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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희미 Sep 16. 2022

책과 장소 BOOK AND PLACE

사람들은 어디에서 책을 읽을까


우리 사회의 독서인구가 급감하고 있다는 소식은 약 십여 년 전부터 줄기차게 들려왔다. 사실 국내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늘날은 하루에도 새로운 콘텐츠가 수천 수만 개씩 쏟아지는 콘텐츠 과잉 공급 시대다. 독서보다 재미있는 여가활동은 많다. 바쁜 현대인들은 언제나 손에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나 SNS, 숏폼을 소비하며 일회적/즉각적 재미를 얻는다. 특별한 스펙터클도 없이 대부분의 내용이 기나긴 줄글 즉 활자만으로 이루어진 책은 케케묵은 구시대 유물처럼 느껴지고 요즘 세상에선 홀대받을 수밖에 없는 매체인 것만 같다. 출판업계와 인쇄매체의 몰락은 진보라는 프로세스에 뒤따르는 타당한 결과처럼 보인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슬프지만 시간 흐름에 따른 변화는 필연이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변화와 무관하게 한국인의 독서량이 오랫동안 일관적으로 세계 최하위권이라는 쓰라린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OECD의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 연구결과를 참조하라. 지금 내가 이 포스트를 쓰는 9월은 나라에서 지정한 독서의 달이지만, 이걸 기억하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문득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책을 안 읽는지, 책이 얼마나 외면받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국내 독서인구 변동 추이 통계를 살펴보았다. 내가 캡한 아래 자료들은 E-나라지표 지표조회상세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idx_cd=2694




우선 통계청 조사에 의거한 그래프를 보면 2013년부터 독서인구는 꾸준히 감소하는 중이다. 약 십여 년쯤 전에도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독서하는 인구가 과반 이상은 되었는데 지금은 과반 이하로 떨어졌다.



위 캡처는 지표조회상세페이지 하단 정책자료란에 첨부파일로 제시된 <2021년 사회조사결과 보도자료>에서 발췌한 것이다. 특히 종이신문의 몰락이 두드러져 보인다. 이 역시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내외 대부분의 언론사는 변화하는 시대상에 맞춰 발빠르게 디지털로 전환했다. 지난 7월 20일은 인터넷신문의 날이었는데, 이날 기념행사 개회사에서 이의춘 한국인터넷신문협회장은 “인터넷신문의 날은 2005년 7월 28일 신문법 개정을 통해 인터넷신문의 지위와 개념이 명확하게 지어진 날을 기념”하며 “제도 언론으로 권한과 책임을 받은 중요한 날”이라고 했다. (인용 출처:https://www.metroseoul.co.kr/article/20220720500601)


즉, 인터넷신문은 2005년에 이미 ‘제도 언론’이 되었다. 그리고 지난 17년간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과 함께 어마무시하게 몸집을 키워 왔다. 뉴스는 가장 최신의 소식(정보)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프로그램이니 그 뉴스를 전달하는 수단 역시 거듭해서 업데이트 것이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레거시 미디어에서 뉴미디어로. 이 글의 주제와는 별로 관련이 없지만, 인터넷신문협회에서 언론상을 수상한 좋은 기사들을 읽어보고 싶다면 아래 링크를 참조하라.


https://www.kina.or.kr/winner/2?page=1


다음으로 독서인구와 1인당 독서 권수를 살펴보면 독서인구(푸른색 막대그래프)는 아까 맨 위에서 살펴본 그래프와 수치가 같고, 1인당 독서 권수(주황색 꺾은선그래프)는 역시나 하향세지만 2017년과 2021년에 반짝 반등을 보였다. 다시 말해 책 읽는 사람은 점점 눈에 띄게 줄어들고 그나마 계속 읽는 사람들이 해마다 한두 권쯤 더 읽거나 덜 읽거나 한다는 것이 이 통계의 결론이다. 그것 참 암울하기 그지없다.


독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왜 독서를 해야 하는지 그런 뻔한 이야기를 하려고 이 글을 쓴 것은 아니다. 독서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사람은 나 말고도 많다. 독서의 다양한 장점을 깨우쳐 주는 글도 많다. 나는 인문학도인 만큼 국내에서 인문학의 중요성이 좀더 강조되면 좋겠고 1인당 독서량도 늘면 좋겠다는 개인적 소망이 있지만 사실 이 글을 보는 당신이 독서를 하든 말든 그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또 책을 많이 읽는다고 다 유식하고 잘난 사람인 것도 아니고 책을 안 읽는다고 통찰력이 무조건 부재한 것도 아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고 지금도 책을 좋아한다. 어떤 정보를 얻기 위해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는 일이 내게는 너무 답답하고 시간 낭비처럼 느껴진다. 영상으로 봐야 더 직관적인 콘텐츠들(이를테면 DIY 가구 조립방법 같은 것들)을 제외하고는 텍스트로 보는 게 훨씬 빠르고 효율적이고 편하다. 책을 좋아한다는 말은 물론 책을 읽는 행위 즉 독서를 좋아한다는 말이지만, 사실 판형을 갖추고 표지와 내지를 엮어 인쇄된 물리적 책 자체도 좋다. 실재로서 존재하는 책이 내게 주는 공감각적 경험을 사랑한다. 그래서 전자책의 무수히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종이책을 더 선호한다.


세상에는 분명 나 같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아까 문득 책이 얼마나 외면받고 있는지 궁금해졌던 것처럼, 나는 불현듯 나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책을 ‘어디서’ 읽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서론이 길어졌는데 여기서부터가 본론이다. 과반 이하로 떨어진 우리나라의 독서인구, 그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포스트에 쓰인 모든 사진의 출처 Unsplash


이 글은 일종의 프롤로그다. 이 <책과 장소BOOK AND PLACE> 포스트는 그냥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가다가 한 번쯤 읽을 만한, 책에 관련된 가벼운 에세이가 될 예정이다. 그런 것치곤 서론에서 통계부터 들이밀며 각 잡힌 척을 했지만. 작가의 서랍에 아직 완성되지 않은 부담스러운 글들이 쌓여 있는데 최근 바쁜 하루하루를 보낸 후 집에 돌아와 씻고 앉아서 무거운 글을 쓰려니 머리가 아파 노트북을 덮기 일쑤였다. 와중에 브런치앱은 내가 글을 쓰다가 말다가 하니까 귀신같이 알림을 보내서 ‘작가님, 꾸준함이 재능이 될 수 있어요~’ 이렇게 사람을 독려하는 척 글 좀 쓰라고 약간 꼽주는 것이다. 그래서 부담 없이 꾸준히 쓸 만한 포스트를 기획해 봤다.


독서하는 사람들은 사실 어디에나 있다. 학교에, 서점에, 도서관에, 대중교통에, 길거리에, 여행지에, 정말 어디에나 있다. 독서는 특별한 자격을 요구하는 행위가 아니니까 누구나 책 한 권만 있다면 그리고 책에 사용된 언어를 읽을 줄 안다면 독서를 할 수 있다. 나는 이 포스트에 쓸 사진들을 찾아보면서 사람들이 참 다양한 장소에서 책을 읽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연출된 장면도 있겠지만, 내가 어딘가에서 책을 읽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사진들도 많았다.





장소Place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복잡한 문화인류학적/철학적/심리학적 담론들을 포함한다. 난 그 담론들을 이 기획 포스트에서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을 것이다. 머리를 가볍게 하려고 이 글을 쓰기로 했는데 벌써 다시 머리가 아파오니까……. 철학, 사회학, 건축학, 문화인류학, 지리학 등등을 전공했다면 아마 앙리 르페브르(Henri Lefebvre)라는 이름을 얼핏 들어봤을 것이다. 아래 링크의 아티클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오슬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티모테오스 베르묄렌(Timotheus Vermeulen)이 쓴 글이다.


https://www.frieze.com/article/space-place


장소에 관해 말한 학자 중 또다른 눈여겨 볼 만한 인물은 지리학자 이 푸 투안(Yi-Fu Tuan)이다. 그는 공간과 장소의 개념을 명확히 구분해서 설명한다. 관심이 있다면 아래 링크를 통해 들어가서 논문이나 책을 직접 구매해 읽어보길 추천한다. 논문은 초록을 인용해 두겠다. 초록만 읽어도 이 푸 투안이 장소에 대해 어떤 관점을 지니고 있는지 명확히 알 수 있다.


https://www.jstor.org/stable/213970


Abstract  

Place is a center of meaning. In size it ranges from a rocking chair or a fireplace within the home to a neighborhood, town, city, region, and the nation-state. Experience occurs in different modes, relatively passive ones like touch and smell and active ones like seeing and thinking. Place is a construct of experience in all its modes. Small places can be known directly and intimately through the senses. The reality of the larger place depends more on indirect experience gained through concepts and symbols. For a fully developed sense of place, passive experiences must be supplemented by active perception and awareness. Art, education, and politics are different ways of promoting the visibility of places.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3497980



나에게 독서는 일상적인 행위면서 동시에 특별한 행위다. 더 쉽게 표현하면 내가 밥 먹듯이 하는 일이면서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한다. 하지만 모든 일을 고도로 집중해서 하지는 않는다. 어떤 일은 설렁설렁 하고 또 어떤 일은 몰두하면서 하루에 쓸 에너지의 밸런스를 맞춘다.


미식가는 자신이 먹는 행위에 몰두해서 한 끼 식사를 해도 제대로 하고 싶어할 것이다. 나름 애서가로서 나는 소위 ‘퀄리티 있는 독서’를 하고 싶다. 무슨 말이냐면, 독서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서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한 줄 한 줄 곱씹고 생각하며 느긋하게 읽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쁜 현대인인 죄로 나는 그보다 질적으로 떨어지는 독서를 할 때가 더 많다.


좋은 독서 환경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바로 장소다. 내가 독서하는 장소는 내가 책을 읽어도 되겠다고 판단하고 선택한 곳이다. 또는 이런 데서 책을 읽어야겠다고 작정하고 선택한 곳이다. 특정 장소에서의 독서는 책의 내용뿐만 아니라 그 장소가 포함한 사회문화적 맥락, 분위기, 함의를 포함한다. 장소의 기억은 때로 독서의 기억을 압도한다. 장소의 기억이 독서에 색다른 의미를 더해 주기도 한다.


오늘도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내릴 때쯤 내 독서의 경험과 장소의 기억을 함께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포스트를 기획하고 책과 장소라는 멋들어진 타이틀을 걸어둔 뒤 지금까지 긴 지면을 할애해 통계도 좀 넣고 사진도 좀 넣고 철학적 배경지식도 한 스푼 넣어서 그럴싸하게 보이도록 했다. ‘지하철에서책읽다생긴썰푼다’보다는 이 편이 있어 보일 것 같아서 그랬다. 쓰다 만 영화 리뷰도 완성해야 하고 밀린 전시/공연 관람 리뷰도 적어야 하고 협업 프로젝트 원고도 넘겨야 하지만, 아무도 강제하지 않은 의무들로부터 도피하고 싶을 때마다 거창한 프롤로그에 비해 짧고 간결하고 실없는 독서 에세이를 몇 편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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