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물건에 숨겨진 뒷이야기
상자 안에는 물건 말고도, 한 시절이 들어 있었다.
하루에도 수백 개의 택배를 배송한다.
박스의 크기도, 안에 든 물건도 제각각이다.
그 많은 물건들 사이에서도 오래 마음에 남는 것들이 있다.
통기타를 배송하던 날, 주문자는 칠십 대쯤 되어 보이는 할머니였다.
문을 열고 나온 허리는 조금 굽어 있었고, 상자를 받아 드는 손등에는 힘줄이 얇게 올라와 있었다.
손마디는 굵어져 있었는데, 기타 상자를 안을 때만큼은 이상하리만치 조심스러웠다.
그 모습을 보고 돌아서는데 문득 생각이 들었다.
저 기타는, 아마 예전 시간을 한 번 다시 만져보려고 주문한 게 아닐까 싶었다.
스무 살 무렵, 음악이 좋아 레코드 가게 앞에 오래 서 있던 날들이 있었다.
꼭 사고 싶은 음반이 있어서가 아니라, 문이 열릴 때마다 밖으로 새어 나오는 노래를 듣고 싶어서.
수업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괜히 먼 길로 돌아 그 가게 앞을 지나곤 했다.
유리창 너머로 돌아가는 검은 레코드판, 바늘이 닿을 때의 작은 잡음, 그 뒤에 천천히 따라 나오던 통기타 소리.
그 소리만은 이상하게 다른 것보다 더 가까이 들어왔다.
한 음 한 음이 가슴에 남아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오래 귓가를 맴돌았다.
그러던 어느 점심시간, 학교 운동장 한쪽에서 한 남자가 기타를 치고 있었다.
친구들 웃음소리와 먼지 섞인 바람 사이로 낯익은 전주가 들려왔다.
레코드 가게 앞에서 수도 없이 들었던 바로 그 노래였다.
멀리서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노래를 흉내 내듯 치는 게 아니라, 자기 안에 있던 것을 꺼내듯 줄을 짚고 있었다.
햇빛이 손등 위에 얹혀 있고, 손끝이 움직일 때마다 오래 좋아하던 노래가 전혀 다른 얼굴로 다시 시작됐다.
그때부터였다.
노래를 좋아한 건지, 그 노래를 치고 있던 사람을 좋아하게 된 건지 잘 구분되지 않기 시작한 게.
며칠 뒤 다시 찾은 레코드 가게.
늘 그렇듯 오래 머물다 돌아서려던 순간, 그 남자를 또 만났다.
처음 들은 목소리는 담담했다.
“아, 너 xx대학교 다니지?”
별것 아닌 말이었는데도 오래 남았다.
그날 이후 레코드 가게 앞에 설 때마다 노래를 기다린 건지, 그 사람을 기다린 건지 잘 몰랐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둘 사이에 뭔가가 시작된 건.
통기타를 배송한 뒤 들어간 다음 집에서, 이번에는 취급주의 스티커가 붙은 유리병 몇 개를 건넸다.
문을 열어준 사람은 여든쯤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였다.
현관 불빛 아래 선 얼굴에는 잔주름이 깊었고, 문 손잡이를 쥔 손은 마디마디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상자를 받아 들 때 잠깐 허리를 바로 세우는 모습이 어색해 보여, 나는 괜히 박스를 더 조심해 건넸다.
“할아버지, 웬 유리병을 이렇게 몇 개나 주문하셨어요?”
“아.. 그거? 꽃 좀 꽂아 놓으려고..”
할아버지의 시선 끝에는 노란 프리지아 한 다발이 있었다.
봄의 색이 무슨 색이냐고 물으면 노란색이라고 말하던 사람.
처음 만난 건 소개팅 자리였다.
딱히 마음은 없었지만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나간 날.
그날은 버스까지 유난히 막혀 약속 시간보다 이십 분이나 늦었다.
정류장에서 내려 거의 뛰다시피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런데 카페 문을 열고 안을 둘러보는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사람이 아니라 꽃이었다.
테이블 위 작은 유리병, 그 안에 꽂혀 있던 노란 프리지아 몇 줄기, 그리고 그 향을 가까이 맡고 있던 그녀의 옆얼굴.
막 뛰어와 거칠던 숨이 그 장면 앞에서 잠깐 멈췄다.
“혹시.. xx 맞으시죠? 늦어서 죄송해요.. 버스가 많이 막혀서..”
“아니에요.. 괜찮아요.. 천천히 오셔도 되는데.. 뛰어 오셨나 봐요?”
그녀는 다그치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 한마디에 숨이 먼저 가라앉았다.
그날 이후로는 프리지아만 봐도 그 사람이 먼저 떠오를 것 같았다.
나는 자꾸만 그때의 시작들이 떠올랐다.
한 목소리 앞에서 멈추던 순간,
꽃 앞에서 숨을 고르던 때.
배송을 마치고 돌아서는 길,
닫힌 문 앞에서 발이 한 번 멈춘다.
문은 이미 닫혔는데,
방금 내려놓은 상자 안에
아직 다 지나가지 못한 시간이
가만히 들어 있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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