 있었다. 이를테면 「모공(謀攻) 편」의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가 그랬다. ‘백전백승’이 아니라 ‘백전불태’였다. 즉,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백 번 이긴다는 게 아니다. 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손자는 조심스럽고 신중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아무리 적을 잘 알고 자신을 잘 알아도 다 이길 수는 없고, 다만 지지 않을 수는 있다는 것이다. 손자는 자기 말만 잘 들으면 무조건 이길 수 있다고 허풍을 떨지 않았다. 그러나 적을 모르고 자기 자신도 모르면 반드시 위태롭다고 단언한다. 
나는 이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지금까지 뭘 이긴다는 마음으로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저 지고 싶지 않았다. 지고 싶지 않음과 이기고 싶음은 다르다. 
<영하의 날씨 5회 중>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지피지기 백전백승'이 사실은 '지피지기 백전불태'였다고 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이긴다'가 아니라, 위태롭지 않다. 즉, '지지 않는다'이다. 이기는 것과 지지 않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음을 작가의 글을 통해 다시 생각한다. 스스로 지지 않기 위해 살고 있음을 말하는 작가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가면서 '나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기는 것과 지는 것 

이기지 못하는 것과 지지 않는 것 


이기지 못하는 것이 지는 것은 아니다. 지지 않는 것이 꼭 이긴다는 의미도 아니다. 이기지 못하는 것은 타인에 의해서다. 지지 않는 것을 자기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지 않는 것의 차이도 비슷하다. 좋아해서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싫지 않기에 선택할 수 있는 경우도 많다. 어쩌면 하나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라는 느낌이 들고, 다른 하나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것처럼 보인다. 


좋아해서 시작하는 것은 마치 이길 때까지 달려들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만큼 열정이 과해지고, 온도의 변화도 급격하다. 좋아하는 마음을 지속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싫어하지 않기에 시작한 일은 상대적으로 기대감이 크지 않다. 그렇다고 마지못해 하는 것이라 할 수는 없다. 큰 거부감 없이 오랫동안 지속하는 것이 가능하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시작한 일들로 온통 채워져있지 않은가. 


이기기 위해 공부하고, 이기기 위해 일하고, 이기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면, 그 자리에 나는 남아있지 않다. 이기기 위한 투쟁은 나를 연소시킨다. 한 줌으로 연소되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온 힘을 다하는 것이 과연 언제나 옳은가? 그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 할 수 있나? 나중에는 무엇을 이기려 했는지 방향을 잃을지도 모른다. 


지지 않기 위해 사는 것은 하방을 두고 사는 것이다. 상방은 열어놓은 채로 있다. 하지만, 최소한의 기준을 갖고 사는 것이다. 이 정도는 해야지 라는 나의 지지선이 있는 것이다. 나를 잃지 않도록 받쳐주는 하방이 있다. 지지 않기 위해 사는 것은 남이 아닌 나를 이기며 사는 것이다. 나를 지키며 사는 것이다. 


지지 않기 위해 사는 것에 인색한 사회가 되었다. 노력하면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다는 노력 신봉 사회에서 살고 있다. 남을 이기고 올라가야 내 자리가 단단해지고 빛이 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지.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의 마음도 지기 싫다는 마음이었지 이기고 싶다는 마음은 아니었다. 이왕 소설을 쓰기로 했으니 좀 괜찮은 작품을 써서, 그래, 세상에 저런 작가도 하나 있으면 좋겠지,라는 말을 듣는 것이 목표였다. 알아야 지지 않을 수 있는 내 ‘적’은 다른 작가가 아니라 소설이고 글이었다. 소설을 이기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결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지지만 않으면서 함께 잘 지내고 싶었다. 그런데 내년이면 등단한 지 벌써 삼십 년이 된다. 어떻게 이렇게 오래 글을 써서 먹고살았나 싶은데, 아마 이기려고 하지 않아서인 것 같다.
<영하의 날씨 5회 중>


지지 않고 산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에게 지지 않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이기려 사는 것이 아님을 알았으니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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