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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칼 Mar 28. 2024

가까운 곳에 도서관이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오랜만에 예전 저의 참새 방앗간에 들렀어요. 오며 가며 늘 들르던 곳, 사람을 만나는 약속도 여기서 하고요. 마트에 가기 전에도 잠깐 들러 앉았다 나오던 곳. 우리 집 옆, 도서관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시작할 무렵, 과감히 '탈 서울'을 결정했어요. 목적지를 둔 것은 아니었지만, 다녀보고 좋았던 곳으로 정했습니다. 아들 삼 형제 키우기 좋은 곳, 자연과 가까운 곳, 그리고 그중에서 도서관과 가까운 단지를 고르고 이사를 했어요. 10여 년을 한 곳에서 잘 살았습니다. 



워킹맘으로 아이를 키우는 데 주저함이 없었어요. 당연히 일하는 엄마였고, 다행히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늘 가까이 계셨지요. 학원이 없어도 도서관이 있으면 된다는 매우 단순한 신념도 있었습니다. '나는 아이들을 도서관에서 키우리라.' 그때는 정말 책 육아가 유행일 때였어요. 



매일은 아니더라도, 시간이 나면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에 자주 갔습니다. 공원이 바로 옆이었기에, 뛰놀다 가고요. (땀 식히러), 도서관에 있다가 공원으로 나오고요.(치킨 먹으러요.) 도서관에서 아이들을 키우려 나름, 무진장 애쓴 기억이 납니다. 



도서관 어린이실에 가면 인기 있는 책들은 정해져 있어요. 주로 '학습만화'입니다. 학습이 들어가긴 하나 만화에 치우쳐진 그런 책들이요. 'Why'시리즈, '마법 천자문', '수학대전', '수학 도둑'. '내일은 발명왕' 등등의 책들이 기억이 나는데요. 함께 도서관에 가겠다고 하는 날은 그런 만화를 보기 위함이었어요. 알고 있었지요. 만화라도 좋으니 책으로 몰입하는 경험이 중요하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한 보따리씩 빌려오던 책은 주로 창작동화였어요. 남자아이들이라 그런지, 명작동화 같은 책에는 관심이 적어 보였습니다. 그보다는 각 출판사들에서 나오는 '창작 시리즈'를 선호했어요. 외국 작가들의 책도 많았고요. 국내 작가들의 좋은 책도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OOO 수상작' 같은 책들도 읽히기 위해 재빠르게 움직였던 엄마였네요. 



집에도 전집을 들여 읽혔습니다. 물론 지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아요. 조카들에게 나누어 주고, 이웃에게 선물하면서 정리했어요.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가지고 있는 시리즈가 있어요. 시공 주니어사의 '네버랜드 클래식'입니다. 아이들은 거의 안 보고요. 엄마인 제가 가끔 꺼내봅니다. 



돌이켜보면 아이들의 독서 취향을 만들기 위해 많이 애쓴 것 같아요. 물론 부질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념을 학습하는 일은 어느 나이에 도달한 인간에게는 매우 중요하지만, 아이들은 정해진 목적지를 두지 않고 이야기에 몰입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들에게 독서란 아직 인위적 성과가 아니라, 물고기의 물과 같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철학은 날씨를 바꾼다, 서동욱, p103> 



아이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빌려 온 책들은 사실, 엄마의 마음에 들었던 목록일 거예요. 수동적인 독서가 되고 있었음을 이제는 알 것 같아요. 물론 그때는 최선이었지만요. 지금 아이들의 독서 목록은 잘 모릅니다. 어떤 책을 읽는지, 읽고는 있는지, 가끔 책상 위에 못 보던 책이 놓여 있긴 하더라고요. 



하지만, 

인위적 성과는 아니더라도, 환경은 만들었다 생각합니다. 책을 가까이하고, 중요하게 여기며. 좋은 도구임을 알았을 거라 생각해요. 비록 엄마의 책 무더기를 어떤 녀석은 반가워했고, 어떤 녀석은 시큰둥했지만, 그럼에도 그 책들을 부담스러워하거나, 짐으로 여기지는 않았음을 압니다. 정말 다행이지요. 








오랜만에 가 본 도서관은 많이 변해있었어요. 


자그마했던 크립톤 화분은 시간이 흐른 만큼 어느새 무성하게 자라 있었고요.



아이들에게 약속의 시간을 가져다준 매점은 단순한 휴게실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도서관 매점에서 먹던 라면이 얼마나 맛있었는지, 이곳에서 하나씩 챙겨 먹던 바나나맛 우유도 볼 수 없어요. 대신 단정한 그림 몇 점과 테이블이 전부였어요. 아쉬웠습니다. 



가족이 오면 둘러앉을 수 있었던 열람실의 커다란 테이블도 모두 치워졌어요. 대신 좁은 테이블이 창가로 길게 놓이고 모두 일인 좌석이 되었네요. 혼자 와서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아졌단 의미일까요? 그만큼 가족 단위로는 잘 안 온다는 걸까요? 



어르신들을 위한 소파 자리는 많이 생겼습니다. 신문, 잡지, 큰 글자 책 등이 가까이 배치되어 있었어요. 돋보기와 독서대도 잘 갖춰져 있었습니다. 



세상이 변하듯, 도서관의 쓰임도 많이 달라집니다. 학령기 자녀를 둔 주민이 많이 빠져나간 곳은 보다 나이 많은 주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어요. 실제로 아이들이 졸업한 초, 중학교들의 전교생 인원이 많이 줄었다 합니다. 새로 생긴, 신도시, 학군지 등으로 이사를 갔기 때문이에요. 그다지 새로운 현상도 아닙니다. 



도서관을 나서며 생각했습니다. 

'이곳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나!'

만약 도서관이 가까이 없었다면, 열혈엄마는 무슨 수든 냈을 거예요. 아마도요. 분명히. 

그리고, 이젠 제가 가기에 안성맞춤인 도서관이 되었으니, 다시 방문한 이곳에서 의외로 편안함을 느꼈답니다. 조금 멀리 떨어져 있지만, 다시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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