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당신이 읽는 동안 | 헤라르트 윙어르' 책 제목과 저자의 하단 1/3이 잘려 가려진 이유가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이 이 책의 첫인상이다. 푸르고 짙은 청록빛 북커버는 심해의 미지의 영역처럼 느껴진다. 과연 우리가 읽은 동안 무슨 일들이 일어날까?
p.57의 "읽기는 자신만의 고요함을 창조한다... 소음 한가운데서도 무언가를 몰입해서 읽고 있는 사람에게는 몇 번이나 말을 걸어야 답이 돌아온다.”
난 멀티태스킹이 잘 되지 않는 사람이라 어린 시절엔 특히 몰입의 고요함 속에 빠지곤 했다. 반려견을 기르게 된 이후에는 새벽까지도 청각과 시각의 일부분이 일정 부분은 책임이란 영역에 곤두서 완전한 몰입을 하긴 어렵지만, 사춘기 때 책에 빠져있을 때나, 회사에서 중요한 프로젝트를 할 때, 지금은 일러스트레이션 마감에 임박해 있을 땐 시간이 지나는지도 모르고 ‘방음 처리된 봉투’ 속에 들어가곤 한다. 작가가 말하는 '고요함'은 단순히 조용한 환경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몰입 대상과 깊이 연결될 때 마법처럼 생겨나는 내적 공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p.115에서 다룬 ‘색(color)’의 개념은 인상 깊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색이 아니라, 글꼴의 두께, 공간, 형태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시각적 톤’이라는 개념은 어떤 디자인 작업에도 그대로 확장할 수 있다. p.155의 공간 개념 또한 마찬가지이다. 공간 디자인도, 일러스트레이션도 타이포그래피와 같이 여백의 공간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무거움과 가벼움, 기능적이며 심미적인 상관관계를 사람의 눈으로 판단하고 선택해서 결정한다. p157의 얀 치홀트 '그루페 33'(Grouppe 33) 카탈로그처럼 공간을 인식하며 디자인한 페이지를 보는 순간, 나는 '읽기'모드에서 '보기'모드로 전환을 한다.
물론 타이포그래피의 전문용어들에 대한 지식이 없어 흘려 읽은 부분도 많았지만, '당신이 읽는 동안'은 내가 상상했던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책이 아니라 '읽기'와 '보기'라는 행위가 어떻게 우리의 인식 속에서 작동하는가에 대한 깊은 파고듬이며, 연구이다.
유지원 작가님이 훌륭한 타이프 페이스라 추천해 주신 스위프트 Swift 서체가 p.118 칼새의 하강하는 모습을 모티프로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나는 스위프트체를 봤을 때 단단하고 정적인 느낌을 받았는데, " 방향 전환이나 궤도를 예측하기 힘든 새들의 빠른 움직임을 글꼴에 반영"했다는 것이 매우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실험적인 서체도 처음에 받아들이기엔 낯설어도 시간과 함께 익숙해지면 무던한 서체로 변모하게 되고, 주관적 견해나 취향에 따라 서체의 해석과 느낌이 저마다의 경험과 속해 있는 문화에 따라 가지각색이겠구나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났다.
p.53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만약 글꼴들이 효과적으로 기능한다면, 독자들은 그 글꼴을 신뢰하기 시작하고 다시 보기를 원한다.”
나는 그림을 그리거나 디자인을 할 때 같은 것을 반복하면 금세 지루해지는 편이다. 따라서 다양성을 추구하고, 시각적으로 새롭고 인상적인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해 왔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나만의 특징을 찾아 익숙한 선과 색감을 반복하기도 한다. 무한한 개성이란 존재할 수 없다. 잘은 모르지만 타이포그래피 디자인도 유사한 점이 있지 않을까? 신뢰를 얻은 새로운 서체는 독자가 무의식적으로 다시 찾게 되는 안정감을 전달한다. 책 속의 글자들은 무의식적으로 읽는 행위를 통해, 그림 또한 보는 이의 무의식 속에 스며들 테니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