닳아버린 마음을 안아줄 때
〈양말 하나 신으세요〉 연재 1/3
제주 골목 끝 작은 한의원에서 만난 이야기입니다.
[1부] 침(針)보다 먼저 건네는 온기
제주의 아침은 유난히 빨리 찾아옵니다.
해가 뜨기도 전에 바람이 먼저 일어나 집을 흔들고,
파도가 그 뒤를 따라오며 섬을 깨웁니다.
어떤 날의 바람은 다정한 안부가 아니라
“오늘도 어떻게든 버텨보라”는
조용한 채찍질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관광객들이 오가는 화려한 큰길을 뒤로하고,
시멘트 냄새와 귤나무 향이 섞인 골목으로 들어섭니다.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가면 마른 먼지가 살짝 일어나는,
진짜 사람들이 사는 길입니다.
제주는 이런 골목이 참 많습니다.
바람이 먼저 지나가고,
그다음에야 비로소 사람이 걷는 길.
그 길 끝에
작은 한의원 하나가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화려한 간판도, 번쩍이는 전광판도 없이
감귤 상점들 사이에 소박하게 끼어 있는
‘동백 한의원’.
이곳의 시간은
조금 다르게 흐릅니다.
닫힌 문 너머로 들리는 사정들
이 한의원은 일요일 하루만 쉽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환자를 받고,
어둠이 내려앉으면 문을 닫습니다.
하지만 퇴근 준비를 하다가도
누군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면,
저는 다시 불을 켭니다.
“원장님...
혹시 지금도 가능할까요?”
그 한마디에 담긴 망설임과 절박함을
저는 너무 많이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몸의 통증보다 먼저
사정이 말을 얻어 문을 두드릴 때,
이곳은 기꺼이 다시 환해집니다.
진료가 시작되면
늘 비슷한 얼굴들이 찾아옵니다.
농사일로 허리가 기역 자로 굽어버린 할머니,
바람 센 날이면 무릎부터 시려오는 어르신,
밤새 배달 오토바이를 타느라
손목이 차갑게 식어버린 청년.
제주 사람들은 말을 아낍니다.
처음엔 늘 “괜찮다”, “별거 아니다”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침을 맞고
몸에 온기가 돌기 시작하면,
어느새 삶의 이야기가
폭풍처럼 쏟아져 나옵니다.
몸이 아프다는 말 뒤에는
대개 삶이 아팠다는 고백이
줄줄이 매달려 있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저는
긴 위로 대신 짧은 끄덕임으로 응답합니다.
말보다 손이 먼저 나섭니다.
혈자리를 짚는 이 따뜻한 손길이
“당신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라고
조용히 말해주길 바랄 뿐입니다.
닳아버린 뒤꿈치를 발견하는 눈
진료를 하다 보면
유독 제 시선이 머무는 곳이 있습니다.
환자들의 발입니다.
침대에 누운 사람들 중에는
뒤꿈치가 하얗게 헐어버린 양말을
신고 오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형편이 어려워서일 수도,
자신을 돌볼 겨를 없이
하루를 버텨내느라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양말은 묘한 물건입니다.
내 삶이 얼마나 급했는지,
내가 나 자신에게 얼마나 무심했는지,
그 고단함이 가장 솔직하게 드러나는 곳이
바로 양말의 뒤꿈치니까요.
구멍 난 양말 사이로
거친 살결이 보일 때면,
저는 말없이 서랍을 엽니다.
그리고 포근한 새 양말 한 켤레를 꺼내
담담하게 말합니다.
“양말 하나 신으세요.”
그 말 한마디에
환자의 체온이 올라갑니다.
발이 따뜻해져서가 아니라,
마음이 덜 초라해져서일 겁니다.
사람은 몸이 아픈 것보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나”
싶어지는 순간에
더 쉽게 무너지니까요.
놀리지도 않고,
가엾게 여기 지도 않고,
그저 조용히
양말 한 켤레를 건네받을 때
사람은 다시
숨을 쉴 용기를 얻습니다.
양말이
치료가 되는 순간입니다.
따뜻함 뒤에 숨겨진 서늘한 기억
사람들은
제가 건네는 이 양말 한 켤레를
‘다정함’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하지만 모두가 아는 건 아닙니다.
제가 처음부터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제게는
아무에게도 꺼내지 못한
오래된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오랫동안
저를 차갑고, 날 선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제가 왜
약보다 ‘양말’을 먼저 건네는 사람이 되었는지,
그 이유는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말을 잃어버렸던 한 소년의 이야기로.
그리고 그 소년이 자라,
지금 이 자리에서
누군가의 뒤꿈치를 먼저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2부에서 계속됩니다]
다음 이야기:
말보다 마음이 먼저 굳어버렸던 소년,
그리고 그의 발음을 끝까지 기다려준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