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표를 갈아 다는
아저씨

by heelight

비가 밤새 지나간 아침이었다.


가게 앞 보도블록이 아직 젖어 있었고, 젖은 먼지 냄새에 샴푸 향이 얇게 섞여 올라왔다. 처마 끝에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질 때마다 유리문에 달린 방울이 한 번씩 울렸다. 문틈 사이로 드라이기 예열 소리가 낮게 돌았다. 뜨겁게 달아오르기 전, 기계가 숨을 고르는 소리였다.


나는 유리문 손잡이에 걸린 이름표를 먼저 봤다.
검은 글씨로 세로 “영업중”, 그 아래 빨간 OPEN. 하얀 플라스틱 판 모서리는 군데군데 긁혀 있었고, 구멍 주변은 얇게 닳아 있었다. 오래 뒤집고 걸고, 또 뒤집고 걸었다는 흔적이었다. 뒤집히면 반대쪽엔 “영업 종료”가 나온다고 했다. 시작과 끝이 한 판에 붙어, 매일 같은 자리에서 돌아가고 있었다.


“영업중”이라는 말이 새것처럼 보이지 않는 게 이상했다.
영업을 알리는 글자보다, 누군가의 손버릇이 먼저 보였다.




이용원 문을 열기 전, 노인은 늘 제일 먼저 도착한다. 유리문 손잡이에 걸린 이름표를 한 번 만져 본다. 아직은 “영업 종료” 쪽이 바깥을 향해 있다. 노인은 그 이름표를 고리에서 잠깐 빼서 손바닥에 올려놓고, 카운터 쪽 못에 걸어 둔다. 문은 열어 두되, 열어 둔 채로 열지 않는 사람처럼.


그다음부터는 준비가 시작된다. 빗자루로 가게 앞을 한 번 민다. 물기 묻은 바닥을 쓸면 모래가 눌려 잘 안 움직이는데도, 노인은 꼭 한 번은 턱을 넘어 끝까지 모아낸다. 쓰레받기에 담아 들고 들어오며 신발을 문지방에 두 번 턴다. 들어와서는 거울을 닦고, 수건을 접고, 의자 팔걸이를 손바닥으로 한 번 훑는다. 손님이 앉기 전의 자리를, 앉은 뒤처럼 반듯하게 만들어 놓는다.


카운터 옆에는 작은 못 하나가 박혀 있고, 같은 이름표들이 주르륵 걸려 있다. 흰빛이 선명한 것도 있고, 모서리가 닳아 둥글어진 것도 있고, 구멍 주변이 더 얇게 깎인 것도 있다. 유리문고리에 매달렸다 떼어지는 동안 구멍이 닳아 끊어질까 봐, 걸어 둔 예비들처럼 보였다. 맨 위에 걸린 것은 유독 손때가 고르게 배어 있었다. 플라스틱인데, 시간이 얇아진 것처럼 보였다. 노인은 그 앞에서 잠깐 손을 멈춘다. 말린 모서리를 손톱으로 한 번 펴서, 그 이름표를 다시 맨 위에 얌전히 올려 둔다.


그리고서야 노인은 그중에서 아무거나 집지 않는다. 늘 같은 걸 고른다. 마치 그 하나를 ‘오늘’로 정해 둔 사람처럼. 이름표를 들고 유리문 쪽으로 천천히 걷는다. 유리문 앞에서 반 박자 멈춘다. 손이 고리를 찾다 허공을 한 번 더듬고, 그제야 이름표를 뒤집어 건다. 플라스틱이 유리에 살짝 닿으며 작은 소리가 난다. 그 소리가 나면, 가게는 진짜로 “열린다.”


내가 물었다.
“왜 매일 바꾸세요?”


노인은 웃었다. 짧게. 웃음이 끝나자마자, 아무 일도 없던 얼굴로 돌아갔다.
대답은 없었다.


한 번 더 물어볼까 하다가, 그냥 뒀다. 노인의 손은 이미 다른 데 가 있었다. 전기포트 스위치를 누르고, 빗을 정리하고, 가위를 펼쳐 날을 확인했다. 유리문 위에서 이름표가 아주 잠깐 흔들리다가 멈췄다.




가게 안의 오전은 작고 반복적인 소리들로 채워졌다. 빗살 사이로 머리카락이 지나가며 “사각” 하고 울고, 가위가 공기를 자를 때 “짧은 숨” 같은 소리가 났다. 손님이 한 명 앉았다가 나가면, 노인은 의자를 정면으로 돌려놓고 팔걸이를 한 번 닦았다. 수건은 늘 같은 방향으로 접혀 같은 칸에 들어갔다.


어떤 동작은 자꾸 한 박자 늦게 이어졌다.
물 한 잔을 따라 컵받침에 올려두고도, 시선이 잠깐 옆으로 비었다가 돌아왔다. 계산대 서랍을 열었다가 닫을 때, 손이 서랍 손잡이를 한 번 더 만졌다.


점심 무렵, 노인은 카운터 뒤를 정리하다가 작은 메모지 하나를 꺼내 펼쳐 보았다. 읽지 않고 접어 다시 제자리에 넣는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빗을 가지런히 맞추고, 거울에 묻은 물방울을 손등으로 슥 닦아냈다.


해가 기울 때쯤, 노인은 마지막 손님의 목덜미를 정리하고 의자를 비웠다. 바닥을 한 번 쓸고, 수건을 걷고, 드라이기 코드를 말아 걸었다. 유리문 쪽으로 가 이름표를 손바닥에 올려놓는다. 이번엔 반대쪽이 위로 오게, 조용히 뒤집는다. “영업 종료.”


문을 잠그고 돌아서는 어깨가, 아침보다 조금 더 낮았다.




저녁, 노인은 혼자 집에 돌아온다.
불을 꺼도 텔레비전 소리는 끄지 못한 채로, 막걸리 잔부터 찾는다.


여보.


막걸리 한 잔 따라 놔불고
가만 앉앙 이시면,
손을 수주웁게 맞잡았던 그때 당신이
잠깐... 다시 보이는 것 같주게.

다 지나간 줄 알앙신디,
세월 속에 아직 걸려 이서.

잊어볼라 허여도
잊을수록 더 또렷허여.

조금만 더 잘해줄 걸...
당신 마음 아프게 한 것만 자꾸 남주게.

편지는 아직 못 버리쿠다.
버리민... 당신이 진짜 멀어질까 봐.

그동안 고마웡수다,
참 고마웡수다,
끝내 못헌 말만 혼자 되뇌쿠다.

하루에도
수백 번... 수천 번...
여보, 여보...
당신이 다녀가오.

수백 번... 수천 번...
당신이 다녀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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