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1일, 나는 베이징에 도착했다.
베이징의 작은 아파트는 크지 않았지만, 처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이상하리만큼 안도감이 밀려왔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출퇴근 거리였다.
지하철로 단 5 정거장.
문을 나서 출근하고 사무실 문까지 - 딱 30분.
경기도 외곽에서 매일 왕복 3시간씩 흔들리며 살던 나에게,
그 짧은 이동시간만으로도 “내 삶이 바뀌기 시작했구나”라는 벅찬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설렘은 오래가지 않았다.
회사는 중국에서 대규모 신규 사업을 추진 중이었다.
합자사 설립, 전략 승인, 신규 공장 계획… 그 모든 일의 한가운데에 내가 있었고,
주재원 첫날부터 야근이 시작됐다.
당시에는 재택근무라는 개념도 없었다.
나는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해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왔다.
주말이면 노트북을 펴는 것이 당연해졌다.
봄에서 여름으로 계절이 바뀌는 내내,
나는 동네에 무슨 식당이 있는지도 몰랐다.
집사람에게 부탁해 신라면, 햇반, 김, 카레를 한 상자씩 받아
그걸로 허기를 채웠고, 결국 두 달 만에 10kg이 빠졌다.
몸은 무거웠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버티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지금, 중국에서 일하고 있다.”
그 한 문장이 나를 지탱했다.
이후 중국인 부하직원을 뽑은 뒤부터 조금씩 숨통이 트였다.
그 직원은 개인적인 일까지 세심하게 도와주었고,
맛집도 알려주고, 생활 정보도 알려주었다.
그때부터 비로소 ‘베이징에서의 생활’이 시작됐다.
물론 베이징의 공기는 쉽지 않았다.
일주일에 서너 번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옇고,
밤이 되면 공기청정기가 붉은 불을 켜고 미친 듯 돌아갔다.
그럼에도 나는 그 도시의 속도와 에너지에 점점 매료됐다.
계절이 한 번 바뀔 무렵,
베이징은 더 이상 낯선 도시가 아니었다.
버거웠지만 분명 나를 성장시키고 있었다.
처음에는 가족과 떨어져 있는 것이 힘들고 외로웠지만,
적응이 되고 나니 이상하리만큼 자유로웠다.
아무도 나에게 간섭하지 않았고,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루 종일 영어로 대화하는 것,
한국어를 쓸 일이 거의 없는 것,
주말에 가족과 식탁을 마주하지 못하는 것은
가끔 공허함을 극대화했다.
“내가 여기 왜 있을까?”
그 질문이 반복되기도 했다.
주재원 생활은 처음에는 2년 계약이었지만
여러 분들의 도움으로 4년까지 늘어났다.
힘들었지만 나는 그 시절을 내 커리어의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돌아보면,
내가 혼자 중국에 가지 못했다면
우리 아이가 예고를 졸업해 미대에 갈 수 있었을까?
나의 경력도 지금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갔을 것이다.
그 모든 우연들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그래서 나는 그 기회를 지금도 감사하게 기억한다.
요즘 한국에서는 반중 감정이 높지만,
나는 그곳에서 살았고, 중국 사람들과 함께 일했고,
그들의 따뜻함도, 성실함도, 인간적인 면도 직접 경험했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중국을 좋아한다.
좋아할 수밖에 없는 추억과 시간이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