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말, 나는 베이징 주재원 4년 임기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가장 크게 느껴졌던 감정은 ‘아쉬움’이었다.
나는 체질적으로 중국에서 일하는 것이 잘 맞았다.
중국인들과 함께 일하는 것도 즐거웠고, 그들의 속도감과 에너지, 직접적이고 명확한 방식이 나와 잘 맞았다.
그래서 한국으로 복귀하지 않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인 상하이에 취업해 남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차라리 다행이었을 수도 있다.
만약 그때 상하이에 채용되었다면, 2019년 말부터 시작된 코로나 때문에 나는 분명 해고를 당했을 것이고, 더 깊은 불안 속에 있었을 것이다.
중국에서 일했던 4년은 내 직장생활의 중요한 터닝포인트였다.
전기차, 핀테크, 무인 매장, 새벽배송, 초고속 물류, 공유경제…
모든 변화가 폭발적으로 일어나던 시기였고, 나는 그 현장 한복판에서 배우고 경험했다.
그리고 중국 곳곳에서 활동하던 많은 한국인 전문가들과도 인연을 쌓았다.
어떤 때는 내 베이징 집이 출장 온 한국인들의 사랑방이 되기도 했다.
그만큼 사람들의 흐름과 사업의 흐름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을 돌아보면…
한국 기업들은 중국 시장을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중국 시장 전문가를 보내기보다는
“중국어를 잘하는 사람”을 주재원으로 보내는 문화,
철저한 시장분석보다 단기 실적 중심의 진출 방식,
그리고 “우리가 하면 된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
그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다.
당시 베이징 택시를 뒤덮던 현대 아반떼는 거의 사라졌고, 중국 젊은이들의 손에 항상 들려 있던 삼성 갤럭시 노트는 아이폰으로 완전히 대체되었다.
내가 귀국하던 시점에 중국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던 한국 제품은 화장품과 풀무원 같은 일부 식품 정도였다.
귀국 이후, 나는 다시 중국에 갈 기회가 거의 없었다.
이전 회사에서도 중국 출장 기회가 몇 번 있었지만
경제 악화로 모두 취소되었다.
그래서인지, 마음 한편에는 항상 그리움이 남아 있다.
내가 조금 여유를 찾고 마음이 안정되는 순간이 오면
다시 혼자 베이징을 찾아가고 싶다.
그때 만났던 중국 지인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 주변은 얼마나 변했을까?
그때 자주 가던 맛집들은 지금도 남아 있을까?
마치 두 번째 고향을 떠난 사람의 그리움처럼,
언젠가 그곳을 다시 천천히 걸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