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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희미 Jun 09. 2021

내 이야기를 남에게 보인다는 것

자기 PR의 시대, 공개적인 글쓰기와 그에 뒤따르는 불안


우리가 태어난 이 푸른 별에는 현재 70억이 넘는 인구가 복작복작 살아간다. 구글에 검색해 보니 2023년경에는 세계 인구가 80억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더라. 그때까지 고작 2년여가 남은 셈이다. 80억. 이 얼마나 어마무시한 숫자인가. 세상에 사람이 그렇게 많다니. 당연하게도 나를 포함한 그들 모두에게는 각자만의 사정, 각자만의 이야기가 존재할 것이다.


물론 개중 어떤 삶들은 놀라우리만치 비슷할지도 모른다. 태어난 국가가 달라도, 인종이나 성별이 달라도, 매우 유사한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 또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대체로 고만고만하니까.


그래도 우리는 서로 다 다른 개체들이다. 클론이 아닌 이상 나의 삶과 타자의 삶이 100% 일치할 수는 없다. 크고 작은, 중요하고 사소한 온갖 변수들이 개입해 차이를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를 보거나 들을 때 자신의 경험을 반추하며 공감하는 한편 내가 겪지 못한 경험을 우회적으로 접하면서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깨닫기도 한다.


나는 브런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어디다 글 좀 써 볼까? 처음 마음먹었을 때도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계속 많은 생각이 든다. 대개 이런 생각들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써도 될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에 대한 너무 많은 정보를 노출시키는 것은 아닌가. 남에게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람도 많고 정보도 미어터지는 현대사회에서 이제 자기 PR, 즉 나 자신에 대한 홍보는 선택이 아닌 필수처럼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끊임없이 떠들어야 한다. 그러다 누군가 관심을 보이고 눈길을 주면 더 크게 떠들어야 한다. 그렇게 나의 영향력을 확립하고 나만의 영역을 구축하면 그제야 비로소 내가 지나가는 행인1이 아니라 어떤 특색 있는 사람으로 식별되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솔직히 난 이 자기 PR이 약간, 아니 꽤 부담스럽다. 껄끄럽기도 하다. 그렇다고 내가 소심하거나 남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냐면 그렇진 않다. 난 대학 시절 발표도 대체로 다 도맡아서 했고 조별과제 할 땐 웬만하면 조장이었다. 강의시간엔 거리낌없이 교수님께 질문하고 토론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강의실에서 나는 조용한 학생이라기보단 눈에 띄는 학생이었다. 어떤 교수님께서는 기말고사 대체 과제 피드백 코멘트에 내가 정말 모범적이고 남에게 표본이 되는 학생이었다고 써 주셨고, 나중에 우연히 캠퍼스에서 마주쳤을 땐 시간이 꽤 많이 흐른 후였는데도 “아~ 그때 그 공부 잘하던 철학과 학생!” 하면서 기억하셨다. ㅋㅋ


또 어떤 교수님께서는 강의시간에 나를 특히 좋게 보고 있다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력했다고 뒤늦게 말씀하셨고, 직접 만든 시집(흑역사) 드렸던 다른 교수님 한 분은 강의시간에 그걸 대놓고 칭찬하시기도 했다……. 학부 재학 당시 타학과였던 영문학과 강의를 자주 들었는데 한번은 조별과제에서 같은 조였던 조원들이 나보고 “영문학과에서 유명한 거 아세요?” 그런 적도 있다. ㅋㅋㅋ;


아니 자기 PR 껄끄럽다면서 지금 너무 물 흐르듯 자기 자랑하시는 거 아닌가요? 예… 죄송합니다. ㅋㅋ 위에 나열한 일화들만 들으면 내가 무슨 캠퍼스를 주름잡은 인싸인 것처럼 보일 텐데 전혀 아니다. 난 대부분의 강의를 솔플했고 학식도 혼자 먹는 자발적 아싸였다. 다만 난 대학에서 하는 공부를 좋아했고, 남들보다 잘하고 싶어서 노력했고, 그렇게 노력한 만큼 성적도 잘 받고 싶었다. 성적 주는 사람이 누구인가. 교수님이다. 그럼 교수님께 저 이렇게 열심히 합니다라고 행동과 결과로 보여드려야 하는 것이다.


스스로 충분히 준비만 되어 있다면 면접장에서도 크게 떨지 않을 자신이 있다. 물론 면접관이 나를 채용하냐 아니냐는 별개의 문제고ㅋㅋ 남 앞에서 발표하거나 내 이야기를 하는 걸 싫어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오히려 난 투머치토커다. 사람 세워 놓고 혼자 떠드는 거 엄청 좋아한다. ㅋㅋㅋ


그러나 항상 걱정되는 것들이 있다. 내가 헛소리하지는 않았는지. 누군가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지는 않았는지. 편협하거나 무의미한 이야기는 아닌지.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남의 관심을 받아먹고 심지어 돈까지 받아먹는다면 무지막지한 자괴감과 죄책감이 들 것이다. 물론 나처럼 자괴감과 죄책감 따위 느끼지 않고 헛소리 지껄이며 호의호식하는 사람도 많더라. 돈이 최고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무슨 알량한 자존심인가 싶지만 그렇게는 안 살고 싶다. ㅋㅋ 그닥 대단한 인간도 아닌 주제에 결국 철학과랍시고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지향하는 것이다…….


또다른 걱정은 도둑질에 관한 것이다. 진짜 인류애가 사라지는데 세상에 양심 없는 사람, 남의 인생 훔치는 사람 너무 많다. 브런치만 좀 둘러봐도 자기 글 표절당했다는 사람 심심찮게 발견한다. 하나같이 듣기만 해도 복장 터지는 사연들이고, 학계나 문단에서도 표절시비는 잊을 만하면 들려온다. 나도 비슷한 경험 있어서 진짜 당한 사람의 빡침과 분노를 이해한다…. 점점 더 콘텐츠 저작권, 지적재산권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데 국내 현행법에는 많은 허점들이 존재하는 듯하고 필히 보완되어야 한다. 이거 좀 시민 인식 교육도 확대해야 한다고 본다. ㅠㅠ 콘텐츠를 제공하는 플랫폼 차원에서도 강경한 대책이 필요하다. 내 글 도둑맞았는데 브런치, 카카오에서 제대로 된 대응을 해 주지 않더라는 반응도 꽤 보았다. 여러 사람의 자발적 콘텐츠로 먹고 사는 플랫폼이면 이런 문제는 민감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심지어 브런치는 글 쓰려면 가입 후 작가신청해서 심사도 통과해야 하지 않나. 너네 입맛에 맞는 콘텐츠 제공할 작가를 그렇게 데려왔음 정당한 대우를 해 달라고! ㅋㅋ


기대만 하지 말고 보호도 해 주세요...


나는 브런치 작가심사를 한 번에 통과했다. 솔직히 처음엔 여행기도 정리할 겸 블로그나 시작해 봐야지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심사까지 한다니까 좀 유익한 포스트 써야 할 것 같아서 내 대학생활 이야기와 약간의 정보를 버무린 포스트를 나름 성의껏 작성했고, 브런치가 그만하면 됐다고 판단한 모양인지 바로 합격했다. ㅋㅋ 작가신청할 때 요구하는 자기소개글은 그냥 앉은 자리에서 슥슥 써서 냈다. 저 이런 사람이고요~ 대략 이런저런 거에 관심 있는데 주제별로 포스트 나눠서 써 볼게요~ 이렇게. 그래서 매거진 기능을 이용해 카테고리를 분류해 두긴 했는데 언제 저 많은 걸 다 채울진 모르겠다.


브런치를 통해서 출간하신 작가님들도 많은 걸로 안다. 나도 예전에 당신을 작가로 만들어 주는 플랫폼! 뭐 이런 광고를 보고 브런치를 처음 알게 됐다. 블로그처럼 쓰려고 했지만 막상 브런치에 글 써 보니 왠지 알차고 유익한 글을 잘 기획해서 적어내야 할 듯한 약간의 압박감ㅋㅋ이 생긴다. 당장은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편하게 적고 있긴 하지만.


정말로 부담스러운 글, 예를 들어 과제처럼 평가를 받아야 하는 글이나 논문 또는 칼럼처럼 내 커리어가 되는 글이라면 자료조사부터 철저히 해서 각잡고 써야 한다. 소설이나 시나리오 같은 창작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런 글은 공개하기 좀 망설여진다. 문창, 국문학 전공생들이 남들에게 오픈된 개인 공간에 자기 글 올리는 거 꺼리는 이유가 있다. 이걸 설마 누가 보겠어 싶어도 진짜 누군가가 긁어 가니까…….


비평도 마찬가지다. 나처럼 짧게나마 학문의 길을 걸은 사람들에겐 각자의 사유가 곧 자신의 전 재산이다. 내가 어떤 주제에 관심이 있고 그 주제에 대해서 얼마나 공부했는지,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이런 거 전부 논문에 들어갈 내용이다. ㅋㅋ 아직 공식적인 학술 채널을 통해 발표되지 않은 아이디어와 참고자료를 함부로 공개할 순 없다.


SNS도 공개 계정에서 자기 자신을 매력적으로 표현해 남들에게 드러낼수록 더 많은 팔로워가 따라붙고 유명해지면 뭐 협찬도 받고 그러겠지만, 사생활/개인정보 노출이나 악플 스팸메시지 등등 많은 고충들이 생길 것이다. 별로 마주치고 싶지 않거나 상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엮일 일도 많아지겠지. 그런 게 싫어서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SNS는 소소하게 아는 사람들끼리만 소식 공유하는 비공개 계정으로 활동하고, 예비 작가들은 오늘도 블로그 대신 한글창을 켜서 공모전에 낼 글을 쓰고, 대학원생들은 골방에 틀어박혀 자신의 소중한 학위논문 초고를 은밀하게 완성하는 게 아닐까.




나도 언젠가 내 이름 걸린 책을 출판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이 있다. 뭐 대단한 거 바라지도 않고 그냥 서점 한구석에 꽂혀 있기만 하면 된다. ㅋㅋ 아무튼 공식적으로 출판되어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니까. 그리고 이 꿈이 요즘 같은 시대에는 이루기 그다지 어렵지 않다는 사실도 안다. 이젠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라 책을 출판하는 게 다가 아니라 잘나가는 책을 출판하는 게 중요해진 것 같다. 


그래 뭐 기왕 책 내는 거 많이 팔리고 잘나가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또, 도돌이표처럼 앞서 말한 화제들의 반복이다. 공개된 공간에서 열심히 홍보도 해야 하고 내가 이런 사람이다 내 책은 이런 책이다 강하게 어필해야 하고. 사비 털어서 여기저기 광고도 내야 하고. 


강의실에서 교수님께 내가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라고 어필하는 건 껄끄럽지 않았으면서 왜 상술한 일련의 과정들은 이렇게 불편하게 느껴지는지 잘 모르겠다.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나 자신을 ‘파는’ 건 똑같은데 말이다. 전자는 성적이라는 나름 객관적인 능력 지표로 결과가 도출되지만 후자는…… 내가 얻게 되는 게 사회적 명성(?)과 돈이라 현타가 오는 것일까? ㅋㅋ 이 두 가지는 자본주의 사회의 필수 스펙이고 사실 성적보다 훨씬 확실한 능력 지표일 텐데……. 성적 좋은 학생인 것보다 돈 잘 벌고 유명한 사회인이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기 더 편할 텐데. ㅋㅋㅠㅠ


나는 예전부터 너는 뭐가 돼도 될 거라는 둥 장래가 밝다는 둥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고 대학 시절부터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좀더 적극적으로 사람 만나고 이것저것 하면서 너를 드러내라는 조언 또한 많이 들었다. 그럼 쉽게 성공할 텐데 왜 안 그러냐는 의문 섞인 시선도 받았다. 


하지만 뭐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어. 난 이제 겨우 석사학위 하나 달랑 들고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고, 앞으로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진 나도 모르겠다. 빠른 시일 내에 껄끄러움과 불편함을 극복하고 현대사회에 걸맞는 자기 PR 능력을 갖춰 어디선가 좋은 기회를 얻을지도 모르고, 아 역시 이건 좀 아니다; 하면서 나만의 길을 개척할지도 모른다.


아무튼 글쓰기는 참 재밌다. 지금처럼 어느 정도 머리를 환기시킬 겸 적당한 시간을 투자해 술술 써내리니까 부담 없고 너무 좋다. ㅋㅋ 앞으로 브런치에 어떤 글들을 써야 할지는 좀더 고민해야 되겠지만, 막상 또 쓸 때가 되면 즉흥적으로 글감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다. 플랫폼 자체가 출간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판도 깔아 주니까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잘 다듬은 글 하나 정도는 써 볼까 싶기도 하고. 결국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내 이야기를 쓰게 될 것이다. 공개된 장소니만큼 체면ㅋㅋ을 생각해서 기왕이면 부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글보단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이야기하고 싶다. 사람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거 소개하거나 즐거운 시간 보냈던 글 읽으면 기분이 참 좋으니까. 나도 그런 글들을 쓰면서 좀더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마인드를 탑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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