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를 발라주던 사람

by heelight
요즘 홀로 사는 노인들 중에는
메인 음식은 포장해 가고, 반찬으로 밥을 먹고 간다더라.


처음 그 얘길 들었을 땐, 이상하게 그이가 먼저 떠올랐다.


비가 얇게 내리던 수요일 오전이었다.
젖은 골목이 어둑했고, 고등어 굽는 냄새가 식당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나는 우산을 접고 잠시 서서 생각에 잠겼다.


남편을 제주에서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뒤,
나는 혼자 그의 귤밭을 지켰다.
한 해, 두 해.
해가 거듭될수록 힘에 부쳤다.
처음엔 조금 보고 싶다 했는데,
실은 많이 생각났다.


설상가상으로 5년 전 수술했던 무릎이 다시 아파왔다.
밭일은 손이 아니라 무릎으로 버티는 일이었다.
딸과 사위는 서울로 올라오라 했다.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귤밭과 집을 정리했다.


귤 상자 냄새, 흙 묻은 장갑,
창고 문을 닫던 마지막 날의 바람.
그걸 뒤로하고 딸네 근처 작은 아파트로 올라왔다.


처음엔 한 달에 두 번쯤 손주들이 찾아왔다.
아이들 웃음이 빠져나가고 나면
집은 갑자기 넓어졌다.


반년쯤 지나자 방문은 뜸해졌다.
중학교, 학원, 시험.
이유는 늘 많았다.
나는 “괜찮다”라고 말했고,
전화를 먼저 끊었다.


남편이 있을 땐 하루 세끼를 꼭 챙겨 먹었다.
그이는 늘 내 밥그릇을 먼저 채웠다.


“밥이 약이주게.”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숟가락을 들었다.
그이가 떠난 뒤로는 두 끼,
서울에 와서는 한 끼도 허다했다.
누가 보지 않으면 나는 자주 나를 굶겼다.


고등어 냄새가 다시 코끝을 스쳤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식당 안은 따뜻해 보였다.
며칠 전부터 장을 보러 나갔다 돌아오는 길마다
이 냄새가 나를 붙들었다.
몇 번이나 그냥 지나쳤다.
혼자 먹기엔 괜히 사치 같았다.


그이는 고등어를 참 좋아했고,
가시를 발라 내 접시에 살을 올려주는 게 습관이던 사람이었다.


비가 조금 더 굵어졌다.
나는 문을 밀고 들어갔다.


“고등어요.”


노릇하게 구워진 고등어 한 마리가 식탁 위에 놓였다.
김이 피어올랐다.
순간 제주 바다가 스쳤다.


젓가락을 들어 뼈를 바르려는 순간,
나는 멈췄다.


가시는 그대로였다.
그이는 늘 말없이 발라주었으니까.


밥 한 숟가락.
반찬 한 젓가락.
또 밥 한 숟가락.


고등어는 거의 줄지 않았다.


“포장해 주세요.”


나는 생선을 용기에 담았다.
뚜껑을 덮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내 외로움도 거기에 같이 담겼다.


비는 그칠 기미가 없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봉투가 조금 따뜻했다.


그 온기가, 오늘은 그이의 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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