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권고사직에 서명했다.
의무는 아니었지만, 남은 기간 동안 여러 온라인 회의에 참석했다.
그러나 어떤 회의에는 마음이 따라가지 않았다.
그럴 땐 책상에 엎드려, 그저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4월 14일, 퇴직 전화를 받은 날 이후 나는 2주 동안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임원급 몇몇만 내가 곧 회사를 떠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가족도, 한국 파트너사도 아무것도 몰랐다.
나는 걱정이 있으면 얼굴에 금세 드러나는 사람이다.
그 2주 동안 점심을 거의 먹지 않았다.
식욕이 사라졌고, 새벽 1시, 3시, 5시에 깨서 시계를 바라보다가 다시 눈을 감는 일이 반복됐다.
‘어떻게 아내에게 말해야 할까.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 질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5월 초, 결국 아내가 먼저 물었다.
“요즘 왜 그래? 한숨만 쉬고… 혹시 잘렸어?”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는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했다.
“그럴 수도 있지. 영원한 직장은 없잖아.
당신을 믿어. 또 취업하면 되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목구멍까지 차오른 눈물을 삼켰다.
“미안해.” 그 한마디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와 조용히 울었다.
그동안의 긴장과 체념, 그리고 아내의 짧은 위로가 뒤섞여 눈물이 흘렀다.
며칠 뒤, 아내는 아들에게도 사실을 전했다.
하지만 딸에게만큼은 끝내 말하지 않았다.
아직도 딸은 내가 여전히 회사에 다니는 줄 안다.
그 후 나는 파트너사에 그동안의 협력에 감사하다는 메일을 보냈다.
그들은 놀라며 물었다. “혹시 한국 사업이 철수하나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 말을 하며, 나 자신에게도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이제 퇴직까지 2주가 남았다.
일을 해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기였다.
그럼에도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출근했다.
렌트했던 차량을 반납하고, 위로금과 퇴직금, 연금 내역을 보며 몇 달을 버틸 수 있을지 수없이 계산했다.
계산기를 두드릴 때마다 스스로에게 말했다.
“10월 안에 취업하면 괜찮아. 그때까진 버틸 수 있을 거야.”
하루에 열 통의 전화를 받고, 열 번 이상의 미팅을 하던 내가 이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그 시간은 마치 감옥 같았다.
고요한 사무실 안에서 때로는 환청이 들려오는 듯했다.
“회의 시작하겠습니다.” “한국 시장 업데이트 부탁드립니다.”
그 익숙한 목소리들이 아직도 내 귓가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는 정말 백수가 되는구나.’
2주 후, 아무런 계획도 없는 진짜 쉼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