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은 주로 양립되지만 그 타협점을 찾아 꿈을 이루고 싶어 한다. 다행히 나의 꿈들은 몽실몽실 구름처럼 어렴풋하기에 까치발을 들고 매만져 끝까지 나만의 하늘에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음악가는 타고난 재능이 필수 불가결하지만 미술가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하며 작가 생활을 한지가 십 년이 훌쩍 넘었다. 학창 시절, 적성검사를 하면 ‘이과’ 성향이었고, 심리학 수업에서 해본 MBTI 검사 결과는 ‘INTJ, 과학자 타입’인 내가 적절한 인생의 선택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저 어릴 적 막연히 멋지게 들렸던 ‘디자이너’가 되길 꿈꿨기 때문에 예고와 대학에서 디자이너 교육을 받았고, 어른이 되어선 무언가 자유로운 삶을 꿈꾸어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다. 오트쿠튀르 처럼 고급스럽고 내게 딱 맞춘 옷이 아니라 늘 아득하고도 즉흥적인 선택을 했기 때문에 남들과는 조금 다르고, 여전히 조금은 느릿하게 살아가는 것 같다.
이제 인생의 절반쯤 살아왔을까? 언젠가 삶의 종착지에 다다랐을 때, 늘 설렘을 잃지 않고 우아하게 나이 들어 있길 바란다. 다시 말하지만, 타고나길 말주변도 신통치 못하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공감 능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내향적인 성격 탓에 정확지 않은 문장을 내뱉을 용기가 없어 입 안에 맴돌게 할 뿐이다. 그런 내가 주제넘게 여러 가지 언어를 자유로이 구사하는 이들을 동경한다. 예순이 될 때 4개 국어를 구사하며 뉴욕, 파리, 밀라노 등의 도시에서 유유자적하게 긴 여행을 하는 것이 꿈이다. 여전히 기본 영어문장도 버퍼링 가득한 상태지만 60까진 아직 시간이 있으니깐!
그런 막연한 꿈은 바쁜 마감이나 평범한 일상에 제쳐두기 십상이나, 심심한 틈새를 타고 가끔 기웃거리며 여전히 내 눈치를 살핀다. 요 며칠은 어순이 같으면 조금이나마 더 쉽겠지 하고 괜스레 기초 일본어를 펼쳤다. 이제까진 뻣뻣한 한국인인 내게 다소 과장되거나 그 특유의 감성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일본 콘텐츠를 찾아보지 않았는데, 아는 몇 개의 단어가 들린다는 재미에 참고 보다가 ‘타카하시 잇세이’라는 나와 동갑인 배우의 목소리에 빠져들었다. 겨우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는 뗀 수준이지만 속사포처럼 흐르는 중저음의 문장들이 내 귀에 매력 있게 들리기 시작한다. 아… 자유로이 여행할 만큼의 일본어도 배우고 싶다는 꿈의 변조가 진행된다. 프랑스어 1년짜리를 등록한 인강은 시작도 못하고 한 달이 흘러버렸고, 직업상 영어공부가 시급 할 텐데 뜬구름 같은 것만 좇는다.
그렇지만 동경(憧憬)하는 것이 있다면 언젠가 東京의 거리에서 유창하진 못하더라도 그 공간의 문화를 담은 언어를 구사하는 나도 있지 않을까? 작심삼일을 반복하는 새해의 첫머리에 끄적이며 일기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