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dio+Museum=Audeum

정음(正音): 소리의 여정

by HH

오래 기대했던 오디움 관람 예약에 드디어 성공했다. 생각날 때마다 가끔 홈페이지 들어갔을 때 늘 예약마감이었는데, 트레바리 멤버 한분이 보름에 한번 예약이 열리는 화요일 오후 2시 정각에 들어가면 가능하다는 팁을 알려주셔, 알람을 해 두고 정각에 클릭! 동시접속자가 많아 대기화면에서 긴장을 했지만 다행히 오르겔 연주까지 포함해서 들을 수 있는 10시에 예약이 가능했다.


쿠마 켄고 [隈研吾, Kuma Kengo]의 건축물을 서울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가고 싶었던 오디움은 기대했던 이상의 전율이 흐르는 2시간의 경험이었다. 미술관 전시는 잘 이해하지 못하는 현대미술조차도 도슨트 없이 내가 좋은 작품에 찬찬히 시간을 두고, 마음이 가지 않는 작품은 스치듯 지나가며 감상하는 것을 선호한다. 개인적으로 어떤 작품이든 어떤 공간에서 감상하는지가 더 중요하기에 Frieze서울처럼 아트페어에 대한 감동이 아주 작은 사람이기도 하다.


오디움은 자유관람이 불가능함에도 도슨트 투어의 110분의 흥미로운 가이드와 찌릿하게 감동적인 청음으로 진행된 전시관람은 시각, 후각, 청각까지 만족을 시킨다. 바람만 불어도 까르르 웃음이 나던 소녀에서 세상의 많은 것들이 시시해진 40대 중년으로 변해버린 내게 이런 행복한 경험을 선사하다니, 새삼스레 컬렉터이자 기업가에게 감사함이 생길 정도이다.

쿠마 켄고는 오디움을 하나의 숲과 같은 건축물로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실제로 오디움 창밖의 푸르른 초록이 가득한데, 2만 개가 넘는 알루미늄 파이프를 통해 숲 속에서 비추는 햇살을 고안하고 구현한 것은 도시의 색다른 숲처럼 느껴졌다. 건축가는 랜덤하게 두께나 길이를 달리 배열하여 자연의 무작위성에 도달하고 싶었다고 했는데, 날씨, 시간 계절에 따라 변하는 빛의 변화를 표현한 알루미늄 파이프들이 각기 다른 길이로 리드미컬해서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며 건물 주위를 걸으면 마치 소리를 시각화하여 관람객에게 쭉 뻗어 전달하는 것 같았다.

전면 파사드에는 출입구가 없어 알루미늄 숲에 뚫린 아치 속 긴 계단 아래로 출입구를 찾아 내려가는 풍경이 재미나다. 쿠마겐고는 계곡과 같은 계단을 통해 랜드스케이프와 건축물의 관계성을 구현했다고 한다.

외부 계단의 외측 벽은 알루미늄 숲의 경량감과 대비되는 묵직하고 거친 석재를 사용했다. 10cm 이상의 석재를 ‘혹두기 / frosted work’라는 마감으로 돌계곡 같은 공간을 표현했다고 한다.


건축가가 계획한 환상적인 시퀀스를 경험하며 건물 내부로 들어서면, 알래스카에서 공수해 온 따뜻하고 강한 향의 편백나무 목재를 도입해 시각에 이어 후각을 깨운다. 로비에서 안내에 따라 전시관람 예약 QR코드를 찍고, 전시 시작 전 쿠마겐고의 건축 디자인 영상 보고 나면, 드디어 청각이 두근거릴 시간인가?


쿠마겐고의 영상은 오디움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다시 볼 수 있다.

Designing Audeum (Part 1)|Architect Kengo Kuma

https://youtu.be/yGRFrZ81RHw?si=u2g9BC6shaY6IL5k


또한 BI와 사이니지를 담당한 하라켄야의 스피커의 형상으로 한 오디움의 로고가 Heima 헤이마가 연주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와 함께 살아있는 듯 움직이는 것이 재미나다.

https://youtu.be/1LX5yxBYxJs?si=V3d_AriKqMrdCkGH


Designing Audeum (Part 2)|Designer Kenya Hara

https://youtu.be/vropGRLktkU?si=OecSsGSgAk3HyPNC


쿠마켄고 건축의 특색처럼 선이 강조된 디테일이 많은데, 알루미늄 파이프와 관람실 벽면의 우드 드레이프 방식의 나무 마감, B2 라운지 감상실의 패브릭이 온화하게 떨어지는 다양한 소재의 세로 선이 인상적이다. 내겐 마지막 감상실은 신비로운 화이트 나무가 천장을 타고 올라가는 것 같았는데, 건축가는 꽃의 화려하고 드라마틱한 공간으로 완성되었다고 표현했다.




도슨트의 해박함과 유창한 설명이 더해진 청각의 즐거움이 꽉 채워지는 정음(正音): 소리의 여정 전시에선 '좋은 소리'란 무엇인가를 탐구하고, '좋은 소리'에 대한 하나의 정의로 '하이파이 (High fidelity)'를 제시한다. 하이파이 사운드 시스템에서 실제와 유사한 고품질의 구현을 체험할 수 있다.


3F | 전시실 1은 거대했던 장비를 축소하여 하이파이 시스템을 가정에 도입한 제이비엘 (JBL), 매킨토시 (Mclntosh), 마란츠 (Marantz) 등의 브랜드 제품을 선보인다. 도슨트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LP가 long-playing record 혹은 long play에서 왔음을 설명하고 LP를 통해 가정에서 음악감상의 시대가 왔음을 알렸다. 스피커는 20% 전자장치+80% 악기와 유사성이 있다고 설명하셨는데, 악기의 아름다움 만큼 우드 소재의 1950-60년대의 빈티지 스피커들도 꽤나 아름다웠다.

랜싱 매뉴팩쳐링 컴퍼니 (Lansing Manufacturing Company) Iconic

1940년대는 미국 웨스턴 일렉트릭과 독일 클랑필름 두 회사가 미국과 유럽시장을 장악했다고 했다. 두 회사의 제품의 품질은 뛰어났음에도 웨스턴 일렉트릭은 반독점법에 의해 사라졌고, 독일의 클랑필름은 사회주의 체제를 선전하는데 사용된 전범 기업이라 현재 남아있는 스피커를 더욱 구하기 어렵게 됐다고 했다. 같은 음악을 두 회사의 제품을 통해 비교해서 들어보는 시간도 진행된다.


2F


3층에서 2층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그 시선을 따라 따스한 목재와 오전 햇살과 풍성하게 조율해 주는 그림자가 가득한 곳에는 에디슨의 축음기들이 있다. 마치 헬륨가스를 들이마시고 우스꽝스러운 떨리는 보컬로 노래하는 듯했지만, 작은 몸집이지만 아름다운 형태의 확성장치로 울려 퍼지는 소리의 크기가 꽤나 인상적이다. 여러 곡을 선택해 들을 수 있다는 주크박스는 안타깝게 딱 맞는 코인을 구비하지 못해 듣지 못했지만, 어떤 가구의 형태보다 수려하다. 120년 전 5센트는 곧 공수하여 추후엔 관람객에게 들려줄 수 있을 거라 희망한다고 하셨다.


아래의 금속 재질의 대형 혼으로 평소 관람엔 My Way를 들려주는데 지난주부턴 K-Pop Demon Hunters의 Golden을 들려주신다고 해서 재미난 경험이었다.

A Western Electric 16a horn from 1930

아래의 소형 블랙 스피커와 베트남 모자 같은 스피커는 시카고 박람회에 첫 소개된 제품으로 당시 축음기 소리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획기적이고,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훌륭한 메커니즘을 가진 기념비 같은 제품이라고 했다.


Western Electric Horn Speakers 12 and 13-A는 2시간의 관람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300피스가 넘는 원목으로 제작된 스피커다. 첫 유성영화인 재즈 싱어 The Jazz Singer (1927)에 사용되었는데, 대륙을 건너오고, 100년 즈음이 지나도록 한국의 다채로운 온도와 습도의 변화에도 틀어짐이나 크랙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아 놀랍다고 하셨다.

Western Electric Horn Speakers 12 and 13-A




1F 수집과 기록


오디움과는 생소한 컬렉션이었으나 라이카는 언제나 아름답다. 짧은 시간을 할애하여 휘리릭 감상한 공간이다.


1F 오르겔 | The Music Box


독일어 발음인 오르겔이 올바른 표현이고, 영미권에서는 Music Box라 불린다. 재생매체가 핀 실린더인데, 실린더가 회전하며 뾰족한 스틸 티스와 접촉하면 소리를 내는 원리로 잘 관리만 한다면 500년도 너끈하게 유지할 수 있다고 하셨다. 다만 실린더 교체가 어려워 같은 곡을 무한히 반복재생을 해야 해, 디스크를 교체해서 들을 수 있는 Regina사의 제품이 인기였다고 한다. 1889년의 슈베르트 세레나데를 들려주셨는데 136년 전 디스크라니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코인으로 연주되는 시카고의 자동연주 피아노는 웃음과 시선을 끌도록 흥이 넘치는 연주를 했다.


B2 라운지


화려하고 화사한 화이트 패브릭 공간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오르겔, 춤추는 오르간: Th. Mortier - Dance Organ (1924, 벨기에)을 중앙에 배치하고 양 옆에 웨스턴 일렉트릭의 미러포닉 M1 스피커가 좌우로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벽면 가득 소장가치가 있는 희소성이 있는 LP들이 채워진 공간에서 M1 스피커로 음악 감상을 하며 전시가 마무리된다.

The Dancing Organ: Th. Mortier – Dance Organ (1924, Belgium)




2시간 가까이 다양한 스피커로 음악 감상을 할 수 있어 감동적인 시간이었다. 리스트를 다 기억하진 못 해도

비틀즈 | yesterday, Halie Loren | For Sentimental Reasons, 김광석 | 서른 즈음에 , 백지영 | 무시로, 케데헌 | 골든, 웅산 |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지하 2층 라운지의 미러포닉 M1으론 Macbeth: Overture, O Holy Night, Aldo Romano | Caruso, When I fall in love 등 4곡을 들려주셨다.

좀 더 여유로운 시각과 마음으로 다시 한번 방문하고 싶은 서울의 소중한 공간이다. 건물 외관을 장식한 알루미늄 파이프로 화장실 인테리어까지 일관성 있고 디테일하게 디자인했다던데, 다음엔 화장실 디자인까지도 체크해 볼 포인트다.


p.s.

마지막으론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오르겔이라는데, 오전 10시에만 감상할 수 있는 '춤추는 오르간' 영상

The Dancing Organ: Th. Mortier – Dance Organ (1924, Belgi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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