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었다고 믿기에 늙은 것이다
루이스 캐럴 지음
"늙으셨군요, 아버지." 젊은이가 말했다.
"머리는 호호백발 세셨고요.
그런데 아직도 물구나무서 계시다니요.
그 나이에 괜찮으세요?"
"나 젊었을 적엔" 아버지 윌리엄이 아들에게 대답했다.
"그렇게 했다간 머리를 다칠까 무서웠었지.
지금은 조금도 해가 없다는 걸 안단다.
그러니 왜 안 하겠어, 하고 또 할 거야."
"늙으셨군요." 젊은이가 말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엄청 살이 찌셨어요.
그런데 문간에서 뒤로 공중제비를 넘다니요.
왜 그러시는 거예요?"
"나 젊었을 적엔" 마음 어진 아버지가 회색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내 팔다리는 매우 부드러웠지.
이 연고를 사용했단다. 한 개에 1실링인데
두 개만 살래?"
"늙으셨군요." 젊은이가 말했다.
"그리고 턱이 너무 약해서
쇠기름 말고 다른 것은 드실 수 없어요.
그런데 뼈와 부리를 가진 거위를 전부 다 드시다니요.
아니, 어떻게 그걸 드셨어요?"
"나 젊었을 적엔" 아버지가 말했다. "나는 법에 마음이 끌렸지.
그래서 아내와 송사 하나하나에 대해 토론했단다.
그것 때문에 턱에 근육이 생겼고 그 힘은
이후에도 줄곧 유지됐지."
"늙으셨군요." 젊은이가 말했다.
"뜻밖이네요. 눈이 예전과 한결같다는 것이.
그런데 뱀장어를 코 끝에 세우셨네요.
어떻게 그렇게 영리해지셨나요?"
"질문에 세 번이나 대답했으니 이제 충분하다."
아버지가 말했다. "까불지 마!
그따위 얘길 하루 종일 들을 수는 없어.
꺼져, 안 그러면 아래층으로 차 버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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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작가로 알려진 루이스 캐럴의 작품입니다. 아버지에게 늙었다고 이야기하는 자식에게 '나는 늙지 않았다!'라고 항변하고 있어요. 또한 늙지 않았을뿐더러 여전히 건강하고, 영리하고, 전문가임을 유지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지속적으로 의심하는 자식에게 '꺼져!'라고 호통치는 패기도 있어요.
'늙었다고 믿기에 늙은 것이고,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내 안에 영원한 젊음을 갖고 살 수 있다'는 의미의 글이라 합니다. 내 안에 영원한 젊음을 갖고 산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늙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잘 늙고 있다는 의미일 거라 생각해요.
얼마 전에 읽은 하지현 교수님의 책 <어른을 키우는 어른을 위한 심리학>에 '충분히 좋은 어른'이라는 문구가 나와요. 이제 장성하여 청년이 된 아이를 둔 중년의 부모들을 위해 쓴 책입니다.
'빈 둥지 증후군'을 겪기도 하지만, 여전히 아이를 돌보고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을 갖고 있는 많은 부모들에게 심리학적인 여러 처방을 해주는 책이었어요. 그 책의 핵심이 '충분히 좋은 어른이면 된다'입니다.
충분히 좋은 어른이란,
1.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요.
2. 신체적으로 건강합니다.
3.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경제적 안정은 자식들에게 부양의 짐을 덜어주는 것이고요. 신체적으로 건강한 것 역시 자식들의 역할을 많이 줄여줍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지나치게 자식에게 의지하게 되는 정서적 부담을 감소시키는 것이지요.
뒤집어 보면,
자식을 위해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살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경제적 활동을 해서 소득이 있거나, 혹은 다른 기타의 자산으로 경제적 곤란을 겪지 않도록 준비하고요. 건강함을 유지해서 여유로운 시간을 풍성하게 움직이며 보낼 수 있게 하는 것이에요. 주위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지나치게 자녀에게 의존하지 않고 사람에게서 얻는 삶의 기쁨을 채우는 것이지요. 이렇게 살 수만 있다면, 캐럴의 이야기처럼 '늙었다'라고 말하는 젊은이에게 '나 아직 안 늙었다'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충분히 좋은 어른이라는 것은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는 의미를 포함하지만, 이 정도의 조건이라면 거의 완벽이라고 보이긴 합니다. 다만, 자녀에게 물려주기 위해 더 큰 재산을 모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고요. 자연스러운 나이 듦을 역행하기 위해 억지를 부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있은 관계를 만들기보다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작은 행동에도 기뻐하는 사회 활동을 지속하라는 의미라고 생각했어요.
지속적으로 사회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새로운 배움을 시도하고, 언제나 열려있는 마음으로 긍정적인 태도로 생활하는 어른이 된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다행인가요.
충분히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한 방법을 알고 있고,
준비의 시간도 있고,
마음도 있으니까요.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도 충분히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함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