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자전적 소설
태평양을 막는 제방
마르그리트 뒤라스
윤진 옮김
민음사
아! 당신 같은 종류의 사람들은 희망이 뭔지 알기나 할까요. 희망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절대 알지 못하죠. 그저 야망뿐이고, 실패를 모르는 사람들이니까요. 내 대답은 이겁니다. “이번엔 제방이 버텨 줄지 모른다는 희망마저 없다면, 차라리 딸은 사창가에 줘 버리고 아들은 빨리 떠나도록 몰아낸 뒤에 캄 토지국 관리 셋을 죽이게 하는 편이 낫죠.” 당신이 내 입장이 되어 봐요. 다가오는 해에 만일 내가 이 희망조차 가질 수 없다면, 다시 한번 실패할지 모른다는 전망마저 없으면 당신들을 죽이라고 시키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남겠습니까? <태평양의 제방, p.301>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태평양을 막는 제방〉은 자전적 색채가 짙은 소설이다. 식민지 인도차이나를 배경으로, 가난과 부조리 속에서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존엄과 욕망, 좌절을 그린다. 작품은 단순한 서사가 아니라, 식민주의 사회의 구조적 폭력과 개인의 생존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식민지 인도차이나로 이주한 가난한 가족의 서사는 해피엔딩일 수 없다. 바다를 막기 위한 제방 쌓기는 시도 단계에서 무너진다. 인간이 바다를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제방의 모래에 구멍을 내는 게들 조차 막을 수 없다.
15년을 버틴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엄마와 그 곁에서 권태로운 일상과 탈출구만 찾으려는 남매, 이들에게 구원이 될 듯한 상류층 사람들, 개인의 욕망과 좌절이 뒤섞이는 장면은 약간의 변화만 가지고 반복된다. 반복적인 묘사와 발전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읽는 내내 답답함을 가져온다.
작가는 '원래 삶은 그런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막으려 애쓸수록 더 선명해지는 것, 넘쳐흐르는 삶.
그럼에도 인간은 제방을 쌓으려 애쓰고,
권태와 무기력한 삶에서 탈출하기 위한 끝없는 시도를 이어간다.
작가의 노년의 작품 <연인>이 익숙했던지라, 읽는 내내, <연인>의 영화 장면이 연상된다. 비슷한 배경의 소설을 30대에도 쓰고, 70대에도 썼다니, 아마도 작가에게는 평생에 걸쳐 풀고 싶은 이야기였을 것. 식민주의 사회의 구조적 폭력과 개인의 생존, 그 안에 스며든 인종적 차별과 계층적 불평등.
불편한 읽기였지만, 기억에 남을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