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약 4년 넘게 중국 베이징에서 주재원으로 근무했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나에게 인생의 두 번째 장이었다.
사실 중국 주재원으로 가는 것은 5년 전부터 품어왔던 장기 목표였다.
글로벌 전략 업무를 오래 하면서 중국의 성장 가능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 발전의 현장을 직접 보고 배우고 싶었다.
해외 주재원으로 선발되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나는 글로벌 본사 소속의 수많은 유능한 직원들과 경쟁해야 했다.
하지만 그 기회는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2013년, 나는 처음으로 APAC(아시아·태평양) 본부 소속으로 발령을 받았다.
그러나 예산 문제로 결국 한국에서 근무를 계속하게 되었다.
경력 개발 측면에서는 분명 좋은 기회였지만,
한국 조직에서는 약간의 소외감 속에서 홀로 많은 일을 처리해야 했다.
출장과 온라인 회의로만 성과를 내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심지어 인사팀은 나를 위한 사무공간조차 준비해주지 않았다.
결국 친한 본부장의 도움으로 구석에 있는 빈자리에서
APAC 업무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일을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해외 주재원 경험은 임원으로 성장하기 위한 발판이 될 것이고,
무엇보다 금전적으로 더 나은 삶을 가능하게 할 거라 믿었다.
당시 한국 조직은 10년째 급여가 동결되어 있었고,
아이들의 교육비 지출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묵묵히 최선을 다했다.
언젠가 해외 주재원으로 나갈 기회를 잡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마침내 2015년 2월, 디렉터가 나를 불렀다.
“너의 해외 근무 예산이 승인되었어. 곧 공식 통보가 갈 거야.”
그 한마디는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이후 글로벌 인사팀과 주재원 패키지를 협의했다.
하지만 가족 모두가 해외로 나가는 건 쉽지 않았다.
아내는 건강 관리 때문에 한국에 남아야 했고,
우리 딸은 예고 진학을 위하여 한국에서 학원을 다녀야 했다.
결국 나는 혼자 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근무지는 홍콩이 아닌 베이징으로 바뀌었다.
“너는 중국 중심의 프로젝트를 맡고 있으니 베이징에 근무해야 해.”
그리하여 나는 APAC 본부 소속 최초의 베이징 주재원이 되었다.
솔직히 말해, 베이징에는 아는 사람도, 본부 동료도 한 명 없었다.
사무실은 중국 수입차 법인에서 임시로 마련된 작은 공간이었다.
비자와 급여 외에는 회사의 지원이 거의 없었다.
나는 아무런 준비 없이 베이징에 급파되었다.
도시의 방향도, 교통도, 문화도 몰랐다.
처음 2주는 회사 근처 호텔에서 지내며
매일 현지 생활을 탐색하듯 걸어 다녔다.
단신 부임으로 회사에서는 어떤 사람도 도와주기 않았다.
다행히 지인의 소개로 작은 아파트를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부동산 중개인은 내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집주인 대신 나에게 수수료를 요구했다.
나중에서야 수수료는 집주인이 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돈을 받은 뒤 자취를 감췄다.
그것이 내가 베이징에서 처음으로 겪은 사기 사건이었다.
그렇게 나의 베이징 생활은 시작되었다.
아무런 보호망도, 가족의 곁도 없이,
철저히 나 자신에게 의지해야 하는 삶.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단단해진 시기였다.
고독 속에서 나는 다시 ‘나’를 만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