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까지 한 달

by 힐링다방

나는 권고사직 통보를 받는 순간, 피가 솟구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IMF도 버텼고, 이전 회사에서 두 번의 구조조정도 견뎌냈다.
그래서 이번에도 나에게 그런 일이 닥칠 거라곤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회사를 떠나는 일은 언제나 내가 결정할 일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이번 직장은 수백 번의 도전 끝에 얻은 자리였다.
수백 명과 경쟁해, 최종 6명 중 마지막 한 사람으로 선택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곳을 인생의 마지막 종착지라 생각했다.
내 모든 것을 걸었다.


나는 혼자 근무했기에 연차도 거의 쓰지 못했다.
2년 동안 여행 한 번 가지 못했다.
하루라도 내가 쉬면, 한국 사업의 모든 업무가 멈췄기 때문이다.
가끔 하루를 비워도, 오후에 연락이 오면 차를 돌려 집으로 가서 밤늦게까지 일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그것이 싫지 않았다. 나는 그 일을 진심으로 즐겼다.
마치 스타트업의 CEO처럼, 사업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나를 살아있게 했다.


그런데 권고사직 전화를 받은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꿈이 아닐까?’ 핸드폰을 확인하니, 어제 새벽 본부장의 전화 기록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현실이었다.


‘앞으로 나는 뭐 하지? 가족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지? 지출은 늘었는데, 이젠 노후를 어떻게 버티지?
재취업이 가능할까?
남들은 분명히 "능력이 없으니까 잘렸지"라고 말하겠지…’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날 하루, 나는 담배를 세 갑이나 피웠다.


며칠 뒤, 인사팀과의 면담 일정이 잡혔다.
나는 근로계약서를 다시 꺼내 법적 내용을 확인했다.
계약에는 “퇴직 시 한 달치 급여 지급”이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인사 담당자는 말했다. “한 달 후 퇴직 처리됩니다.
남은 기간은 근무를 해도, 쉬어도 괜찮습니다.”
이것이 바로 **‘가든 리브(Garden Leave)’**였다.


하지만 왜 단 한 달뿐일까.
다른 회사들은 3개월, 5개월을 퇴직기간을 주기도 하는데. 그리도 인사가 제안한 위로금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몇 차례 협의 끝에,결국 나는 몇 개월 치의 위로금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한 달. 핸드폰과 노트북, 모든 회사 자산을 반납해야 했다.

인수인계서도 준비해야 했다.

한국에는 앞으로 내 후임도 없기 때문이다.

나의 업무는 지역본부로 이관해야 했다.


본부장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본사 인사팀이 너를 그룹 내 다른 계열사, 한국 진출을 준비 중인 회사에 추천했어. 곧 연락이 갈 거야. 한번 인터뷰를 해봐.”


나는 희미한 희망을 가졌다.
‘한 달 안에 다시 취업할 수 있다면, 아내는 내가 권고사직을 당했다는 걸 모를지도 몰라.’

나는 이미 그 그룹의 한국 법인 설립을 1년 동안 도왔고, 올해 초에는 그곳의 한국 대표 면접 제안도 받았었다. 하지만 당시 본부장과의 의리를 지키고 싶어서 거절했었다.


며칠 후, 그 회사의 임원들과 미팅이 열렸다.
그들은 나를 진심으로 반겼다.
나는 물었다. “혹시 한국 대표 자리가 아직 있습니까?”

그들은 미안한 표정으로 답했다. “이미 선임이 결정되었고 곧 입사할 예정입니다.
하지만 7월 이후 예산이 확보되면 당신을 임원 후보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나는 그 말에 작은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나의 기대는 희망이었을 뿐 지금까지 그들은 공식적인 연락이 없다.

몇 달 전 난 비공식 식사자리에서 이 회사의 직원으로부터 “당신이 합류하면 기존 조직 체계가 흔들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미안합니다.”라고 들었다.


그렇게, 나의 자연스러운 이직 기회는 물거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